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정의 뭔걱정, 서태지와 신해철의 90년대 ① 1990~1992

page

“가을에 태지 앨범 나오니 활동이 겹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번에 승부를 보자고 했죠. ‘하여가 나왔을 때 내가 영장이 나오지 않았으면 네가 혼자서만 잘 나가지 않았을 거야! 이번에 승부를 보자’고 말하니까 태지 얼굴이 빨개지는 거예요. 하하하.”(둘이 낚시를 하면서 나눈 대화)

신해철은 지난 20일 오후 홍대 라이브클럽 브이홀에서 마치 서태지에게 선전포고를 하듯이 이처럼 말했다. 물론 재미로 하는 말이었지만, 단지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서태지는 5년, 신해철은 6년 만의 컴백 앨범을 앞두고 있다. 사실 대중적인 인지도로 따지면 서태지와 신해철은 라이벌이라 보기 힘들다. 하지만 음악적인 성취에 있어서는 누가 더 뛰어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90년대 음악 트렌드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둘을 비교하는 것은 단순한 재미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전성기라 할 수 있는 둘의 90년대를 살펴봤다.

# 1990년
1990년에 신해철은 솔로 1집을 발표했고, 서태지는 록밴드 시나위 4집에 베이스로 참여했다. 신해철은 1988년 무한궤도의 ‘그대에게’로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80년대 전성기를 누린 파고다 헤비메탈 신(scene) 현장에 있던 신해철은 메탈 밴드들이 아마추어 정도로 치부했던 대학가요제에 나갔고, 대상 받는 모습을 부활 김태원이 당구장에서 TV로 봤다고 한다. 어쩌면 쪽팔린 출발이었지만, 이 상과 ‘그대에게’라는 노래는 신해철이 가요계에 데뷔하는데 반석이 돼준다. 신해철은 록밴드로 활동하고 싶어 했지만 안타깝게도 무한궤도는 오래 가지 않는다. 때문에 신해철은 기획사의 요구에 의해 1집에서 댄디한 이미지로 발라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를 노래하게 된다.

같은 해 서태지는 시나위 4집에 베이스로 참여한다. 본래 록 키드였던 서태지는 열일곱 살 때 이중산의 소개로 신중현이 운영하던 클럽 우드스탁에서 공연을 하다 신대철의 눈에 띄어 시나위에 가담하게 된다. 신대철의 회상에 따르면 당시 서태지의 연주 실력은 장난이 아니었다고. 신대철(기타), 김종서(보컬), 서태지(베이스), 오경환(드럼)의 라인업으로 발표된 시나위 4집에는 ‘페어웰 투 러브(Farewell to Love)’ ‘겨울비’가 담겼다. 훗날 ‘겨울비’는 김종서 솔로앨범에 ‘페어웰 투 러브’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환상 속의 그대’에 삽입된다. 서태지는 음악적 견해로 시나위가 해체된 후 록밴드 활동을 모색하지만 국내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고, 결국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댄스그룹인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하기에 이른다.

1

서태지와 아이들 1집(좌), 넥스트 1집

# 1992년
1992년은 넥스트 1집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1집이 나온 해다. 이들 외에도 현진영, 윤상, 015B 등이 앨범을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 해다. 신해철은 기타리스트 정기송, 드러머 이동규와 함께 넥스트를 결성하고 1집 ‘홈(Home)’을 발표한다. 신해철이 일찍이 1991년 ‘재즈 카페’에서 시도한 미디 음악은 넥스트의 ‘도시인’으로 이어졌다. 이 앨범부터 신해철은 ‘인형의 기사 파트 1’과 같은 웅장한 음악, ‘영원히’와 같은 아시아(Asia) 풍의 록을 선보이기도 했다.

1992년에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 1집의 돌풍은 실로 대단했다. 그해 4월 11일 MBC ‘특종TV연예’에 신인 그룹으로 나온 서태지와 아이들은 혹평을 받았다. 재밌는 것은 ‘특종TV연예’가 바로 그 다음 방송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앨범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신드롬이 일어났다는 보도를 했다는 것. 90년대 가요가 80년대의 감성과 확실히 구분(내지 단절)되는 것은 이 앨범부터다. ‘난 알아요’는 회오리 춤과 함께 돌풍을 일으켰고 ‘환상 속의 그대’는 모든 보컬 파트가 랩으로 구성됐음에도 순위프로그램 ‘가요톱텐’에서 골든컵(5주 연속 1위)을 수상했고, 이 앨범은 그해에만 약 170만장이 팔려나가며 1992년 최고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다. 이로써 서태지와 아이들은 기존 미디어-가수의 관계에 개의치 않고 자신들의 음악을 팬들에게 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 해에 넥스트와 서태지와 아이들은 환경보호 콘서트 ‘내일은 늦으리’를 기념해 발매된 앨범 ‘내일은 늦으리’에 함께 참여했다. 이 콘서트는 신승훈, 이승환, 015B, 윤상, 신성우, 이덕진, 푸른하늘 등 당대의 스타들이 총출동한 전대미문의 행사였다. 당시 넥스트는 매우 실험적인 곡이었던 ‘1999’를, 서태지와 아이들은 록이 가미된 ‘나를 용서해주오’를 이 앨범에 각각 실었다. 신해철이 작사 작곡 프로듀싱한 메인 테마 곡 ‘더 늦기 전에’는 앨범에 참여한 가수들이 한 소절씩 돌아가면서 노래했고, 서태지는 내레이션을 맡았다. 둘이 데뷔 후 공식적으로 함께 녹음한 곡이 바로 이 노래였던 것이다.

528763_org

내일은 늦으리

서태지와 신해철의 90년대 ② 1996~2000 로 계속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지제공. 서태지컴퍼니, KCA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