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정의 뭔걱정, 서태지와 신해철의 90년대 ② 1996~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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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신해철의 90년대 ① 1990~1992 에서 계속

# 1996년
1996년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공식 해체된 해다. 이들의 해체는 9시 뉴스로 보도되고 전 국민의 이목을 끌만큼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약 5년간의 활동 기간 동안 서태지와 아이들은 가요계를 완전히 바꿔 놨다. 매 앨범마다 해외에서 유행하는 첨단의 음악들 가령, 갱스터랩, 얼터너티브 록 등을 선보였고 팬들은 새로운 음악을 쫓아가기 바빴다. ‘하여가’ ‘교실이데아’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 등 모든 타이틀곡이 이슈의 중심이면서 동시에 첨단의 트렌드를 선보인 것들이었다. 서태지가 작사, 작곡, 프로듀싱을 모두 해낸 서태지와 아이들의 1~4집은 당시 10대 소녀들이 양질의 대중음악을 들었다는 증거라 해도 좋을 만큼 출중한 완성도를 지니고 있었다.

같은 해 신해철은 넥스트를 이끌며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당시 넥스트 멤버는 신해철, 김세황(기타), 김영석(베이스), 이수용(드럼)로 넥스트는 음악적, 상업적으로 최전성기를 찍고 있었다. 사실 록밴드의 인기가 보잘 것 없던 90년대 중반에 넥스트의 존재는 특별했다. 1994년 앨범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1 비잉(The Return Of N.EX.T PART 1 Being)’을 통해 헤비메탈부터 아트록에 이르기까지 기존 밴드들에 비해 일취월장한 사운드를 선보인 넥스트는 다음해 ‘더 리턴 오브 넥스트 파트 2 월드(The Return Of N.EX.T PART 2 World)’에서 또 한 번 진보된 결과물을 선보였다. 넥스트가 선보인 웅장한 록은 절대로 대중친화적인 것들은 아니었지만 넥스트는 당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을 꽉 채울 정도로 관객동원력도 가지고 있었다. 창작력이 궤도에 올랐던 신해철은 1996년에 ‘정글스토리’ OST, 윤상과 함께 전자음악 프로젝트 앨범 ‘노댄스’도 발표했다. 선수들끼리 만난 ‘노댄스’는 트렌드를 상당히 앞서간 결과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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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Seo Tai Ji)’(좌), ‘크롬스 테크노 워크(Crom’s Techno Works)’

# 1998년
1998년은 서태지와 신해철이 둘 다 솔로앨범을 발표한 해다. 은퇴 후 약 2년 간 잠적했던 서태지는 솔로 1집 ‘서태지(Seo Tai Ji)’로 돌아왔다. ‘필승’ ‘시대유감’이 담긴 서태지와 아이들 4집도 그랬지만, 이 앨범 역시 록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정확히는 당시 유행하던 그런지 록, 모던록, 뉴메탈 등의 장르가 여기저기 뒤섞여 있다. 본래 로커였던 그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붓을 놀린 앨범이라고 할까? 타이틀곡 ‘테이크 2’를 비롯해 수록곡들은 팬들에게도 난해했고, 앨범 관련 활동도 전혀 없었지만 이 앨범은 100만장 이상 팔리며 그해 상반기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리고 ‘테이크 5’는 이후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서태지의 곡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된다.

같은 해 신해철은 솔로앨범 ‘크롬스 테크노 워크(Crom’s Techno Works)’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테크노를 비롯한 전자음악을 실험하게 된다.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과 함께 했던 넥스트는 1997년 12월 31일에 해체를 공식 발표했다. 그리고 신해철은 유학길에 오른다. 당시 신해철은 넥스트의 사운드가 집대성된 것으로 평가받는 앨범 ‘라젠카(어 스페이스 록 오페라)(Lazenca(A Space Rock Opera), 1997)’, 그리고 수작으로 평가받은 ‘모노크롬(Monocrom, 1999)’를 연달아 발표할 만큼 음악적으로 정점에 올라 있던 시기다. ‘크롬스 테크노 워크’는 영국에서 음악유학 중이던 신해철이 발표한 일종의 중간보고서와 같은 앨범이었다.(자신의 과거의 곡들인 ‘1999’ ‘재즈카페’ ‘50년 후의 내 모습’ 등을 전자음악으로 편곡했다) 이 앨범에 담긴 ‘일상으로의 초대’는 낯선 스타일의 곡이었음에도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2000년
21세기, 즉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던 2000년에 서태지와 신해철은 각각 새 앨범을 발표했다. 서태지는 인디 신의 연주자들과 밴드를 결성하고 뉴 메탈을 본격적으로 시도한 ‘울트라 맨이야’ 등이 담긴 솔로 2집을, 신해철은 새로운 멤버들과 비트겐슈타인의 앨범으로 돌아왔다.

‘울트라 맨이야’는 서태지가 록밴드의 보컬리스트로 첫 선을 보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곡들의 완성도, 연주, 밴드의 합도 출중했다. 당시 서태지 밴드의 멤버들은 합을 만들기 위해 살인적인 연습량을 소화해야 했다고 한다. 허나 당시 서태지가 선보인 음악은 이미 홍대 인디 록 신에서 유행을 이루던 음악이었다. 더 이상 첨단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신해철의 비트겐슈타인의 경우에도 흠잡을 곳 없는 록이었지만 넥스트 시절에 비해 큰 파급력을 행사하지는 못했다.

이처럼 둘은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전성기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의 타임라인은 당연히 90년대에 비해 듬성듬성해지게 된다. 가요계의 트렌드가 급변했기 때문에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모델로 한 아이돌그룹들이 기획사들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통해 대량 생산됐으며, 넥스트의 뒤를 잇는 스타급 밴드는 아쉽게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이제 신해철은 마흔여섯, 서태지는 마흔둘이다. 같이 음악을 하던 동료들은 대부분 은퇴했거나 예능 프로그램을 하거나 제작자로 돌아섰다. 서태지와 신해철은 2010년을 넘겨 처음 발표하는 새 앨범에서도 과연 과거와 같은 빛나는 음악들을 들려줄 수 있을까? 그리고 팬들은 여전히 이들에게 열광할까?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서태지컴퍼니, KCA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