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희,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인터뷰)

송재희

“역할이나 작품에 대한 부담이요? 전혀 없어요, 오히려 어떻게든 붙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살아남으면 또다시 ‘해품달’ 같은 기회가 오겠죠. 그렇게 참고 인내하는 능력도 배우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나직이 내뱉는 말 한마디마다 간절함이 넘친다. 한때 배우를 그만두려고까지 했던 한 남자는 지난 2012년 MBC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의 허염 역으로 실낱같은 배우의 꿈을 되살려냈다. 그리고 2014년, 이 남자는 몇 번의 단역과 조연을 거쳐 결국 일일드라마의 주연으로 우뚝 서게 된다. 최근 종방한 SBS ‘나만의 당신’의 강성재 역으로 악역에 한 획을 근 배우 송재희에 대한 이야기이다.

Q. 오, 머리가 바뀌었다. 밝은색으로 염색하니까 인물이 달라 보인다.
송재희: 마지막 촬영 끝내고 종방연하기 전에 바로 바꿨다. 뭔가 머리 스타일부터 바꿔야만 캐릭터를 떠나보낼 수 있을 것 같더라, 하하.

Q. 정말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8개월을, 그것도 극악무도한 악역으로 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까.
송재희: 아직 끝나지 않은 느낌이다. 아쉬움도 크고. 아침드라마가 워낙 호흡이 길다 보니까 뭔가 가족 같은 느낌이 있었다.

Q. 결말도 다소 충격적이었다. 소위 ‘권선징악형’ 결말이 아니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왠지 억울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미지 회복의 기회조차 없었으니까.
송재희: 정말 충격적이었지, 하하. 대본을 보고도 믿어지지가 않았다. ‘이래도 되는 걸까’ 싶기도 했고. 여러모로 시사점이 많았던 작품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 권선징악이라는 게 ‘선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는 이야기지 않나. 근데 ‘나만의 당신’은 온전히 악역 강성재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성재를 파멸까지 몰아붙였기에 마지막에 와 닿는 감정의 폭이 더 컸다.

송재희

Q. 사실 이 정도 악역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워낙 ‘센 악역’이다보니 연기하며 카타르시스 비슷한 쾌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다.
송재희: 확실히 느꼈다. 교도소에 수감된 지 1년 만에 유라(한다민)가 면회를 오는 장면이 있었다. 그때 유라가 “내가 당신을 잡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자, 성재는 “네가 안 잡았어도 내가 잡았을 거다”고 한 뒤 속으로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게 미안했던 적 한 번도 없어’라고. 크, 악역이지만 정말 폼 나지 않나. 이런 부분 때문인지 은근히 강성재의 팬 분들이 있더라.

Q. 강성재는 초반부부터 감정의 폭발이 이어지는 인물이었다.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당신에게는 꽤 풀기 어려운 캐릭터이지 않았나.
송재희: 정말 악역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8개월간 나쁜 말만 하고 짜증만 내다보니 정말 실제 성격에도 영향을 미치더라, 하하하. 중반부를 지나면서 점차 연기하는 걸 즐기게 됐는데, 원래 한 캐릭터에 몰입하면 빠져나오기 힘든 성격이라서 작품을 마친 뒤가 더 고달프다.

Q. 맡은 역할 자체가 큰 쾌감을 주는 캐릭터이기는 했지만, 반대로 ‘일일드라마’라는 장르는 배우에게 제약이 많은 장르로 알고 있다. 캐릭터의 한계를 끝까지 몰아붙이면서 장르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것, 그 중심 잡기가 숙제였겠다.
송재희: 아쉬움이 남는 것도 그 때문이다. 뭔가 다 풀어내지 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아무래도 호흡이 길고 찍어야 하는 분량이 많다 보니 배우로서는 최초에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표현해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런 고민에 빠질 때마다 내 능력의 부족함도 많이 깨달았다. 조금 더 깊이 있는 캐릭터를 그릴 수 있는 다양한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송재희

Q. 간간이 작은 영화들에 출연하기는 했지만, ‘사랑하길 잘했어’, ‘그래도 당신’에 이어 일일드라만 3편째다.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
송재희: 배우들끼리는 이런 이야기를 한다. 일일드라마는 배우가 내려갈지, 올라갈지가 나뉘는 분기점이라고. 하지만 난 출연 자체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다. 경험을 통해 일단 붙어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살아남아야만 또 ‘해품달’ 같은 기회가 오는 거다.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배우 세계에서 잊히는 건 정말 순식간이다. 그렇게 참고 인내하는 능력도 배우의 중요한 자질 중 하나가 아닐까. 나이를 먹다 보니 좀 더 직업적인 차원에서 연기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Q. 살아남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게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일일 것 같다.
송재희: 그건 온전히 배우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색깔이라는 건 매 순간 집중하고 공부하면서 만들어나가는 것이지 한순간에 생기는 게 아니다. 이번 작품에서도 연기에 대한 욕심은 크지 않았다. 오직 ‘배역에 몰입하자’,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자’, ‘못해도 10년은 한다는 생각으로 길게 보자’는 생각들을 했을 뿐이다.

Q. 꽤 오랜 시간 동안 무명의 설움을 삼켜야 했다. 그래서인지 모든 대답에 간절함과 진정성이 묻어난다.
송재희: 무명시절을 보내며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났다. 젊었을 때는 정말 정신이 썩어있었거든, 하하하. 뭣도 모르던 시절에는 남들보다 잘생긴 얼굴 하나만 믿고 쉽게 돈을 벌 요량이었다. 배우보다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던 게지. 근데 무명시절을 거치며 ‘배우라는 게 아무나 할 수도, 해서도 안 되는 직업이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나보다 훨씬 잘생긴 사람들도 넘쳐나는 게 이쪽 세상이더라. 그래서 ‘해품담’ 이후에는 어떤 작품이든 불러주시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송재희

Q. 그렇다면 돌발질문이다. 지금도 당신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나.
송재희: 하하하, 지금은 많이 겸손해졌다. 길게 보고 연기에 집중하려고 한다. 정말 그래야만 할 것 같아, 하하.

Q. 이번 작품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 만큼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된다. 좀 더 큰 작품에서 당신의 다양한 매력을 확인하고 싶다.
송재희: 강성재가 했던 말 중 유일하게 마음에 드는 대사가 하나 있다. “아직 안 끝났다”는 말. 여러분 ‘송재희’는 아직 안 끝났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점은 많지만, 어떤 한 사람이 단역으로 시작해, 일일드라마를 거쳐 어떤 배우로 성장해나가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때까지 최선을 다할 테니,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