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늘 “변한다, 변질되지 않을 뿐!”(인터뷰)

강하늘
“배우고 배우다 보면 배우가 된다”고 얘기하는 남자. “예술가는 곤조가 있어야 한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강하늘. 배우가 자신만의 확고한 연기관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인데, 요즘 그런 배우를 만나기가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닌 터라, 그와의 대화는 오히려 흥미로웠다. 드라마 ‘몬스타’ ‘상속자들’을 거쳐 영화 ‘소녀괴담’을 찍은 이 남자는, ‘쎄시봉’ ‘순수의 시대’ ‘스물’을 향해 쉬지 않고 달리는 중이다. 아마도 그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앞으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변질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강하늘의 말을 믿어보고 싶은 이유는, 그에게서 ‘뿌리 깊은 나무’를 봤기 때문이다.

Q. 영화 ‘쎄시봉’에서 당대의 뮤지션 윤형주를 연기한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에 활발하게 활동했던 뮤지션인데, 혹시 알고 있었나?
강하늘: 나이 상으로는 모를 수 있는 세대가 맞다. 주위 친구들도 쎄시봉을 많이들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쎄시봉 음악을 듣고 자랐다. 아버지가 연극을 하면서 라이브 카페에서 노래를 하셨다. 집에서 매일 흘러나오는 노래가 비틀즈, 쎄시봉 이런 음악이었다. 그래서 예전 음악들을 많이 안다. 지금 내 컬러링도 이문세의 ‘옛사랑’이다. 벨소리는 윤형주 선생님 노래고.

Q. 요즘 노래도 즐겨 듣나.
강하늘:
솔직히 잘 모른다. 팝송이나 예전 노래를 주로 듣지, 요즘 노래를 일부러 찾아듣지는 않는다. 아주 유명한 곡들은 안다. TV나 커피숍에서 들려오니까.

Q 어머니도 연극을 하셨던 걸로 안다. 부모님이 연극배우 출신이라는 건 어떤 기분인가. 조금은 다른 가정교육을 받으며 자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하늘:
부모님이 굉장히 개방적이시다. 자식들을 방목하면 키우셨다.(웃음) 좋은 교육법이라고 생각한다. 훗날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부모님처럼 키울 생각이다. 부모님 덕분에 자유엔 책임이 따른다는 걸 일찍이 깨달았다.

Q. 듬직한 아들이었다는 말투다. 말썽피워 본 적, 없나?
강하늘:
단 한 번도 부모님과 싸워 본 적이 없다. 혼난 적은 있다. 중학교 때 PC방에 가고 싶은 마음에 아빠 지갑에서 만원을 훔쳤다가 호되게 맞았다. 하하하.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강하늘

Q. 2010년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에서 당신을 봤다. ‘모리츠’ 조정석, ‘밀키어’ 주원, ‘에른스트’ 강하늘 캐스팅인 공연이었다. 그때 본 뮤지컬 배우들이 지금은 모두 촉망받는 스타가 됐다. 그 공연을 본 관객들은 무슨 복인지 모르겠다. 하하하
강하늘:
하하하하. 나는 아직 멀었다.

Q. 당시엔 강하늘이 아닌, 김하늘(본명)로 활동했다.
강하늘:
맞다. 그 공연을 단 한 회도 안 빼고 출석했다. 다들 한번 씩은 아프거나, 개인으로 사정으로 공연에서 빠졌다. 캐스팅이 중간에 바뀌기도 했고. 그런데 나만 단 하루도 안 쉬고 달렸다. 총 266회 공연이었을 거다. 힘들었지만 뿌듯한 경험이다.

Q. ‘몬스타’와 ‘상속자들’에서의 모범생 이미지 때문에, 영화 ‘소녀괴담’에서 연기한 외톨이 인수를 낯설게 느낄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반면 뮤지컬로 먼저 당신을 만난 팬들의 경우 익숙하다며 반가워 할 것 같고.
강하늘:
아! 그럴 수 있겠다. 성격적인 부분에서는 ‘몬스타’의 선우나 ‘상속자들’의 효신보다 인수 쪽에 가깝다. 사람들과 있을 땐 한없이 외향적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되면 확 바뀐다. 생각도 많아지고, 고민도 많아진다. 집에 있을 때는 형광등 대신 향초를 켜 두는 편이다. 약간 마니아적인 부분인데, 햇빛에 눈뜨면 기분이 안 좋다. 반면 빗소리에 눈을 뜨거나, 눈을 떴을 때 하늘이 흐리면 기분이 업 된다.(웃음)

Q. 지금 이 공간, 굉장히 밝은데.(웃음) 햇살이 상당하다.
강하늘:
안 그래도 지금 햇살에 기가 빨리는 중이다. 하하하.

Q. 향초를 키는 걸 보니, 후각에 예민한가봐.
강하늘:
집에 들어갔을 때 나는 향이 내겐 굉장히 중요하다.

Q. 사람마다 고유의 향이 있는데, 그것도 중요시 여기겠다.
강하늘:
맞다.어떤 향을 지녔느냐에 따라 상대에 대한 이미지가 좌우되기도 한다. 물리적인 향이 아니라, 사람이 풍기는 어떤 분위기 있잖나. 좋은 향/분위기가 나는 사람에게 끌리는 편이다.
강하늘

Q. 이상형의 외모를 지닌 여인을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래서 가까이 다가갔는데 원하는 향을 지닌 사람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하겠나.
강하늘:
음…나는 사람을 만날 때 굉장히 멀리 내다본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여인이라면 당장은 끌릴 수 있겠지. 하지만 결국 나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걸 알기에, 처음부터 시작을 안 할 거다. 그 정도로 나에게 어떤 사람의 분위기나 향이 중요하다.

Q. 강하늘은 어떤 향을 내는 사람 같나.
강하늘: 아직은 무향. 지금 만들어가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는 은은하게 떠도는 향을 지닌 사람이면 좋겠다. 내가 원하는 연기관도 그렇다. “쟤, 연기 잘한다”는 소리조차도 안 나오는 연기가 정말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 눈에 거리낌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그런 연기를 하고 싶다.

 Q. 여기 오기 전에 당신이 했던 인터뷰들을 빼놓지 않고 다 봤다.
강하늘:
어땠나.

Q. 이 친구가 연기에 있어 어떤 ‘곤조’가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참고로 좋은 의미에서의 ‘곤조’다.
강하늘:
곤조, 있다. 그리고예체능을 하는 사람이라면 곤조는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당 영역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예술관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은 고집이 아니라 아집에 가깝다. 그런데 나는 이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 앞으로 내 주위상황은 많이 변할 거다. 하지만 그 안에서 처음 지녔던 생각은 지켜 나가고 싶다. 결국 내가 되고 싶은 사람도, 초심을 지켜나갈 힘이 있는 사람이다. 예술이라는 답이 없는 세계 안에서 자기 생각은 확고해야 한다고 본다.
강하늘

Q. 2009년도에 한 인터뷰에서 “방송 활동에 별로 생각이 없다. 지금은 무대에 대한 욕심이 크다”고 한 적이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방송도 하고 있고, 영화도 하고 있다. 앞서 말한 것을 보면, 연기관이 변한 것은 아닌 것 같고. 뭐가 달라진 걸까.
강하늘:
변했다. 변했지만, 변질되지 않았다가 더 정확한 것 같다.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 어릴 때 출연한 드라마는 경험삼아 했던 거고, 스무 살이 되고 가치관이 정립됐을 때 시작한 방송은 달랐다. 일찍부터 연기를 하다 보니,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분들을 많이 알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좋아하는 형, 선배들이 관객이 없어서 준비된 공연을 다 보여주지 못하고 문을 닫는 모습을 많이 봤다. 그게 찢어지게 마음 아팠다. 그런 걸 보면서 ‘사람들이 나를 보기 위해서라도 공연장에 와서, 다른 훌륭한 배우들을 발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공연계가 활성화 되는데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에 방송을 시작한 거다. 물론 누군가는 너무 거창하고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 않나.

Q. 나쁜 생각은 아닌데, 자칫 고루하게 보일 수는 있을 것 같다. ‘젊은 친구가 왜 저렇게 사명감이 불탈까’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강하늘:
많은 사람들이 고루하게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나 하나 정도는 고루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싶다.(웃음)

Q 지금도 그 생각, 변하지 않았나.
강하늘:
연극을 전공하다보니, 주위 친구들이 모두 배우를 꿈꾸는 예비 연기자들이다. 사실, 내가 ‘소녀괴담’ ‘순수의 시대’ ‘쎄시봉’ ‘스물’까지 달려가는 가장 큰 원동력은 친구들이다. 그리고 지금 나의 가장 큰 고민거리도 친구들이다. 나는 이렇게 촬영을 하고 있지만, 친구들은 대부분 카페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걸 보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문제다. 내가 뭐라고! 뭔가를 해줄 능력도 없으면서! 그런 면에서 힘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다. 친구들을 도와주고…아, 도와준다는 표현은 조금 그렇고, 아주 작은 길이나마 제시해 주고 싶은 거다.

Q. 이런 마음, 친구들에게 얘기한 적 있나.
강하늘:
자칫 잘못 하면 친구들이 자기 동정하냐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 정말 조심스럽게 말했다. 진심을 전하기에 편지가 가장 좋을 것 같아서, 손편지로 얘기를 했다. 다행히 친구들이 잘 받아줬다.

Q. 당신 친구들이 미래에 대해 지니고 있는 어떤 막연함. 강하늘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큰 고민 없이 달려온 느낌이다.
강하늘:
운이 좋은 케이스인 건 맞다. 그런데 나도 오디션에서 많이 떨어져 봤고, 고생도 많이 했다. 부산에서 홀로 올라와서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했다. 학비를 내가 벌어야 하는 상황이라 일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러다보니 어린 나이에 눈치가 빨라졌다. 좋게 말하면 유도리가 많아진 건데, 어릴 때는 “어린놈이 벌써 너무 알려고 한다”고 좋지 않게 보는 분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것들을 좋게 봐 주시는 것 같다.
강하늘 6

 Q. 스스로에게 엄격한 편인가?
강하늘:
어울리지 않게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지금 이 상태가 굉장히 좋다. 내가 흔히 말하는 ‘빵’ 뜬 스타도 아니고.

 Q. 아니, 왜. 많이들 ‘강하늘 대세’를 얘기하는데, 모르나?
강하늘:
하하하. 내가 아주 크게 화제가 되거나 한 건 아니다. 글쎄, 스타가 된다? 그런 건 정말 바라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인기는 나를 망가뜨릴 것 같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흔들리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더욱 더, 천천히 가는 지금이 좋다.

Q. 연예계라는 곳이 그런 것 같다.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환경이 사람을 약하게 만든다. 주위에서 많이 봤을 것 같은데.
강하늘: 많이 본다. 학교 안에도 그런 친구들이 꽤 있다. 안타까운 것은 뭘 했다고! CF 2-3개 찍었다고 선글라스 쓰고 다니고 그런다.(웃음) 그럴 수는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굳이 티낼 필요까지야. 사람의 신념이라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주 한다.

Q. 이런 대화들 선배들과 술자리에서 많이 하는지 궁금하다.
강하늘: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술 마시면서 연기 얘기 하는 거다. 하하하. 그래서 술자리에서 누군가 연기를 논하는 순간, 나는 다른 테이블로 옮겨버린다. 왜냐하면 연기라는 건 굉장히 주관적인 영역이잖아. 사람이 맨 정신으로 얘기할 때는 여러 사람 말에 귀 기울인다. 그런데 술을 마시면 듣지 않는다. 듣는 척만 할뿐. 서로 자기 얘기 하기 바쁘다. 그게 너무 싫어서 술자리에서 연기 얘기는 피한다.

Q. 영화 찍다보면 술자리가 많이 생길 텐데. 술자리에서 선배들이 그런 얘기 하지 않나?
강하늘:
나 역시 그건 의아했던 부분인데, 오히려 더 안 한다. 그냥 사는 얘기, 스트레스 푸는 재미있는 얘기들을 한다.
강하늘

Q. 천천히 단계를 밟아가는 강하늘에게 ‘소녀괴담’은 어떤 의미인가. 개인적으로는 다음 작품으로 가는 징검다리 같다는 느낌을 조금 받았는데.
강하늘:
음… 사실 나에겐 이게 큰 의미가 없다. ‘순수의 시대’도 그렇고, ‘쎄시봉’ ‘스물’도 마찬가지다. 이건 그냥 ‘내가 선택한 작품이고, 내가 그 안에 포함돼 있다’까지의 의미다. 나는 평소 비워내는 연습을 많이 한다. 덕분에 실제로도 많이 비워졌다. 한 작품 한 작품에 너무 큰 의미를 담기 시작하면, 다른 걸 담을 수가 없다. 작품의 성패에 크게 휘둘리기도 쉽고. 평정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Q.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다. 가령 뭔가에 크게 데인 경험이 있다거나.
강하늘:
고등학교 2학년 때 ‘천상시대’라는 뮤지컬을 했다. 첫 뮤지컬이었고 주연이었다. 그 뮤지컬을 하고 나서 무대 공포증이 생겼다. 작은 발표 하나조차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 그 모습을 본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해 주셨다. “무대라는 곳은 숨을 곳이 없다. 네가 이겨서 장악하거나, 져서 그냥 포기해라” 그때부터 걷는 것 하나, 손 올리는 것 하나, 말 하는 것 하나하나 모두 다시 연습했다. 내 안의 쌓인 것들을 비워내는 연습도 그때부터 하기 시작했다.

Q. 먼 훗날 강하늘이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면, 오프닝과 엔딩에 어떤 음악을 넣고 싶나?
강하늘:
오프닝은 데미안 라이스의 ‘루트리스 트리’(Rootless Tree).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뿌리 잃은 나무’가 마치 나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려 하고 나름 무게를 가지려고 하지만, 자세히 보면 뿌리 없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 노래가 오프닝으로 좋을 것 같고, 엔딩은 ‘라비앙 로즈’였으면 좋겠다. ‘장밋빛 인생’, 멋지지 않나.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