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욱 감독

김병욱 : 세상의 시트콤은 둘로 나눠진다.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과 그 나머지. 한국 시트콤의 개척자였고, 전성기를 이끌었으며, 다시 시트콤의 가능성을 새롭게 끌어낸 시트콤 감독. 이제 그가 한국 시트콤 그 자체보다 더 큰 ‘김병욱 시트콤’의 절정으로 향해 가고 있다.

장진 : 영화감독. 김병욱 감독이 연출한 SBS <좋은 친구들>의 작가 및 ‘헐리웃 통신’의 리포터를 맡았다. 당시 김병욱 감독은 제작비 문제로 섭외가 어려워지자 그에게 “너에게 꼭 맞는 대사도 있다”며 장진을 출연시켰다. <좋은 친구들>은 ‘헐리웃 리포터’ 외에도 장진의 독특한 유머감각이 빛난 ‘제 3의 사나이’ 등 시트콤적인 캐릭터와 상황설정의 코너들이 다수 있었다. 장진은 당시 김병욱 감독을 사람 착하고 능력도 뛰어난 “꿈의 PD”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지명 : 배우. SBS <순풍 산부인과>에 출연했다. 경제력을 쥔 부유한 할아버지, 어수룩한 사위(혹은 아들)와 약거나 똑똑한 딸들, 말썽쟁이거나 우등생인 손주 등 ‘김병욱 가족 시트콤’의 틀은 SBS <LA 아리랑>을 거쳐 <순풍 산부인과>에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순풍 산부인과>는 여느 가족 시트콤과 달랐다. 김병욱 감독은 가족 이야기 안에 ‘방귀를 뀐 범인’을 잡으려는 <X-FILES>식의 미스터리, 극적 사건 대신 일상의 축적을 통해 쌓이는 청춘 멜로, 크리스마스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려 했던 부부와 연인들이 최악의 상황에 빠지는 블랙유머 등 수많은 형식과 이야기를 끌어들였다. 무정형의 덩어리처럼, <순풍 산부인과>는 그의 작품들이 보여줄 요소들을 혼란스럽게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일일 시트콤을 500여회 연출하며 에피소드를 쥐어짜낸 결과물이었고, 김병욱 감독은 <순풍 산부인과>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박정수 :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출연해 한국 시트콤 역사상 처음 죽음으로 엔딩을 장식한 배우. 당시 김병욱 감독은 누군가 “시트콤이 왜 그래요?”라고 하자 “왜 그러면 안 되는데요?”라고 답했다. 매주 5회, 회당 2개 이상의 에피소드를 만드는 살인적인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늘 “(시트콤은) 웃기기만 해야 한다거나 유치하다는 하대”에 분노하며 “시트콤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는 대노하면 몽둥이까지 드는 신구를 통해 일상화된 가정 폭력을, 재산을 둘러싸고 갈등을 벌이는 며느리와 시아버지, 형제들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또한 각자의 길 때문에 이별을 선택한 재황과 민정의 멜로는 여느 드라마보다 현실적이었다. 박정수의 죽음은 언제나 즐거운 시트콤을 죽음마저 감당해야 하는 연속적인 삶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김병욱 감독이 사람을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시청자에게 웃음을 줄수록, 그의 시트콤은 현실이 얼마나 비정하고 슬픈 것인지 보여줬다.

윤종신 : 가수 겸 MC. <순풍 산부인과>때부터 김병욱 감독의 팬을 자처,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에 ‘팥빙수’를 만드는 청년으로 출연했고, SBS <똑바로 살아라>의 타이틀곡을 불렀다. 이밖에도 김병욱 감독의 작품에는 김창완, 노영심 등이 타이틀곡을 불렀고, 그는 새 작품에 들어가기 전 선곡의 감을 익히려고 다양한 음악을 듣는 등 음악에 많은 신경을 쓴다. MBC 라디오 PD시절 <별이 빛나는 밤에>에 참여하는 등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취향이 남아있는 듯.

송재정 : 작가. <순풍 산부인과>부터 MBC <거침없이 하이킥>까지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 대본을 썼다. 김병욱 감독이 “이야기를 뒤엎어서 시간을 역순으로 묶는다거나 미스터리로 푸는 구성”이 뛰어나다고 말한 것처럼, 송재정 작가는 ‘미드’를 연상시키는 미스터리를 시트콤 안에 집어넣는데 탁월하다. 그가 집필한 MBC <크크섬의 비밀>은 미스터리 멜로 시트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는” 김병욱 감독은 “홍상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송재정 작가와 함께 가족 이야기 안에 온갖 세상사를 넘나들었고, 현실과 판타지를 오갈 수 있었다. 때문에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은 MBC <지붕 뚫고 하이킥>처럼 가난한 아이의 도둑질이 추리물과 연결되고, 종이학 만 개 접기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과장이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었다.

윤기원 : <순풍 산부인과>에서 정해진 배역 없이 ‘윤기원’이라는 이름으로 종종 출연하던 탤런트. 윤기원은 <순풍 산부인과>에서 가짜 국가정보원 등 황당한 캐릭터로 출연하곤 했다.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된 시트콤에서 윤기원은 스토리와 상관없이 웃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캐릭터였던 셈.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자신을 미래에서 온 인간이라 주장하는 윤기원의 캐릭터는 <순풍 산부인과> 시절의 그에 대한 오마주나 다름없다.

박영규 : <순풍 산부인과>, <똑바로 살아라>에 출연한 탤런트. 박영규는 두 작품 모두 돈 없고 쩨쩨한 가장으로 출연한다. 하지만 <순풍 산부인과>에서의 박영규가 돈을 아끼려고 쪼잔한 행동을 하며 장인어른에게 신세지는 정도였다면, <똑바로 살아라>의 박영규는 50만원 때문에 기력이 탈진할 만큼 기도하고, 돈이 없어 옛사랑과의 데이트 도중 도망친다. 그리고, <똑바로 살아라>는 모두 각자의 길을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끝났다. 인간은 고상하게 형이상학적으로 살고 싶지만, 돈이나 상하 관계 같은 형이하학적인 부분에 묶여 있다. 가족이나 동료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함께일 것 같았던 사람들은 언젠가 이별한다. 김병욱 감독은 시트콤 속에 이러한 처연한 삶의 진실을 날선 웃음으로 보여주며 ‘김병욱 철학’을 명확하게 완성해 나갔다. 그리고, 풍자와 스토리, 그리고 멜로가 더 강조된 SBS 주간 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로 새로운 시기로 접어든다.

서민정 : <똑바로 살아라>와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한 배우. 김병욱 감독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하려고 캐릭터에 극단적인 면을 부여, 그들이 서로 부딪치게 하는 것을 즐긴다. 서민정은 그런 캐릭터 중 대표적인 예. 낙천적인데다 앞에서는 웃기만 하는 이 캐릭터는 그 이상한 성격 때문에 주위 사람들과 늘 문제를 일으켰다. 당시 김병욱 감독은 연기 경험이 없던 서민정에게 일일이 연기 지도를 하며 이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황정음이 김병욱 감독에게 ‘주님’이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처럼, 그는 스튜디오의 주조정실에서 모니터를 보며 연기자에게 “조금 목소리를 낮춰서”, “조금 과하다”하는 식으로 연기를 세밀하게 지도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낸다. 그의 작품에서 여러 청춘스타가 배출된 이유 중 하나. 하지만 이는 젊은 스타가 좀처럼 출연하지 않아 연출자가 신인 배우들을 만들어나가야 하는 시트콤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병욱 감독은 배우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와 배우를 맞춰간다고.

이순재 :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어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하는 배우. 최고의 드라마 배우인 그가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한 것은 김병욱 감독의 변화를 상징했다. <귀엽거나 미치거나>에서 드라마적인 서사구조를 시도했던 그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후반부를 멜로와 미스터리 위주로 꾸며나갔다. 우주에서 시작한 첫 회처럼, <거침없이 하이킥>은 가족 시트콤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려는 것 같은 거대한 시트콤처럼 보였다. 결국 <거침없이 하이킥>은 소소한 웃음을 주며 안정적인 시청률을 올리던 전작들과 달리 열렬한 팬 층을 만들며 시트콤의 대중적인 한계를 돌파했다. 한 때는 멜로드라마를 싫어했던 사람이 “드라마를 사랑”하게 되면서 얻어낸 성과.

신세경 :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 중인 배우. 김병욱 감독은 이 작품에서 가난한 세경-신애 자매가 부유한 순재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것으로 한국 가족과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순풍 산부인과>에서는 가난한 사위가 장인에게 빌붙어 살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는 무능한 보석도 회사 부사장이 돼 안정적으로 산다. 대신 가난한 자의 자리엔 강원도에서 올라와 60만원의 월급에 삶이 걸린 절대 빈곤의 세경이 들어온다. 또한 세경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강제로 가족이 해체 당한다. 가족은 정 대신 경제적인 힘으로 묶여 있고, 가장인 순재는 가족보다 자신의 연인부터 생각한다. 도덕적이고 싶지만 번번이 욕망에 지는 순재는 ‘사랑도 명상도 개뿔’이라 외치는 <지붕 뚫고 하이킥>이 그려내는 ‘형이하학적’인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그리고, 언제나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는 인간을 보여주던 김병욱 감독은 세경의 눈물로, 어린 해리가 느끼는 외로움으로 인간에 대한 소통과 연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거침없이 하이킥>과 비교하면 <지붕 뚫고 하이킥>은 다시 작은 가족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 안에는 시대와 인간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다. 그렇게 이 시트콤 감독은 세상과 화해했고, 시트콤으로 동시대의 어느 드라마도 달성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 예술가에게 경의를.

Who is next
김병욱 감독의 전작 <거침없이 하이킥>에 출연했던 정준하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