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탐구생활│남자를 알면 리얼버라이어티를 얻는다

만약 당신이 새로운 리얼 버라이어티를 만들어야 할 연출자라면 어떤 기준으로 멤버를 섭외할 것인가? 물론 0순위는 유재석 혹은 강호동을 데려오는 것이겠지만 1순위는 남자들로만 팀을 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009년에 등장해 괄목할 만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는 KBS <해피선데이> ‘남자의 자격’과 <천하무적 토요일> ‘천하무적 야구단’을 비롯해 전통의 강자인 MBC <무한도전>과 KBS ‘1박 2일’까지 현재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세는 남자, 아니 남자들 이야기다. 과연 무엇이 이러한 흐름을 만들었는지 이들 프로그램을 비롯한 최근 예능의 흐름을 되짚어보는 동시에, 현재 예능에서 활약 중인 수컷 출연자들의 생태계 피라미드와 진정한 생존의 미림에서 그들이 만났을 때 가능한 예상 시나리오를 <10 아시아>가 준비했다. 여기에 예능을 위한 남자의 자격 매뉴얼은 당신의 섭외를 위한 좋은 팁이 될 것이다.

“은근히 밤에 남자들끼리 떠나는 것도 재밌는 것 같아요.” 얼마 전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 올빼미 투어에서 이승기는 설레는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정확히 말해 ‘1박 2일’은 몇 번의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남자들끼리 어디론가 떠났고, 시청자들은 그들의 여행에 대해 ‘은근히’가 아니라 대놓고 재밌어했다. 다만 남자들끼리의 여행에서 방점이 찍혔던 것이 여행이었던 것과 달리 이승기의 이 말은 그동안 ‘1박 2일’을 함께하던 남자들이라는 주체를 새삼 환기시켰다. 그리고 이 새삼스러운 환기는 2009년 하반기를 주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이해하는 또 다른 시선을 제공한다. ‘1박 2일’을 비롯해 ‘남자의 자격’과 <천하무적 토요일> ‘천하무적 야구단’은 리얼 버라이어티인 동시에 남자들의 세계이기도 하다.

남자들만의 세계가 매력적인 이유

MBC <무한도전>의 성공 이후 한국 예능의 대세가 리얼 버라이어티로 넘어왔다는 사실은 2009년 말의 예능 지형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리얼 포맷의 꾸준한 강세 속에서도 개별 프로그램의 세력 분포도엔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앞서 말한 남자들의 세계의 약진이다. 원래부터 강자였던 ‘1박 2일’은 주말 예능의 독재자로 떠올랐고, 심지어 언더독 취급을 받았던 ‘남자의 자격’은 리얼 버라이어티 3강을 이루던 SBS <일요일이 좋다> ‘패밀리가 떴다’에 크게 뒤처지지 않는 성적을 내고 있다. 또한 ‘천하무적 야구단’이 양대 MC가 버티고 있는 MBC <무한도전>과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의 틈바구니 안에서 두 자리 수의 시청률을 올리는 것은 이 프로그램을 단순히 틈새시장 아이템으로 볼 수 없음을 증명한다. 그에 반해 ‘1박 2일’과 유사한 포맷이되 고정 여자 멤버를 가지고 있는 ‘패밀리가 떴다’와 아예 여성 멤버들을 전면에 내세운 ‘골드미스가 간다’가 하락 곡선을 그린다는 사실은 그래서 흥미롭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런 남자들만의 세계가 무엇을 공유하기에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지형도 안에서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보다 강세를 보이느냐다.

tvN <롤러코스터> ‘남녀탐구생활’에서 남자 편을 볼 때 남자는 공감하고 여자는 호기심을 느끼며 즐기는 것처럼 남자들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을 즐기는 관점은 상당히 양가적이다. 가령 ‘천하무적 야구단’에서 “지금 수입만큼만 들어온다면 연예 활동 대신 야구를 하겠다”는 임창정에게 “나는 수입의 1/4만 들어와도 야구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하늘의 모습은 그것이 진심이건 아니건 스포츠를 좋아하는 남자들에게 공감과 부러움을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친구들과 캠핑카를 타고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1박 2일’이나 17 대 1의 말도 안 되는 허풍을 늘어놓는 ‘남자의 자격’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이 이들 리얼 버라이어티를 통해 즐기는 리얼은 단순한 일상의 재확인보다는 가장 납득 가는 방식을 통한 로망의 실현에 가깝다. ‘천하무적 야구단’과 자주 비교되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오빠밴드’의 폐지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만약 단순히 실제상황을 기준으로 한다면 3루타를 잘 친다는 것만으로 조빈이 대우를 받는 ‘천하무적 야구단’보다는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정모가 오히려 고정 자리를 잃을까봐 형들 앞에서 쩔쩔매는 ‘오빠밴드’가 더 리얼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진정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멤버들의 실제 인지도가 아닌 밴드라는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을 얼마나 공감가게 그려내느냐다.

남성형 리얼 버라이어티의 표준

이처럼 꿈을 좇는 과정이 남성의 로망을 자극한다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성장 스토리는 마치 만화 <슬램덩크>의 그것과 같은 재미와 감동을 여성 시청자에게 전달한다. 당장 우동 한 젓가락에 목숨을 걸 정도로 치졸한 ‘1박 2일’ 멤버들이 외국인 친구들과의 여행에서는 함께 걷고 같이 벌칙 받는 걸 마다하지 않는 모습과 ‘남자의 자격’에서 몇 번씩 물을 먹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웨이크 보드 미션에 성공하는 이경규의 모습은 그 미션 자체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충분히 즐길 서사를 제공한다. 마치 스스로 야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 없이도 서서히 천하무적 야구단의 경기 하나하나를 마음 졸이고 보는 백지영 단장의 경우처럼.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졌으되 누군가에겐 꿈을 자극하고, 누군가에겐 호기심을 자극하는 성장 서사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국 남자들의 세계는 <무한도전>이 열어젖힌 리얼 버라이어티의 공식과 맞닿아 있다. 아니 역시 남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무한도전>이 남자들에게 어울리는 방식의 리얼 버라이어티 포맷을 만들어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지도 모르겠다. 남자 혹은 수컷인 이 테스토스테론 덩어리들은 때론 대책 없이 유치하지만 그 특유의 동물적 위계질서를 통해 어떤 미션을 수행할 때, 더 정확하게는 일종의 정복을 목표로 할 때에는 더할 나위 없는 기민함과 조직력을 보여준다. 아직 표류하는 느낌이 강하던 ‘천하무적 야구단’이 김C의 감독 부임과 함께 추진력을 얻은 건 우연이 아니다. 즉 유재석 이하 남성 멤버들의 다양한 도전을 통해 만들어진 <무한도전>의 포맷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표준이라기보다는 남성형 리얼 버라이어티의 표준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정석까진 아니더라도 예능 안에서 뛰어놀 남자의 자격이 어느 정도 형성된 것이다.

‘여자의 자격’을 가진 새로운 영토는 어디에 있나?

때문에 남자들이 주도하는 프로그램이 대세인 현재의 예능 지형도가 제기하는 질문은 어째서 여성이 공감하고 남성이 호기심을 느낄 여자탐구생활이 없느냐로 전환된다. 분명 ‘패밀리가 떴다’는 ‘1박 2일’이 보여줄 수 없는 남자 멤버와 여자 멤버의 화학작용을 일으키지만 그것은 종종 공대 MT에 따라온 아름이처럼 남자 멤버와의 핑크빛 무드를 만드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7명의 걸그룹 멤버가 출연하지만 그들이 능동적인 무언가를 만들기보다는 예비역 선배 같은 남자 MC들의 지시에 따르는 KBS <청춘불패>는 이러한 문제를 가장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여자들이 모인 프로그램이 재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여자 멤버들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여자들의 로망을 자극할 포맷이 한국 예능에 아직 없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남자들의 여행에 따라온 아름이가 되거나, MBC에브리원 처럼 남자들에 최적화된 포맷 안에서 유사 남성이 되거나, 좋은 남자 만나는 게 최고인 극도의 현실주의자로서만 여성들은 예능 안에서 존재할 수 있었다. 더는 새로운 걸 찾기 어렵다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지형도 안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진정한 예능의 ‘여자의 자격’을 부여해줄 새로운 영토가 아닐까.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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