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25주년 타미김, 이 땅에서 기타리스트로 산다는 것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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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가 종서 형을 안 마주쳤다면 어땠을까? 미국에서 조금만 더 견뎠으면 지금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요? 뭐, 인생은 알 수 없는 거지만.”

기타리스트 타미김이 회상에 잠겼다. 타미김은 1996년에 미국 클럽에서 활동하던 중 김종서를 만나 밴드 결성을 제안 받고 귀국했다. 미국에서 쌓은 입지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타미김이 합류한 김종서 밴드는 그해 히트 곡 ‘아름다운 구속’ 덕분에 정규 5집을 100만 장 넘게 팔아치우며 인기를 얻게 된다. 타미김 음악인생의 황금기였다.

“살면서 가장 바쁜 시절이었어요. 오직 김종서 밴드의 공연 활동만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전국에 공연을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죠. 지금으로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죠.” 김종서는 4집까지 세션 연주자들로 앨범을 녹음했다. 5집부터 비로소 밴드의 형태로 작업을 했고 대중들에게 큰 사랑도 받았다. 하지만 계약상의 문제로 밴드는 오래 가지 못했다.

타미김을 처음 본 것은 한 기타 레슨 동영상을 통해서였다.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악기 레슨 동영상이 유행처럼 생기던 시절이었다. 해외 기타리스트들의 영상을 찾아 헤매던 기타 키드들이 한국의 유명 기타리스트들의 가르침을 간접적으로나마 얻게 됐다. 영상 속 타미김은 대단히 유머러스했다. 그 살벌한 연주를 결코 따라할 수는 없었지만. 하지만 그가 남긴 연주곡 ‘타미스 블루스(Tommy’s Blues)’만은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기타를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연주해보는 곡이다.

타미김이 데뷔 25주년을 맞아 7월 4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공연장 사운드홀릭에서 기념공연을 연다. 1989년 프로 연주자로 데뷔한 타미김은 김종서 밴드를 거쳐 조용필, 임재범, 이승철, 김건모, 인순이 윤수일 등 한국 대표 가수들의 앨범 및 공연에 세션 연주자로 참여해왔다. 참여한 앨범만 5,000여장. 올해 초에는 조용필의 ‘헬로’ 앨범에 참여하면서 ‘제3회 가온차트 케이팝어워드’에서 올해의 실연자상 연주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후학을 양성하며 그룹 H2O, 타미김 블루스 밴드로 활동 중이다.

타미김에게도 기타 키드 시절이 있었다. 10대 때는 신대철(시나위)과 김도균(백두산)을 동경했다. “제 눈엔 신대철이 지미 페이지, 김도균이 리치 블랙모어로 보였어요. 우리 때는 마땅히 기타를 배울 곳이 없었죠. 공연장에서 그 분들의 연주를 가까이서 보는 것 자체가 굉장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도균 형님에게 찾아가 심부름이라도 할 테니 거둬달라고 했죠.(웃음) 제가 바란 건 그저 가까이서 도균 형님 연주를 보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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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미김은 한국에서 프로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1995년에 혈혈단신 미국 할리우드로 M.I (Musician’s Institute)에 입학하고 본격적으로 현지 활동에 들어갔다. 당시 아시아인으로는 유일하게 지역의 유명 클럽인 위스키 어 고 고, 제임스 브라운이 운영했던 란제리, 건즈 앤 로지스의 길비 클락의 코코넛 티저 등에서 공연을 했다.

“학교에 들어가는 것은 2차적인 거였고, 현지에서 활동하면서 제 연주를 탄탄하게 다지고 싶었어요. 사실 가요 세션만 하는 게 조금 답답하기도 했죠. 그런데 미국에 건너가 밴드를 시작하니 이건 뭐 도저히 먹고 살 수가 없었어요. 밑바닥을 기더라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각오로 부딪혔죠.”

미국에는 살벌한 연주자들이 가득했다. 타미김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 연주자들은 뮤지션유니온에 실력에 따라 A, B, C급으로 나뉘어 등록이 된다. 연주자가 필요한 프로듀서, 스튜디오 매니저들이 뮤지션유니온을 통해 필요한 연주자들을 구하는 것. 타미김 역시 뮤지션유니온에 등록돼 연주를 다녔다.

“미국도 뮤지션들 사는 모양새는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어요. 정말 힘들죠. 록 스타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에요. 단순히 잘 치는 수준으로 되는 게 아니라, 같은 걸 연주하더라도 듣는 이를 매혹시켜야 하죠. 속된 표현을 쓰자면 ‘돈 냄새’나게 연주해야하는 거죠. 하하하! ‘쇼 미 더 머니’처럼. 그런 연주자들이 많기 때문에 미국의 팝음악이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죠.”

타미김은 김종서를 통해 한국에 들어온 후 고국에서 성실하게 경력을 쌓아갔다. 자신의 음악보다 세션 등의 생업에 몰두하는 시간이 더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한국에서 기타리스트로 살아가는 최선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블루스는 결코 놓지 않았다. 타미김은 1998년부터 타미김 블루스 밴드를 조직해 꾸준히 활동 중이다.

“제 음악의 근본을 이루는 블루스를 계속 지켜가자는 의미로 팀을 결성했어요. 기본이 없으면 도태되기 마련이거든요. 블루스는 파면 팔수록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는 깊은 음악이에요. 녹음해놓은 음원들을 모아서 앨범을 낼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타미김은 이번 25주년 공연을 통해 자신이 걸어온 음악여정을 펼쳐 보여준다는 각오다. 신대철, 박상민, 홍경민, 김정우(톡식), 화이팅대디 등이 게스트로 나올 예정이다. “어린 시절에는 누군가의 음악에 영향을 받고 연습하는 것이 중요했죠. 이제는 저도 나이를 먹어 누군가를 가르치는 입장이 됐어요. 제 연주가 이제 막 성장하는 연주자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합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타미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