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리뷰, 추억이 방울방울! 익스트림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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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익스트림의 내한공연 ‘포르노그래피티 라이브(Pornograffitti)’가 열린 공연장 유니클로 악스에는 무려 1,800여 명의 관객이 운집했다. 익스트림의 대표작이자 90년대 록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앨범 ‘포르노그래피티’ 앨범을 그대로 연주하는 라이브. 매 곡마다 무시무시한 합창이 이어졌고, 익스트림 멤버들은 마치 90년대로 돌아간 듯 즐거워했다.

격세지감이었다.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이 앨범은 제목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국내에 발매되지 못했다. 1990년에 나온 이 앨범이 정식으로 국내에 라이선스된 것은 90년의 후반의 일. 하지만 이미 한국 팬들은 수입반 내지, 베스트앨범 등을 통해 익스트림에 열광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모어 댄 워즈(More Than Words)’를 듣고 기타를 처음 시작해 ‘데카당스 댄스(Decadence Dance)’를 카피하기 위해 밤을 지새웠을까?

익스트림은, 적어도 90년대 초중반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록밴드 중 한 팀이었다. 록의 트렌드가 헤비메탈에서 얼터너티브/모던록으로 변해가던 시기인 90년 초반, 그러니까 너바나가 등장하기 전까지 메탈의 세례를 받은 순혈 밴드로써 미스터빅과 함께 록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아이돌과 같은 인기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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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가 길었다. 이날 공연은 익스트림과 한국 팬들 사이의 진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7시 20분 익스트림이 무대에 나와 앨범의 1번 곡이기도 한 ‘데카당스 댄스’를 연주하자 관객들은 단박에 달아올랐다. 무대 위를 말처럼 뛰어다는 게리 셰론과 매력적인 프레이즈를 토해내는 누노 베텐코트, 그리고 거의 전곡을 합창하는 관객들이 아름다운 앙상블을 이뤘다.

누노의 무시무시한 기타는 초장부터 관객들을 넉다운시키에 충분했다. ‘릴 잭 호니(Li’l Jack Horny)’, ‘웬 아임 프레지던트(When I’m President)’으로 이어지는 곡들에서 누노는 쫄깃한 리듬커팅부터 4~6연음을 자유롭게 오가는 속주, 그리고 드라마틱한 스윕아르페지오 등에 이르기까지 딱 필요한 만큼의 화려한 연주를 쏟아냈다. ‘겟 더 펑크 아웃(Get The Funk Out)’은 드럼 오프닝이 흐르자마자 관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괴성을 질렀다. 익스트림 앞에서 우리 모두는 친구였다.

앨범 순서대로 셋리스트가 구성됐기 때문에 ‘모어 댄 워즈’가 앵콜 곡이 아닌 다섯 번째 곡이라는 것은 관객 대부분이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무대 위로 통기타와 의자가 나오는 가운데 누노는 장난스런 표정으로 “신곡을 들려주겠다”고 말하고, 모두가 기다린 이 곡을 연주했다. 공연장 안의 모두가 이 곡을 따라 부르니 조금 손발이 오그라들기도 하더라. 그나저나 익스트림은 어떻게 이런 닭살 돋는 곡을 만들었을까? 관객들의 노래가 끝나자 누노는 “뷰티풀(Beautiful)”을 세 번 연속 외치고 게리와 주먹을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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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인 갓 위 트러스트)(Money(In God We Trust))’부터는 다시 공격적인 리프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츠 어 몬스터(It(’s a Monster))’에서 누노는 6대의 마샬 앰프 앞으로 다가가 피드백 사운드를 선보이더니 뒤이어 그 어려운 연주들을 너무나 쉽게 연주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타리스트답게 살인적인 콧날도 그대로였다.

게리 셰론은 쉬지 않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고 마이크 스탠드를 휘두르는 등 정력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마치 세월이 누노와 게리를 비껴간 것 같았다. 원년멤버인 베이시스트 팻 배저와 2000년대 후반부터 함꼐 한 드러머 케빈 피궤이레두도 안정된 연주를 펼쳤다. 다만 음향상의 문제로 베이스 소리가 뭉개진 것이 아쉬웠다. 특히 ‘웬 아이 퍼스트 키스드 유(When I First Kissed You)’를 할 때 팻 배저의 일렉트리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일그러지는 바람에 원곡의 감동을 느끼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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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나 관객들은 마냥 즐거웠다. 케빈이 ‘수지(Suzi)’의 드럼을 연주하고 누노가 리듬커팅을 시작하자 관객들은 마치 이제 공연이 시작한 것처럼 한껏 달아올랐다. 기타로 이렇게 관객을 들었다 놨다 흥분시키는 공연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히 맨 워먼 헤이터스(He Man Woman Haters)’ 앞에 삽입된 ‘왕벌의 비행’의 변주도 그는 너무나 깔끔하게 연주해냈다.

‘포르노그래피티’를 그대로 연주한 익스트림은 마지막에 아쉬웠는지 퀸의 ‘크레이지 리틀 씽 콜드 러브(Crazy Little Thing Called Love)’를 조금 연주해줬다. 순간 1992년 웸블던 스타디움에서 퀸 메들리를 연주하는 익스트림의 영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돌이켜보면 익스트림처럼 퀸을 멋지게 커버해낸 밴드도 드물었다.

앵콜에서는 ‘플레이 위드 미(Play With Me)’ ‘큐핏스 데드(Cupid’s Dead)’ 등 여러 히트곡들을 흘렀다. 누노는 기타연주곡 ‘미드나잇 익스프레스(Midnight Express)’를 완벽하게 연주하며 드라마틱한 순간을 안겨줬다. ‘포르노그래피티’ 앨범을 통째로 들은 감동의 여운을 달래주는 곡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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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나인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