이열음, 더 없이 푸르른 열아홉 소녀(인터뷰)

이열음이 태양빛 아래 피어나고 있다

이열음이 태양빛 아래 피어나고 있다

tvN ‘고교처세왕’에서 서인국을 열렬히 쫓아다니며 감정을 쏟아 붓고, 나중에는 자신의 오랜 짝사랑 상대이자 친구이기도 한 그가 언니의 연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녹록치 않은 성장통을 치뤄야 하는 유아 역을 맡은 배우 이열음은 올해 4월 방송된 KBS2 단막극 ‘중학생 A양’을 통해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만든 주인공이다. 단막극 출연으로 그토록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낸 신인은 없었기에, 이열음에 대한 관심이 상당했다. 당시 소속사는 좀 더 긴 작품이 결정되면 인터뷰를 하겠다며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관심을 부담스러워했고, 그 후 몇 달이 더 지나서야 이열음을 만났다.

이열음은 ‘중학생 A양’의 그늘 짙은 캐릭터와는 정반대의 뜨거운 유아를 연기하며 조용조용하던 자신의 본래 성격까지도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 지칠 줄 모르는 여름의 태양처럼 한껏 달아올라 자신을 그리고 유아를 떼어놓지 못하며 재잘거리는 소녀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여름에 열음을 만나게 됐다. 뜨거운 태양 아래 이제 막 피어나는 어린 존재를 바라보는 것은 말할 수 없이 행복한 일이다. 그렇게 맹렬하게 자라나려는 에너지에 단 1%의 오염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열아홉 이열음은 "조금씩 내가 여자가 되는 것 같아요"라며 배시시 웃는다.

열아홉 이열음은 “조금씩 내가 여자가 되는 것 같아요”라며 배시시 웃는다.

Q. 만나면 이 질문부터 하려고 했어요. 얼마 전 기자간담회 때 갑자기 울었잖아요. 이유가 궁금했어요.
이열음 : (수줍게 배시시 웃으며) 하하, 유아로 살면서 저도 모르게 속상했어요. 시청자들이 느끼기에 유아가 속상해하거나 상처받는 모습은 아니었을 수 있겠지만, 촬영하면서 민석이의 눈빛을 보며 ‘유아도 여자인데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자존심이 상했어요. 속상했어요. 그런 감정을 느끼던 차, 갑자기 울컥 올라왔어요. 마침 간담회에서 나온 질문도 유아의 감정과 관련된 것이었잖아요.

Q. 간담회 직전에 유아의 감정신을 찍기도 했었죠.
이열음 : 맞아요. 유아가 드디어 민석을 보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신이었어요. 그 신을 찍을 때, 인국 오빠가 자기 분량을 다 찍고 한참을 기다려줬어요.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 또 유아로서 민석을 놓아주어야 한다는 감정이 뒤섞여 울컥울컥 했었어요. 그런 촬영을 마치고 간담회를 했던 터라, 제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나봐요.

Q. 기다려주던 서인국 씨는 어떤 말을 해주던가요.
이열음 : 머리를 쓰다듬어 줬어요.

Q. 유아에 대한 애착이 상당한데, 다른 배역을 연기할 때도 지금처럼 완전히 몰입해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은 적이 있나요.
이열음 : 네. 몸이 늘어질 정도로 하루 종일 울었던 적도 있어요. 데뷔작인 ‘더 이상은 못참아’에서 맡은 역할은 아빠의 외도, 그리고 생활고로 힘들어하던 엄마가 죽어 가장이 된 캐릭터였거든요. 매회 눈물신이 있기도 했어요. 체력적으로 힘들 정도였죠. 또 단막극 ‘중학생 A양’을 할 때도 무거운 캐릭터라 감정적으로 가라앉아 있었어요. 도리어 ‘고교처세왕’의 유아는 처음 맡게 됐을 때, 기존에 제가 해왔던 어두운 캐릭터와 완전히 달라 그런 면에서 걱정을 했었어요.

맹렬하게 자라나는 이 어린 여배우의 욕심은 전혀 오염되지 않았다.

맹렬하게 자라나는 이 어린 여배우의 욕심은 전혀 오염되지 않았다.

Q. 어쩌면 유아는 배우 이열음에게는 도전이 되는 캐릭터였겠군요.
이열음 : 맞아요. 제가 목소리 톤도 높은 편이 아니라, 유아를 표현할 때는 목소리나 말하는 것도 완전히 바꿔야 했어요. 성격은 말할 것도 없이 저와 너무나 다르고요. 그래서 과연 어색하지 않게 표현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배우로서 부딪혀야 하는 캐릭터라 생각했고, 무엇보다 지금은 배워야하는 시기이기에 빨리 부딪혀보자 했어요. 그런데 초반에는 ‘서방, 서방!’ 하면서 목도 아프고, 스스로 느끼기에 어색한 적도 많았어요. 하지만 인국이 오빠를 보면서 평상시에 온전히 그 캐릭터가 돼버리고 스스로가 자신의 캐릭터를 좋아해버리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Q. 서인국 씨를 보면서요?
이열음 : 네. 음, 그러니까 처음에는 제 스스로가 유아를 이해할 수 없었어요. 저와 너무나 다른 아이니까, 그래서 남들에게 유아를 설명할 때도 유아를 설득시키려는 말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유아에게는 남모르는 마음의 아픔이 있어요. 아직 드러나진 않았지만’이라고 꼭 덧붙이는 식이었죠. 하지만 그런 일종의 변명보다는 스스로가 유아가 되어있고, 평상시에도 유아 생각만 하고, 완전히 유아를 이해하게 되면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유아를 알아주는 것을 느끼게 되는 거죠.

Q. 그만큼 곁에서 보기에 서인국 씨는 민석이에 깊이 몰입해 있다는 말이군요.
이열음 : 인국 오빠가 이런 말을 했어요. 같이 호흡을 맞추는 신에서 ‘여기서는 내가 너한테 이렇게 할 수 잇게끔 더 표현해줘야 해. 하지만 네 연기 호흡은 내가 터치할 부분은 아니야. 그러니까 네 호흡을 지키면서 서로 필요한 부분에서 조금 더 나와 주었으면 좋겠어’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떤 애드리브를 하더라도 내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호흡이 있고 그것을 가져가야 하는구나’를 오히려 깨달았어요. 어쩌면 오빠가 ‘나만의 호흡’을 지키라는 말을 돌려서 말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었죠. 고마웠어요. 그런 말을 듣고부터 스스로가 유아를 좋아하게 됐고, 어느 순간 저는 이미 유아가 됐더라고요.

Q. 그렇군요. 민석이를 향해 그야말로 여고생만의 엄청난 에너지로 질주하는 유아이지만, 막상 자신이 준 마음을 돌려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유아의 아픔은 또 그만큼 크게 전달이 됐어요. 그러면서 민석이도 괜히 미워지더라고요. ‘이건 어장관리야!’라면서 분노하기도 했죠.
이열음 : 맞아요! 그렇지만 이해는 돼요. 민석이에게 유아는 이성적으로 와닿지 않지만 소중한 친구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그 ‘서방’이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너무 극단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는데, 결국 그 대사는 회사가 아닌 학교라는 공간에서 유아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표현이었고 또 제가 유아를 진짜 좋아하고부터는 그것도 예뻐 보였어요.

그러니까 이열음은 푸르다

그러니까 이열음은 푸르다

Q. 지금은 유아의 어디가 가장 예쁜가요?
이열음 : 중간 중간 크게 보이지 않았지만 유아의 말 한 마디, 대사 하나에서 정이 느껴졌어요. 툭툭 내뱉지만 은근히 챙겨주는 마음이 느껴진 신들이 많았죠. 유아의 마음을 노트에 정리도 했었는데 겉으로는 세 보이지만 연약한 아이였어요. 네임펜으로 ‘유아’라고 써놓고, 유아의 이런 점, 저런 점을 다 쓰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유아의 마음이 느껴지게 됐죠.

Q. 그 노트가 보고 싶어지네요.
이열음 : 복잡하게 쓰진 않았고 마인드맵을 그렸어요. 스스로가 유아라고 생각하고 평상시 학교에서의 모습이나 전혀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유아를 볼 때, 또 유아에게 좀 더 들어가서 드는 생각들을 전부 다 써봤어요. 유아 스스로가 생각하는 유아 뿐 아니라, 주변에서 바라보는 유아 등 다양한 시선을 많이 적었어요.

Q. 그렇게 자신과 전혀 다른 유아를 연기하면서, 혹시 본인 성격에도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나요.
이열음 : 어느 날 학교에 가서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선생님, 제가요’라고 말씀 드리는데,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너 말 되게 많아졌다’ 생각해보니 전 선생님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셔도 ‘아,네’하고 눈도 잘 안 마주치던 성격이었는데 확 변해있더라고요. 지금도 그래요. 원래 말이 별로 없는데 이렇게 말이 많아졌잖아요, 하하. 직업병인가 봐요. 다행인 것은 보기 좋다고 말씀해주세요들.

Q. 참, 올해 고3이죠. 학교는 거의 못가겠어요.
이열음 : 네. 촬영 없을 때는 매일 가는데 지금 방송을 하고부터는 거의 못 갔어요. 그나마 중반부까지는 대본이 미리미리 나와서 학교에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생방 스케줄이라서요. 하지만 전 고1 때 수학여행, 수련회도 다 갔고 작년 6월 전까지만 하더라고 학교생활이 더 우선이었던 터라 친구들과도 많이 친해진 상태에요. 지금 학교에 가면 친구들은 오히려 제가 불편할까봐 ‘왜 왔냐’라며 장난을 먼저 걸어줘요. 궁금한 것도 많을 텐데 거의 물어보지 않고 누구 한 명이 물어보면 쪼르르 와서 물어봐요. 정말 고마워요.

Q. 배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부터 한 건가요?
이열음 : 초등학교 때 드라마 ‘풀하우스’를 보고 완전히 빠져서 연기하고 싶다고 했어요. 나중에 중학교 때 진로 조사를 할 때 희망 직업란에도 늘 배우를 섰어요. 엄마에게도 말씀드렸더니 연기학원에 보내주셨죠. 6개월 정도 다녔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재미가 없더군요. 학원은 그만두고 학교에 집중했어요. 대학가서 시작하자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연기학원을 그만두고부터 오히려 연락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프로필 사진이 돌아다녔나 봐요.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엄마와도 사춘기 시절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한 것들에 집중하고 대학 때 시작하자고 이야기 했죠. 그래서 학교도 인문계로 진학했어요.

Q. 그렇다면 지금은 계획보다는 좀 일찍 시작하게 된 거네요.
이열음 : 고등학교 올라가서 지금 소속사 대표님을 만났어요. 고1 겨울에 계약을 했어요.

이열음

아주 아름답게 푸르다

Q. 참, 지금 회사가 열음 엔터테인먼트에요. 듣기로는 소속사 대표님이 나중에 이 이름에 잘 어울리는 신인 여배우를 만나면 선물해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만나게 된 지금의 이열음 씨에게 이름을 준 거라고요.
이열음 : 맞아요. 본명은 이현정이에요. 안 그래도 평범한 이름이라 예명을 지어야 한다고 했는데 ‘열음’이라는 이름을 주셨죠. 정말 너무나 감사했어요. 무엇보다 이름이 예쁘잖아요. 또 회사명을 준다는 것 자체가 모험일 수 있고 그만큼 저를 믿어주신다는 것이니 책임감도 생겼고요. 하지만 너무 부담 갖지 말자는 생각도 했어요. 무엇보다 스스로 즐겨야 하니까요. 천천히 차근차근 급하지 않게 가려고해요.

Q. 하지만 본의 아니게 오해도 받을 테고요. 소속사 대표의 딸이 아닌가라는, 하하.
이열음 : 정말,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들어요. 하하. 1인기획사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시는 걸요.

Q. 이렇게 이야기를 해보니, ‘이열음은 애늙은이’ 같아요. 그러니까 어른스럽다는 뜻이죠.
이열음 : 크크. 맞아요. 그런 말 굉장히 많이 들어요. 그리고 전 어른들에게 사랑받는 편이에요. 어떤 감독님은 ‘넌 어른들이 좋아하게 생긴 인상이야’라고도 말씀하셨죠. 그게 무슨 뜻일까 싶었어요. 입시학원을 갔을 때는 ‘교수님들이 좋아하겠는데’라는 말도 들었어요. (옆에서 소속사 관계자가 ‘열음이는 진짜 독해요. 회사에서 과제를 내주면 200을 해오죠. 툭툭 던지는 식으로 준 과제인데도 그래요’라고 말했다)

Q. ‘내가 봐도 나는 참 독해’ 싶었던 순간도 혹시 있나요.
이열음 : 전 항상 머리에 스케줄이 정리가 돼 있어야 해요. 완벽주의죠. 피곤한 성격이에요. 그런데 피곤하더라도 뭐든지 정리가 돼 있어야 직성이 풀려요. 드라마 촬영하다보면 변수가 많이 생기는데, 예민해져서 잠을 못자더라도 다음 날 스케줄이 정리가 되어야 돼요. 시간약속을 하더라도 꼭 30분 먼저 가있어야 하는 편이고요.

Q. 그런데 참 엄마도 배우잖아요.(이열음의 엄마는 배우 윤영주다) 혹시 엄마를 보면서 정말 존경스럽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면요.
이열음 : 어린 마음에도 엄마는 항상 자기 자신보다 남을 생각했어요. 촬영 다녀온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장은 참 힘든 곳이었는데, 엄마는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분이세요. 그래서 오히려 제가 속상할 때도 많았죠.

Q. 하지만 그런 엄마 덕분에 외동인데도 이렇게 어른스럽게 자랐네요.
이열음 : 늘 예의를 강조하셨어요. 또 특히 엄마는 매니지먼트 없이 혼자 알아서 스스로 다 하셨던 분이라서요. 그런 것을 지켜봐온 저로서는 아무리 힘들고 피곤해도 기분 좋게 생각할 수 있어요. 엄마에게 늘 감사드리고 또 배우로 존경해요.

Q. ‘고교처세왕’도 서서히 마무리가 되어 가는데요. 이제 이 작품을 끝내고나며 당분간은 대학진학에 집중한다고 들었어요. 그렇게 10대가 저물어 갈텐데, 사실 이 시기는 아이와 어른의 경계선인데 지금이 아니고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다양한 감정들이 있는 시기라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드는 한편,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 생각도 들 것 같아요. 열아홉, 이열음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이열음 : 안 그래도 엄마 붙잡고 ‘엄마, 내가 여자가 되나봐’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일동 웃음)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었는데 유아 외에도 여러 캐릭터를 연기하다보니 어른이 되기 직전, 여자가 되어가는 스스로를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성인이 되기 직전의 설렘을 표현할 수 잇는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Q. 어떤 여자로 자라고 싶나요.
이열음 : 글쎄요. 그냥 순수하게 스스로 점점 꾸미는 것에 관심이 생기는 요즘인데요. 또 더 나중에는 남자에게 관심도 생기게 되겠죠. 그저 자연스럽게 이렇게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하고 싶어요.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