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보다 ‘트랜스포머4’가 더 무서워? 월드컵에 대처하는 극장가의 자세

CGV 응원
2002년 여름, 거리엔 붉은 악마들이 넘쳐났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이 서로를 껴안고 목 놓아 외쳤다. 대~한~민~국! 축제분위기에 휩싸인 거리와 달리, 극장가는 그야말로 초상집이었다. 여름 극장가 공략에 나선 영화들이 월드컵 철벽수비에 가로막혔다. 그해 6월 전국 관객수는 5월에 비해 44% 가량 대폭 감소했다. 이후 충무로엔 월드컵 트라우마가 생겼다. 4년에 한 번, 월드컵이 다가오면 충무로는 개봉 시기를 놓고 갈팡질팡 하는 등 ‘월드컵 한파’ 걱정에 얼어붙는다.

올해 브라질 월드컵이 열리는 6월 13일부터 7월 14일까지 대중의 관심은 브라질로 쏠릴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배급사들은 영화 출격 시기를 두고 눈치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다. 이를 증명하듯 올해 월드컵 기간,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 예선경기가 열리는 기간 동안 4대 배급사(CJ, 롯데, 쇼박스, NEW)에서 내놓는 한국영화는 단 한편도 없다. 월드컵 열기를 피해 개봉을 서두르거나, 축제가 끝나는 7월 이후로 출격을 늦췄다. ‘끝까지 간다’(5월 29일), ‘하이힐’, ‘우는 남자’(6월 4일), ‘군도: 민란의 시대’(7월 23일) ‘명량’(7월 30일) 등이 월드컵과 시간차를 두고 앞뒤에 자리했다. 쇼박스가 배급하는 정우성 주연의 ‘신의 한 수’(7월 3일)만이 그나마 16강전과 맞물린 7월 3일 개봉에 들어간다.

# 월드컵보다, ‘트랜스포머4’가 더 무섭다?

월드컵과 정면승부를 펼치는 ‘트랜스포머 4’와 16강전 경기와 맞물려 개봉하는 ‘신의 한 수’

월드컵과 정면승부를 펼치는 ‘트랜스포머 4’와 16강전 경기와 맞물려 개봉하는 ‘신의 한 수’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이하 ‘트랜스포머4)다.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트랜스포머4’는 6월 25일 출격, 월드컵의 열기와 정면대결은 펼친다. 자신감이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대작 한국영화들이 월드컵보다, ‘트랜스포머4’가 무서워 개봉일을 조율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국에서 유난히 사랑받아 온 트랜스포머다. 앞서 개봉한 세 편의 시리즈가 모두 7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했다. 로봇들의 물량공세가 더 이상 끌리지 않는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으나, 그럼에도 ‘트랜스포머4’의 위세는 무시할 게 못된다.

이렇게 되면 ‘트랜스포머4’를 막아 설 자는 태극전사 밖에 없어 보인다. 한국팀의 선전 여부에 따라 ‘트랜스포머4’의 흥행 역사는 다르게 쓰일 공산이 크다. 개봉 첫 주 흥행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신의 한 수’ 역시 한국팀이 16강/8강에 오를 경우, 표정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한국팀의 부진으로 극장이 빠르게 정상화를 되찾은 2006년과 달리, 첫 원정 16강이란 성과를 거둔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땐 ‘월드컵 파장’으로 인한 극장의 손실은 상당했었다.

# 극장 프라임타임 비껴간 한국 경기

브라질 월드컵, 한국 경기 일정

브라질 월드컵, 한국 경기 일정

한쪽에서는 한국 경기 시간이 극장 프라임타임을 비껴가기 때문에 월드컵이 극장가에 별다른 타격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온다. 12시간의 시차로 인해 올해 한국 경기는 (한국 시간으로)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열린다. 잘만 활용하면 오히려 득이다. 극장들로서는 새벽시간 관객들을 유인할 수 있는 미끼가 생긴 셈이니 말이다. CJ엔터테인먼트 윤인호 홍보팀장은 “2002년 월드컵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한국 경기가 모두 새벽에 치러지기 때문에 월드컵 영향은 미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물론, 다른 배급사들도 월드컵을 중요 변수로 두고 배급일정을 잡는 것 같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극장들은 월드컵을 역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월드컵 시즌 극장가의 풍속도로 자리 잡은 월드컵 극장 응원이 올해에도 이어진다. CGV와 메가박스가 한국경기를 극장에서 생중계하는 행사를 확정한 가운데, 롯데시네마도 이 사안을 두고 고심 중이다. 한 극장 관계자는 “한국 경기가 새벽 5시에 열리는 날은 오히려 부가적인 관객 상승을 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극장 매점 수익 증대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알다시피 매점 수익은 극장 수입의 노른자, ‘꽃 중의 꽃’이다.

# 틈새시장 노린다

월드컵 틈새시장을 노리는 영화들

월드컵 틈새시장을 노리는 영화들

한국대작들이 피해가는 월드컵을 틈새시장으로 노린 영화들도 있다. 일단 인벤트디가 배급하는 박해일 신민아 주연의 ‘경주’(6월 12일)와 유나이티드픽처스가 배급에 나선 이민기 주연의 ‘황제를 위하여’(6월 12일)가 눈에 띈다. 올해 첫 한국공포영화 ‘소녀괴담’은 ‘신의 한 수’와 같은 날, 운명을 건다. 외화 중에서는 니콜 키드먼 주연의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레아 세이두가 미녀로 분한 ‘미녀와 야수’, 제이슨 스타뎀표 액션영화 ‘홈프론트’가 월드컵이 한창인 19일 개봉한다.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 관계자는 “한국 경기 시간 때문에 월드컵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그레이스 오브 모나코’와 ‘트랜스포머4’의 관객층이 크게 겹치지 않는 것도 이 시기에 배급을 정한 이유”라고 밝혔다. 또 다른 배급사 관계자는 “월드컵, 대선 등 사회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극장이 영향을 받는 것은 맞다. 그래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 자체의 매력”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과연 이들의 선택은 신의 한 수로 기록될까.

글, 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