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마왕’ 신해철에게 궁금한 것 “그냥 안부 전합니다 잘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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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이가 마흔여섯 살이라고 하더라고요. 모르겠어요. 아직도 살 빼라는 말 듣는 것은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흔여섯 살보다 더 젊어 보이거나 더 참신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처럼 보이기보다는, 마흔 여섯 살에 어울리는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고…”

애초부터 신해철에게 신비주의는 불가능했다. 입이 간질어서 말을 참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지난 20일 오후 홍대 라이브클럽 브이홀에서 기자들과 만난 신해철은 오랜만에 컴백한 소감, 안부, 신곡을 만든 과정 등등을 솔직하고, 명료하게 설명했다. 역시 달변, 변하지 않았다. 그의 말을 가감 없이 정리했다.

# 솔로로 6년, 넥스트로는 7년 만의 컴백
“스무 살 데뷔 후 가장 긴 공백기였다. 이 전까지 앨범을 24장 냈다. 1년에 한두 장 꼴로 낸 거다. 심지어 감방을 가도 공백이 1년 이상 간 적이 없다. 6년 쉰 거 나도 놀랐다. 실감이 안 난다. 개인적으로는 생활패턴 등 근본적인 것부터 여러 가지로 변화가 있었던 시기다. 어떻게 보면 내 인생의 세 번째 시기다. 첫 번째가 20대 학생 시절까지 삶, 두 번째가 데뷔 후 뮤지션으로서의 삶, 세 번째가 지금이다. 전과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부모님, 와이프, 애들과 다 같이 살고 있다. 강아지와 뛰어놀면서 가족의 품에서 매우 안정적으로 음악을 하고 있다. 만일 이 시기가 아니면 지금의 난 음악적으로 내가 기대한 것보다 훨씬 하찮을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 충전의 기간?
“비싼 호텔에 가서 우아하게 충전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가족들과 살면서 삶에서 받는 안정, 위협, 아이들 키우면서 생기는 감정 체감하면서 살았다. 다른 한편으로 음악적으로 처해 있는 정체상태에 끝없이 질문해야 했다. 작업실 지하에 박혀서 하루 17시간 작업했다. 가끔 놀러오는 이들이 이건 감옥이나 다름없지 않느냐고 하더라. 이 공간에 앉아서 취미 없고, 여가 없이 그냥 눈 뜨면 작업이었다. 그것도 난 고마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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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 6집 part.1 ‘리부트 마이셀프(Reboot Myself)’
“두 가지 의미다. 나 자신을 그대로 리부트한다. 그리고 음악적으로 ‘재즈카페’가 수록된 내 솔로 2집인 ‘마이셀프’에서 내가 했던 음악을 다시금 연구 대상에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팬들이 이번 앨범이 ‘마이셀프’ 앨범과 무슨 연관이 있냐고 묻더라. 90년대 상당수의 뮤지션은 처음에 히트할만한 노래를 하면서 자기 자리가 굳어지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음악적인 지역으로 이동하는 절차를 밟았다. ‘마이셀프’는 그 절차를 마치기 전 마지막 앨범이었다. 즉, 우리 엄마도 들을 수 있는 노래도 담긴 앨범이었다. 내가 10분짜리 곡도 만들고, 음악과 음향 사이에 있는 곡도 만들어봤다. 3분 30초 안에서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것을 하지만 동시에 자기 분d,f 못 참고 막 쏟아내려 한 것이 ‘마이셀프’ 앨범이었다. 새 앨범도 일반 사람이 들었을 때도 부담이 안 갈 정도의 음악이다.”

# ‘아따(A.D.D.a)’
“원 맨 아카펠라는 몇 년간 재미삼아 만들어본 서브젝트 중 하나다. 첫 싱글을 아카펠라로 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다. 노래 녹음이 뮤직비디오 찍을 때보다 더 힘들었다. 입으로 모든 소리를 내는 것이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가령 코드, 리듬이 바뀌면 악기의 경우 한 번 연주하면 되는데 나는 수십 번을 불러야 한다. 그야말로 노가다 그 자체였다. 목소리는 악기와 달리 소리 주파수에 한계가 있다. 입으로 드럼을 대신하려면 비트박스를 여러 번 하고 그 소리들을 합쳐야 했다. 또 피아노 소리를 내려면 음정을 노래하고, 피아노 때리는 소리까지 내 입으로 내서 그걸 합쳐야 한다. 그걸 다 녹음하다보면 입술이 붓는다. 또 음악 이론적으로 목소리는 여섯 번 겹치면 소리가 겹쳐서 줄어든다고 한다. 즉, 이번 같은 작업은 기술이 뒷받침이 안 되면 소리가 떡이 될 수 있다. 멜로디, 리듬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소리가 뭉칠 수 있다는 것이다. 품을 많이 들인 작업이었는데 재밌게 나와 줘서 다행이다.”

# 원맨 아카펠라
“‘아따’는 녹음에서 완성까지 2주일 정도 걸렸다. 하지만 원 맨 아카펠라 기법을 완성하기까지 1년 반 이상 시험으로 다른 곡들을 작업하는 기간이 있었다. 아카펠라 앨범을 한 장 낼 정도로 녹음을 했다. 다른 곡들을 내 입으로 할 수 있는지 카피해봤다.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라스트 트레인 투 런던(Last Train To London)’은 멜로디, 각 악기 파트가 명료해서 재료로 삼아 연습해봤다. 듀란 듀란의 곡은 내 목소리가 실제 악기만큼 댐핑이 나오는지 비교해보려고 연습해봤다.”(신해철은 이날 현장에 이 곡들을 기자들에게 다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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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범 수록곡들
“‘캐치 미 이프 유 캔’은 부제가 나 ‘잡아봐라’ ‘바퀴벌레’였는데 주위에서 말려서 쓰지 않았다. 경상도 랩이 들어가는데 뺄까 고민 중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정치적으로 비꼬는 것처럼 들린다고 하더라. ‘캐치 미 이프 유 캔’ ‘프린세스 메이커’는 약간 흑인음악에 쏠려 있고, 미디의 비중이 큰 곡이다. 리허설 밴드가 연주를 해서 나온 실제 연주 라인들을 미디로 구현해낸 것이다. 예전에 마이클 잭슨이 음반 녹음할 때 사람이 연주한 것을 드럼머신으로 바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비슷한 방식이다. 3D 애니메이션을 모션 캡처로 만들어낸 것과 같은 개념으로 보면 된다. 미디가 이 정도까지 왔구나 하는 것을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 메시지
“‘프린세스 메이커’ 3절에 스페인어가 나오는데 앨범의 핵심 가사다. 쉽게 말해 인생은 동화가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스무 살에 데뷔를 해서 팬들과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났다. 그래서인지 솔로부터 넥스트까지 가장 많이 다룬 주제가 바로 ‘자아’다. ‘이대로 살아야만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팬들과 계속 이야기해왔다. 이 소재를 예순 살까지 할 수 없다. 팬들도 부모세대가 돼 간다. 이제 어떻게 살지 그만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이제는 그 다음은 무엇인가를 이야기 할 때가 됐다. 이 네 곡이 그거다. 드라마틱한 대답은 아니다. 내가 도토리 하나 찾으려 7개 바다, 10개 산맥을 건넜는데 결국 도토리는 내 주머니 안에 있었다는 것?”

# 15년간 만든 곡
“‘단 하나의 약속’은 15년째 만든 곡이다. 듣는 이들은 15년간 만들었는데 ‘이게 뭐냐?’ 할 수 있겠다. 와이프 만났을 때 만든 러브 송인데 지금은 가족 전체로 테마를 확장해 담았다. 미카엘 엔데의 ‘모모’를 보면 시간도둑이 시간을 훔쳐서 우리도 모르게 쫓기면서 산다. 그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없어진 정말 중요한 것은 뭘까 생각해봤다. 나 어린 시절 열심히 공부하면 할머니라 ‘네 모한다꼬 아프지만 마라’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거 같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지금도 괜찮다고, 좋다고 해주는 목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 사실 발표하기가 망설여진 곡이었다. 곡 마지막에는 과거 제 노래(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와 링크가 된다.” (이 곡은 아내와 연애할 때 만들어진 러브 송으로 결국 세상의 모든 가족에 대한 메시지로 귀결됐다고 한다. 팬들의 결정을 통해 이 곡이 최종적으로 타이틀곡으로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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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태지
“‘아따’를 타이틀로 고른 건 태지다. 보통 자기 음악 만들 땐 고집을 부려도 남의 노래 조언해줄 때는 객관적이 되지 않나. 다른 노래들에 대해서도 태지가 ‘형은 편안하다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더 쉽게 가라’고 하더라. 가을에 태지 앨범 나오니 활동이 겹칠 거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승부를 보자고 했다. ‘하여가’ 나왔을 때 내가 영장이 나오지 않았으면 네가 혼자서만 잘 나가지 않았을 거라고, 이번에 승부를 보자고 했다. 이 친구가 내 노가리에 말려서 발끈해 대답하려는 순간 송사리가 나와서 이야기가 끊겼다.”(둘이 낚시를 하고 있었던 모양)

# 넥스트 재결성. 새 멤버는?
“‘리부트 마이셀프’ 파트 2가 나오기 전에 넥스트 EP가 먼저 나올 것이다. 넥스트 해체 시기를 말하기 애매하다. 기수도 많고 복잡하다. 이번에 새로 나오는 넥스트는 전과 다른 형식이다. 팀 이름은 ‘넥스트 유나이티드’(가제)가 될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같은 시스템이다. 넥스트의 설립자인 정기송이 오케스트라의 수석 지휘자처럼 전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멤버도 1진, 2진으로 나뉘어서 전체가 스무 명 정도 된다. 기타 네 명, 베이스 세 명, 이런 식이다. 넥스트 레퍼토리가 다양한데 헤비메탈, 펑크(funk) 등 각각 장르에 맞게 팀이 꾸려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하지 않을 이유가 별로 없다. 예전처럼 네 명의 정규 멤버가 영원한 피의 맹세를 하고 무조건 같이 할 이유가 없다. 객원 보컬도 참여할 예정이다.

# 신해철에게 골수팬이란?
“여러 색채의 팬이 있다. 다양한 세대로부터 고마운 사랑을 받았다. 용기를 준 것은 ‘아따’를 듣고 ‘그동안 빠순이질 한 것 창피하지 않다. 콘서트에서 눈물 흘리게 창피하지 않아’라는 반응이었다.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이 가장 힘이 된다. 물론 음악에 대해 예리한 분석으로 따지고 드는 팬들도 있지만 말이다. 나에게는 ‘너는 이런 것을 해야 한다’보다는 ‘넌 뭘 해도 예쁘다’는 말이 필요하다. 난 무조건적으로 예뻐해 줘도 다 걸러내서 듣고 반성할 줄 안다.”

# 트위터에 ‘아따’를 올리고 ‘역시’라고 코멘트를 단 싸이에 대해
“‘역시’의 다음 말이 뭔지 모르니까 딱히 할 말이 없다. 싸이를 만나면 ‘너 말 짧다’고 전해 달라.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KCA 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