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좀 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죠, 마성은” – 1

김재욱은 아직 이름보다 캐릭터에 대한 수식어로 더 익숙한 배우다. 어느 이동통신 광고에서의 ‘천지창조’나 지난 해 여름 출연한 MBC <커피프린스 1호점>의 ‘와플선기’, 그리고 최근 개봉한 영화 <앤티크>에서는 ‘마성의 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 공기를 조금 비현실적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순정만화형 미남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고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초겨울로 접어드는 11월, KBS <바람의 나라> 촬영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재욱과 함께 경복궁 돌담길을 걸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이 끝나고 나서 굉장히 다양한 기회가 있었을 텐데 영화 <앤티크>를 선택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민선우’라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김재욱
: 음…그냥 한 마디로, ‘마성’이고 뭐고를 떠나서 매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케이크를 만들 때의 선우와, 진혁(주지훈)이와 있을 때의 선우와, 여성들과 있을 때의 선우와 남자를 만날 때의 선우 사이에는 갭이 꽤 크거든요. 그런데 그 극단적일 수 있는 상황들을 굉장히 조화롭게 잘 이겨내는, 재미있는 면이 많은 캐릭터였어요. 이 사람과 부딪히고 저 사람과 부딪히고, 또 선우의 마음과는 다르게 일이 돌아가는 상황이라는 게 너무 재밌어서 이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정말로 매력적인 인물이 나오겠다고 생각했어요.

말한 대로 선우는 상황과 상대에 따라 상당히 다른 면을 보여주는 사람인데, 본인은 어떤 편인가요.
김재욱
: 저도 그런 면에서는 비슷해요. 타협이라고 하긴 좀 그렇고, 제가 허용할 수 있는 선 안에서는 굳이 사람들과 부딪힐 필요가 없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게임을 좋아하는 걸 제가 알아요. 그런데 굳이 그 친구 앞에서 제가 좋아하는 야구 얘기를 꺼낼 필요는 없거든요. 제가 아는 지식 안에서 게임 얘기를 던져서 그 사람과 만나는 지점을 찾는 게 좋지, 누가 누구를 따라가기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걸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 편이에요.

“게이 바에 들어가는 순간 공기가 확 달라졌어요”

그러면 <앤티크>의 민규동 감독과는 선우를 어떤 인간으로 표현해보자고 얘기했나요.
김재욱
: 진혁이와 선우는 굉장히 3D적인 인물이에요. 한 가지 감정을 표현하고 있을 때도 안에는 적어도 두세 가지 감정이 담긴 상태죠. 수영(최지호)이 같은 경우는 2D에 가까운 인물인 데 비해 선우는 여러 가지 과거와 사연이 많은 친구니까, 그런 부분에서 감독님이 많이 신경을 쓰셨어요. “여기서 화를 내는 걸 좀 더 표현해 볼까요?”라고 하면 “그래도 그 안에서 빨간 감정을 내보이면서도 파란색이 묻어나면 좋겠고, 그 주위는 노란색이면 좋겠고…”하는 식의 아주 어려운 주문을 많이 하셔서. (웃음) 현장에서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하면서 만들었어요.

‘프랑스로 유학을 다녀온 천재 파티셰’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파티셰 강습도 받고, 뮤지컬 연습도 하고 프랑스어도 배웠다던데 그런 테크닉적인 부분 외에도 선우의 내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많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김재욱
: 졸업식 날 진혁이에게 차이고 나서 선우는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아요. 그 전에 부모의 불륜을 보기도 했고, 부모의 불륜에 분노한 게 아니라 자기가 사랑했던 사람이 그 상대라는 데 분노하는 자신을 경멸하게 되는 데 이어 큰 맘 먹고 고백한 진혁이에게 차이면서 인생을 포기하겠다고 마지막으로 몸을 던진 게이 클럽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되잖아요. 그 후로 10년의 세월 동안 선우에게는 굉장히 많은 일이 있었을 거예요. 프랑스에 유학을 가서 쟝(앤디 질렛)을 만나고, 그 전후에도 정말 많은 남자를 만나면서 현재의 선우가 된 걸 텐데 그걸 이해하기 위해 적어도 그것과 똑같은 경험을 하지 못하는 이상 성적소수자들이 모이는 곳에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영화 같은 걸 보는 것도 좋지만, 직접 게이들을 만나서 대화해보고, 게이 바에 가서 그 분위기에 함께 해 볼 필요가 있었죠.

그 과정에서 그 전에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을 깨닫기도 했나요.
김재욱
: 직업이나 성격에 따라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는 행동이 있어요.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마실 때는 특유의 여유롭고 전문가적인 ‘각’이나 분위기가 나오는 것처럼. 게이 바에 간 것도 우리가 ‘게이’라는 이미지에서 떠올리곤 하는 특징적인 손동작이나 걸음걸이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걸 캐치하고 싶어서였어요. 그런데 제가 거기서 얻은 건,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전부 그렇지는 않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게이 바에 가면 게이가 아니지만 그냥 놀러온 사람들을 빼더라도 최소한 90%가 게이거든요. 그런데 그 공간의 공기의 밀도라는 게, 제가 처음 경험하는 느낌이었어요. 분명히 여긴 한국이고 서울이고, 내가 평소에 돌아다니는 이태원이라는 동네인데 들어가는 순간 공기가 달라요. 그걸 느껴본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생각해요.

다른 차원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 그게 나쁘진 않았죠?
김재욱
: 네. 나쁘지 않았어요. 정서가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삶이 굉장히 크게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있으면 이런 에너지를 뿜어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결국 제 머리 속에는 저밖에 없어요”

선우라는 사람을 표현하는 ‘마성’이라는 단어는 ‘매력’의 좀 다른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재욱
: 좀 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죠, 마성은.

그러면 다른 사람에게서 ‘마성’을 발견하게 되는 건 어떤 때인가요?
김재욱
: 제 의지라던가 컨디션과 상관없이 제 감정을 확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특별히 웃기려고 의도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 자체로 너무나 웃긴 사람이라던가, 저에게 뭔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나 반성하게 만드는 사람. 그런 것도 하나의 마성이라고 보고 싶어요. ‘마성=성적인 느낌’은 아닌 것 같거든요. 처음에는 ‘마성’이라는 단어가 너무 강해서 그걸 해석하는 데 좀 매달리기도 했지만 금방 접었어요. 지금 한 단어에 매달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직도 일본 사람으로 오해받을 때가 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고, 중성적인 이미지도 강한 편인데 그래서 국적이나 성별, 나이처럼 사람을 뭔가로 분류할 때 사용하는 기준의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인이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 가운데 제일 분명한 건 뭐라고 생각하나요.
김재욱
: 음, 뭘 하든…….뭘 하든 중심은 저라는 거예요. 세게 말하면, 굉장히 이기적인 거죠. 결국 제 머리 속에는 저밖에 없어요. 사소한 데서는 남들 얘기도 듣고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결국 ‘니 인생은 니가 책임져야지. 니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는 너한테 물어봐야지 주위에 기대면 안 돼’라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과거에 사회적으로 어떤 비난받을 짓을 했다 쳐요. 그러면 그 비난받을 짓을 한 저를 구원해줄 수 있는 건 미래의 저 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걸 반성하고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과거의 저는 구원받을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 자신을 믿고 가는 것만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건 아주 당연한 얘기 같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것 같은데, 살면서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인가요.
김재욱
: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아주 어릴 때 일본에 가서 여덟 살 때까지 자랐어요. 그러다보니 정서가 반씩 섞여 있는 부분이 있어요. 그걸 깨달은 건 한 1, 2년 전이었는데, ‘내가 일본인의 정서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구나’라는 걸 알아버렸죠. 그런 식으로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모든 걸 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하나의 사건이나 사물을 너무 여러 방향에서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위험해지는 게, ‘자기’가 없어져요. 사람을 만날 때나 삶에 임하는 태도가 모두 그렇다 보니까 나 자신이 없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덜컥 겁이 났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 과정을 통해 자아가 더 강해진 셈인가요.
김재욱
: 그렇죠.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원우 (four@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