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리뷰, 이소라 “제 귀는 또 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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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시작 시간은 8시 정각이었다. 이소라는 8시 5분에 공연장에 도착해 후배 정준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디니?” “누나 저 객석에 앉아있어요.” “어, 그렇구나. 나도 앉아있어. 차 안에.” 공연은 8시 15분에 시작했다.

지난 19일부터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공연 중인 이소라는 무대 위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노래만 불렀다고 한다. 헌데 26일 목요일은 달랐다. 지각을 한 것이 못내 미안했는지 수다를 조금 늘어놨다.

“제가 늦게 일어났어요. 화장 하는 시간 30분 생각하고 7시 반까지 도착할 거 계산하면서 잤는데 지각하고 말았네요. 월, 화, 수엔 거의 안 잤는데 공연 날 되니까 왜 이리 잠이 몰려오는지. 목이 덜 풀려서 식은땀이 흘러요. 오랜만에 여러분 만나는데 이러면 안 되는데…. 반성할게요.”

공연 시작 후 이소라는 ‘처음 느낌 그대로’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날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를 연달아 불렀다. ‘난 괴로워 니가 나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만 웃고 사랑을 말하고 오 그렇게 싫어해 날’이라는 이소라가 쓴 가사. 그렇다. 팬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울게 해주는 노래다. 이소라가 고개 숙여 처연하게 노래하자 흐느끼는 관객들도 있었다. 이소라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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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에 여자분들 쭉 계시고 남자분도 한 명 계시네요. 제 공연에는 혼자 오시는 분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뭐 즐겁게 볼 공연은 아니니까. 자기 옛날 생각하면서 들으시나요? 같은 공간에서 같은 걸 느끼는 건 좋은 거잖아요.”

밴드는 커튼 뒤에 숨어 무대에는 이소라만 보였다. 커튼이 하나 걷히자 하늘에 초승달이 떴다. ‘제발’ ‘바람이 분다’ 등이 이어진다. 어쩜 노래가 이리 절절할 수 있을까? 이소라의 말처럼 관객들은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들의 옛 생각을 할 것이다. 떠나간 사랑 말이다. 그러니까 우는 거겠지. 곡들에 제목이 붙여지지 않은 7집에 실린 ‘트랙3’ ‘트랙4’ ‘트랙5’가 나올 때는 그나마 분위기가 밝아졌다.

새 앨범 ‘8’의 곡을 들려줄 차례가 임박했다. 홍준호는 통기타를 ES-335로, 임헌일은 펜더를 깁슨 기타로 바꿔 멨다. 새 앨범 첫 곡이기도 한 ‘나 Focus’의 사이키델릭한 기타 인트로가 시작되자 공기가 바뀌는 느낌. 앉아서 연주하던 이승환(건반)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소라의 노래가 터져 나오자 이전과 완전히 다른 에너지가 공연장을 감쌌다. 앨범에도 참여했던 임헌일과 이상민(드럼) 비롯해 이승환-홍준호-최인성(베이스)가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앨범만큼이나 강렬했다.

이후의 공연은 8집의 곡들을 거의 순서대로 선보이는 자리가 됐다. 보컬 이펙터가 강하게 걸린 ‘좀 멈춰라 사랑아’ ‘쳐’ ‘흘로 All Through The Night’이 순서대로 이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헤드뱅잉을 하면서 공연을 봐야 할 것 같았다. 물론 이소라 팬들은 그것에 익숙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마도 같은 생각(떠나간 옛사랑)을 하던 관객들은 이제 다른 생각들을 하지 않았을까? 새 앨범을 좋아한 이들은 한없이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었겠다.

“새 앨범 곡들은 제가 좀 움직이면서 노래해야 할 것 같은데 앉아서 하는 게 조금 그래요. 임헌일 씨 공연 보면 진짜 멋있게 움직이거든요. 그런데 앉아있는 나 때문에 못 움직이면 어떡하지? 헌일아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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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집 곡을 쏟아낸 이소라는 객석에 앉아있는 정준일을 즉석에서 무대로 올렸다. 정준일이 무대에 오르자 여성 팬들의 대단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정준일은 임헌일의 기타에 맞춰 함께 메이트 1집에 실린 ‘그리워’를 노래했다. 이소라는 “저랑 노래하는 스타일이 비슷하죠? 노래 하나를 마치 공연 하나 하듯이 부르네요”라고 말했다.

이소라는 이날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은 듯 노래를 하다가 몸을 막 젖히고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이곤 했다. 본인 말로는 노래가 잘 안 될 때 나오는 버릇이란다. “공연을 앞두고 노래 연습을 많이 했어요. 쉴 때는 노래 연습을 잘 안 하거든요. 제 음악을 기다려준 여러분께 고마운 마음이에요. 고마우니까 잘 하려고 해요. 후기를 읽어보면 공연 중에 말을 잘 안 해서 아쉽다고 하시던데, 그래서 오늘은 제가 말을 좀 많이 하네요.”

새 앨범 발표 후 인터뷰 및 방송을 일체 하지 않은 이소라는 이날 공연에서 근황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줬다. “7집에서 8집을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죠. 별로 노래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저 누워서 뒹굴 거렸죠. 뭘 새롭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고, 몇 년이 며칠처럼 흘러갔어요. 이번 앨범 마무리는 근래 몇 달에 끝냈어요. 만든 지 오래 되서 이미 제 마음을 떠난 노래들이에요. 지금은 제 귀가 또 달라졌거든요. 9집을 언제 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과 또 다른 모습일 거예요. 1~8집이 변화가 있었는데 그 변화처럼 제가 사는 모습도 달라졌죠. 이젠 또 다른 노래를 들려드리고 싶네요.”

말을 마친 이소라는 ‘난 별’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기도하듯이 노래하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새 앨범 곡들이 전과 다르다고는 하지만 이소라는 역시 우리가 알고 있는 ‘보랏빛 여신’ 이소라였다. 제목만 들어도 슬픈 노래를 너무나 슬프게 부를 줄 아는 가수. 이 세상 모든 슬픈 사랑의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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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포츈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