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인디 컬렉션, 옐로우 몬스터즈, 최고가 된 무관의 제왕 (part4)

최재혁 딸 최시은과 기념촬영

딸 최시은과 함께 포즈를 취한 최재혁

(part3에서 이어짐) 드럼 최재혁도 쉽게 옐로우 몬스터즈 결성에 의기투합했다. 새롭게 준비하던 밴드가 문제가 생겨 휴식기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 “오메가3를 그만둔 후, 팝펑크 밴드를 염두에 두고 영입한 여자 보컬이 남자 멤버와 눈이 맞아 밴드가 깨졌습니다. 오랫동안 밴드생활을 해봐서 아는데 남자끼리는 갈등이 있어도 술 먹고 싸우고 나면 그만인데 남녀 간에 사랑이 엮이면 아무리 좋은 음악을 해도 오래갈 수 없습니다. 결국 팀을 깨버리고 3일 동안 한숨 쉬며 고민하고 있을 때 러브콜이 왔습니다.”(최재욱)

선한 인상의 최재혁은 대구에서 1975년 4월 1일 만우절 날 독자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최봉진은 브라스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밴드 마스터 출신이다. 어린 시절 엄했던 아버지를 무서워했던 그는 겁이 많고 조용한 아이였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이 곧 법인 줄 알았던 그는 방학숙제를 끝내지 못하면 울면서 학교에 갔을 정도로 ‘범생’이었다. “아버지는 음악뿐 아니라 태권도 사범, 수영, 스케이트, 스킨스쿠버 코치까지 하셨던 팔방미인이세요. 집에 테이프와 LP가 많아 어릴 때부터 항상 나나 무스꾸리, 카펜터즈,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 제임스 라스트, 아바 같은 외국의 팝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습니다.”(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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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최봉진(좌), 아들 최재혁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해 서울 홍제동 외가로 올라왔다. 집에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그는 TV에서 명화극장을 즐겨보고 음악을 들으며 소일했다. 홍연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으로 아하(A-HA) 1집 테이프를 사면서 팝에 눈을 떴다. 대중적인 음악을 좋아했던 그땐 MTV도 즐겨봤다. 서대문중 2학년 어느 날, 공부 잘하는 반장 절친 서보균이 통기타를 배우러 다닌다고 자랑했다. 부모님을 설득해 홍제역에 있던 작은 음악학원에 나가기 시작했다. “1년 정도 다녔죠. 집에서 매일 아버지가 사주신 통기타를 붙들고 있자 화가 난 아버지가 기타를 부셔버려 학원을 그만두었습니다. ‘피는 못 속이다’며 제 학업성적이 떨어질까 걱정하셨지만 공부는 잘 하는 편이었습니다.”(최재혁)

최재혁 2014년 결성 4주년 기념 상상마당공연3
대일외고에 진학한 최재혁은 친구들을 통해 밴드 음악을 접했다. “저희 기수에 음악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엑스저팬. 메탈리카, 스키드 로우가 인기였는데 저는 머틀리 크루가 가장 쇼킹했습니다. 친구들과 종로, 혜화동으로 MTV보러 다녔던 고1때 스패인어과 친구들과 5인조 밴드 J’s를 결성해 리드기타를 쳤습니다. 멤버들 이름 모두에 J 이니셜이 있었거든요.”(최재혁) 지금도 존재하는 과 연합밴드 소프트도 만들어 종로 세화 합주실, 숙대입구 성 합주실에 다니며 교내 축제무대에 올랐다. “음악을 좋아했지만 그땐 전업뮤지션의 꿈은 없고 공부하면서 음악 하는 것이 그냥 재미있었습니다.”(최재혁)

외국어대 이태리어과에 진학한 그는 밴드동아리 아웃사이더 11기로 들어갔다. 1기 중에는 저 유명한 이승환이 있다. 11기에는 드럼이 없었다. 쳐본 적도 관심도 없었지만 선배들의 권유로 1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치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를 보고 독학으로 드럼을 배웠던 그는 1993년 과 선배이자 동아리 선배인 윤준호가 베이스로 활동하던 H2O의 대학로 공연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2학년 때 2군 사령부 군악대로 입대했다. 휴가를 나와 노이즈가든의 대학로 공연을 보고 또다시 자극을 받았다.

델리스파이스 시절 최재혁 2002년

2002년 델리 스파이스 시절의 김민규, 최재혁, 윤준호(왼쪽부터)

“1995년 휴가 때, 준호 형이 델리 스파이스라는 밴드를 한다고 하더군요. OUR NATION 음반을 들으면서 이런 움직임이 있구나 생각했죠. 준호형이 제대하고 같이 밴드하자고 했습니다.”(최재혁) 델리 스파이스는 공무원이었던 드러머가 1집 녹음 중에 그만두었다. 1997년 제대한 최재혁이 빈자리를 채웠다. 뮤직디자인에서 나온 1집 녹음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밴드의 초창기 활동부터 참여했다. “클럽 프리버드에 뮤직디자인 사장님이 이슈가 되던 노이즈가든, 그리고 크라잉넛, 노브레인 같은 펑크록 밴드를 보러 왔었죠. 그때가 델리스파이스, 언니네이발관 같은 모던 록이 부각되던 시기였어요. 97년 1집, 99년 2집 2000년 3집을 냈습니다. 정상적인 계약이 아니어서 3집은 후딱 끝내고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최재혁) 최재혁은 3집을 발표한 2000년에 대학을 졸업한 후 2001년에 결혼을 했다.

2003년 프레쉬 엔터테인먼트에서 4집과 5집을 발표했다. “사장님이 착해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마음 편하게 활동했습니다. ‘에스프레소’, ‘고백’이 수록된 5집은 잘되었지만 계약이 끝난 2006년에 6집은 직접 만들어보자고 해 김민규 형이 인디레이블 문라이즈를 설립했어요. 스위트피하면서 멤버 3명 매니저 1명 꾸며 야심차게 만들었는데 6집 발매하자마자 매니저가 크게 다쳐 거의 활동을 못했어요.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하더군요.”(최재혁)

최재혁 오메가3 시절 녹음 장면 2005년

2005년 최재혁 오메가3 시절 녹음 장면

2006년 12월 31일 델리스파이스는 마지막 콘서트를 열고 큰 활동을 접어 활동이 뜸해지면서 앨범 터울도 3년으로 길어졌다. 그래서 최재혁은 2005년 윤준호, 고경천과 펑크 록밴드 오메가3를 만들었다. “기타가 없는 밴드인데 프로그레시브록적인 새로운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음반을 냈고 공연도 많이 했습니다.”(최재혁) 델리스파이스의 활동이 중단된 2007년 오메가3 2집에 대한 의욕이 있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홍대 FF클럽 앞에 ‘버닝하트’ 카페를 동업으로 시작한 최재혁은 2010년 엘몬에 참여한 그해 말까지 카페 운영을 계속했다. (part5로 계속)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최재혁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