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호, 이제 세상 밖으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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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의 새 앨범 ‘스페이드 원(Spade One)’을 발표한 이규호를 만나러 가는 길. 만감이 교차했다.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1999년 1집 ‘얼터에고(Alterego)’ 이후 새 앨범을 내기까지 왜 이렇게 긴 시간이 흘렀는지, 새 앨범 활동은 왜 ‘쿄(Kyo)’라는 이름으로 하는지, 장필순, 고찬용, 윤영배 등 20명이 넘는 동료들이 노래로 참여한 곡 ‘보물섬’은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녹음장소 중 하나인 제주외딴집은 어디인지, 그리고 윤종신이 부른 ‘팥빙수’는 어쩌다 나왔는지 등. 오랜만에 앨범을 내고 좀처럼 언론에 얼굴을 비치지 않은 이규호였기에 궁금증은 더욱 커져갔다.

참 많은 이들이 이규호를 기다렸다. 한때 라디오에 자주 흘렀던 ‘내일도 만날래?’ ‘머리 끝에 물기’를 좋아했던 팬들도 이규호를 기다렸지만, 이외에 많은 동료 뮤지션들이 이규호의 귀환을 고대했다. 작곡가, 싱어송라이터로서 이규호는 지문이 확실한 뮤지션이다. 이규호의 자신의 곡 외에 장필순, 이승환, 윤종신, 이소라, 김예림 등에게 준 곡에도 여지없이 자신의 지문을 진하게 남긴다. 이러한 남다른 감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규호를 기다렸을 것이다. 오직 이규호만 들려줄 수 있는 음악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말이다. 내달 7일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올 이규호를 지난 21일 홍대 인근 카페 밤삼킨별에서 만났다. 대학 1학년, ‘덜컥’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입상해,  음악활동을 시작된 그. 새 앨범은 오랜만이지만, 그동안 그는 음악을 놓은 적이 없다. 때로는 예기치 못한 비바람도 만났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만은 15년간 소나무처럼 푸르르게 지켜왔다.

Q. 무려 15년 만의 새 앨범이다.
이규호: 좋다. 후련한 기분이 든다. 내 음악을 다시 만들기까지 오랜 정체의 시간이 있었다. 한때는 다시 앨범을 내는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다시 음악을 만들기까지 에너지를 모으고 마음을 다잡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Q. 요 몇 년 사이 인터뷰한 이승환, 고찬용, 윤영배, 이한철, 정준일 등이 가장 컴백을 기대하는 동료로 이규호를 첫 손에 꼽더라.
이규호: 너무 안 내니까 그랬을 거다. 사실 1999년에 1집을 냈을 때는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당시 팬카페에 ‘당분간 피임을 한다’는 글을 쓴 적도 있다. 음악을 내 자식과 같이 생각했으니까. 정체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제 이번 앨범을 계기로 보다 자유롭게, 의욕적으로 창작활동을 하려 한다.

Q. 2012년에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다. 이 공연이 거의 13년 만에 자신의 이름으로 오른 무대로 알고 있다.
이규호: 게스트가 아닌, 내 이름을 걸고 공연하기까지 아마 그 정도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1999~2000년경에 단독콘서트를 한 것이 마지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에 올랐을 때에는 여러모로 어색했다. 너무 오래 쉬어서 현실감이 떨어졌다. 페스티벌은 처음이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예민해서 그런지 그 무대가 내 것 같지 않은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그런 계기들을 통해서 슬슬 내 음악을 다시 보여줘도 되지 않을까 마음을 다잡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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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6월 7일 광화문 세종M씨어터에서 앨범 발매를 기념한 첫 콘서트를 갖는다. 그 전에 라이브클럽 벨로주에서 팬들을 대상으로 파티를 열었다.
이규호: 팬클럽을 대상으로 먼저 작은 공연을 연 것이다. 일단은 내가 아는 사람들이 앞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팬클럽이 생긴 지 15년 정도가 흘렀는데 회원들이 여전히 활동 중이다. 내가 데뷔했을 때부터 좋아해준 분들이 여전히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 고마움이 이번 앨범 ‘스페이드 원’을 발표한 가장 큰 목적이었다. 날 기다린 사람들에 대한 기분 좋은 의무감이랄까? 그런 면에서 ‘스페이드 원’은 팬들에 대한 선물, 보답과 같은 앨범이다. 그래서 앨범 1번 트랙인 ‘세상 밖으로’와 같은 곡을 만들게 된 것이다. 그 곡의 가사는 팬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Q. ‘세상 밖으로’에는 ‘오래 기다려줘서 고마워요’라는 가사가 담겼다.
이규호: 이 곡은 앨범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기도 하다. ‘나를 버려야 지키는 나를, 나를 지키려 못 버린 나를’이라는 가사는 정말 힘들게 썼다. 곡이 기분 좋게 잘 나와 줬다.

Q. 새 앨범 작업은 언제부터 들어갔나?
이규호: 2012년 초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가사를 빼놓고 곡의 얼개를 거의 만든 상황이었는데 편곡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작업을 멈췄다. 오랜만에 작업을 재개했기 때문에 급작스럽게 진행하면 분명히 우를 범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가령, 너무 오랜만에 작업을 하려고 보니 건반과 장비들이 낯설었다. 악기와 장비들을 내 몸에 익숙하게 하고 편곡 연습을 하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1년 정도 녹음을 미루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했고, 작년 가을부터 다시 새 앨범을 위한 편곡작업에 들어갔다.

Q. 무려 15년만의 컴백이다.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이규호: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가장 잘한 것은 제주도에 열심히 내려간 것. 그리고 담배를 끊은 것이다. 동익 형(조동익), 필순 누나(장필순), 영배 형(윤영배)이 모두 제주도에 살고 있다. 그래서 제주도에 굉장히 자주 갔다. 그들이 사는 것을 보면서 내 삶에 대한 방향성도 많이 바뀌었다. 뭐랄까? 제주도에서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다르다. 내 1집에 ‘담배 끊기’라는 곡도 있는데(웃음) 담배는 건강을 위해 끊었다. 15년 정도 피우고 나니까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고 있는 게 싫더라. 담배 끊은 지는 3~4년 정도 됐는데 덕분에 노래하는 것이 한층 수월해졌다.

Q. 새 앨범 활동은 ‘쿄’라는 이름으로 한다. 지인들이 부르는 애칭이라고 하더라.
이규호: (옆에 앉은 윤소라 매니저를 가리키며) 소라가 나에게 제일 처음 쿄라고 불러준 것 같다. 난 이 애칭이 좋다. 지금의 내가 15년 전과 달라졌든, 달라지지 않았든 간에 뭔가 새로운 느낌을 갖고 싶었다. 소소한 재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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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앨범의 가사를 보면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본인의 심정, 가령 음악적 갈증 등 이야기하고픈 것들을 음악으로 풀어낸 것 같다.
이규호: 그렇다. 직접적으로 말한 것도 있고, 비유를 통해서 이야기 한 것도 있다. 내 가사에 거창한 것은 없다. 일기 같은 느낌, 소소한 것들, 사람 사는 이야기들이다. ‘바이러스’ 정도를 빼놓고는 내용이 무겁지 않다. 나는 곡을 만들 때 하나의 이미지를 그린 다음 멜로디를 만들고, 가사를 나중에 쓰는 편이다. 가사를 매우 힘들게 쓰는 편이다. 잘 쓰려고 해서 힘든 것이 아니고 이야기의 소재를 찾는 것이 힘들다. 내가 쓰고 싶은 가사는 크게 두 가지 종류다. 언어의 유희가 들어간 감각적인 가사,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가사. 이번 앨범에서는 이 두 가지 종류의 가사를 적절하게 표현한 것 같다.

Q. 할머니의 연애를 이야기하는 ‘순애의 추억’은 실제 이야기인가?
이규호: 그렇다. 원래 난 가사를 쓸 때 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 한다. 내 사생활을 침범 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책이나, 영화에서 영감을 찾는 편이다. 이소은의 ‘서방님’이나 최근에 만든 김예림의 ‘캐럴의 말장난’은 그런 식으로 쓴 가사다. ‘순애의 추억’은 얼마 전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 만든 곡이다. 할머니가 병환이 심해지시자 나에게 앨범 만드는데 보태라며 용돈을 주시더라.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이번 앨범 작업할 때 할머니 생각을 많이 했다. 할머니를 위한 가사를 쓰려고 고민하다가, 할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그대로 노래로 만드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순애의 추억’의 가사는 모두 사실이다. 이 노래를 통해 노인들의 사랑을 이야기해보고 싶기도 했다.

Q. 미니멀한 사운드의 ‘없었다’는 뭐가 없다는 의미인가?
이규호: 아무도 그 사람을 원망할 수도 없고, 기다릴 수도 없고 위로할 수도 없고 가만둘 수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Q. ‘보물섬’에는 장필순, 고찬용, 윤영배, 한동준, 박용준, 오소영, 조동희 등 무려 스무 명이 넘는 푸른곰팡이(하나음악을 전신으로 하는 이규호의 소속 레이블)의 음악동료들이 함께 노래를 했다. 작업 자체가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을 것 같다.
이규호: 이 곡은 내가 아끼는 음악동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묘사하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오랫동안 함께 작업 해온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20여 년 동안 동료들과 함께 하다보면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처럼 지내다보면 때로는 싸울 때도 있으니까. 그래서 이 노래를 무조건 예쁘고 아름답게만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가사를 쓸 때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Q. 한 소절씩 돌아가면서 노래를 하는데 본인이 묘사당한 부분을 직접 부르는 것인가?
이규호: 아니다. 일부러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너무 뻔해서 다 엇갈리게 했다. 녹음을 할 때에는 좁은 스튜디오에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너무 좋았다. 녹음을 마치고 다같이 박수를 칠 때 가슴이 뭉클했다. 푸른곰팡이 식구들이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거리가 하나 더 생겨서 기분이 좋았다.

Q. 이승환은 이규호에 대해 한국에서 가장 가사를 가장 잘 쓰는 뮤지션이라고 하더라.
이규호: 글쎄 난 모르겠다. 가사를 잘 쓰는 사람은 많다. 승환 형이 나와 작업을 많이 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Q. 가사 외에 작곡에 있어서 1집과 달리 시도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나?
이규호: 1집을 작업한 지 너무 오래됐기 때문에 그때와 다른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냥 내 안에서 나오는 그대로를 왜곡하지 말고 보여주자는 생각이었다. 그게 내가 음악을 하는 목표이기도 하다. 1집의 경우 이번 앨범에 비해 내가 편곡에 비교적 덜 참여했다. 1집은 형들이 많이 도와줬다. 이번 앨범은 편곡 면에서 정말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담겼다. 내가 좋아하는 건반 라인, 코드, 어법들이 골고루 표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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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앨범속지를 보면 레코딩 스튜디오 중에 ‘제주외딴집’이 있다. 여긴 어디인가?
이규호: 동익 형의 집이다. 이번 앨범에서 동익 형이 베이스를 연주했다. 동익 형은 서울에 있는 스튜디오로 오지 않고 자기 집에서 베이스를 연주해 파일로 보내줬다. 그렇게 원격으로 작업을 했다. 동익 형과 용준 형(박용준)이 이번 앨범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형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내 앨범을 위해 애를 써줬다. 너무 진지하고, 내가 신경 쓰지 못한 부분까지 챙겨줘서 놀랍고 또 고맙다. 사실 내가 덤벙대는 편인데 동익 형과 용준 형이 꼼꼼하게 체크를 해준다. 뭐 하나 허투루 하는 것이 없다. 특히 동익 형은 이번 작업에서 한 곡을 녹음할  때 일주일 정도 걸린다. 이건 말이 안 되는 거다. 한곡을 연주하고, 고치고, 연주하고를 계속 반복하다보면 그렇게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이번에 조동익의 베이스는 그런 집중력의 ‘끝판’을 보여줬다. 이번 앨범에서 조동익은 연주 외에도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Q. 이규호는 언론에 거의 노출이 되지 않았다. 방송이나 인터뷰를 잘 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
이규호: 바깥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다. 음악 하는 사람이 음악 외적인 것까지 다 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몇 일전에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녹화했는데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이런 건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방송을 잘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도 하다.

Q. 유희열은 잘한다.
이규호: 어우! 정말 너무 잘한다. 아주 미끌미끌 거릴 정도로.(웃음)

Q. 하나음악 시절부터 함께 했던 음악 동료들인 윤영배, 고찬용 등이 최근 푸른곰팡이를 통해 자신들의 앨범을 발표했다. 뿌듯했을 것 같다.
이규호: 정말 좋았다. 특히 찬용 형같이 음악 잘하는 사람은 대중이 아껴주길 바랬다. 사실 찬용 형이나 나 같은 뮤지션은 대중보다 음악인들이 더 좋아해주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것은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더 많은 대중과 만났으면 좋겠다. 그래야 지치지 않고 음악을 계속 할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다양한 음악을 찾아 들었으면 좋겠다.

Q. 음악동료들은 이규호를 천재 뮤지션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규호: 글쎄, 그런 말은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 생각하고 그냥 넘긴다. 감성이 남들과 조금 다를 수는 있다. 그런데 내 감성이 다르다고 해서 그 차이를 천재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그냥 내 감성을 표현하는 것뿐이다.

Q. 본인의 음악을 만들 때와 다른 가수의 음악을 만들 때의 차이점이 있나?
이규호: 외부 곡은 내 입장을 버린다. 가령, 김예림의 곡을 만들 때와 소라 누나의 곡을 만들 때는 많이 다른 것이다. 스무 살도 안 되는 예림이의 곡을 만들 때에는 그 아이의 입장을 생각해야 한다. 소라 누나의 경우 그 특유의 창법을 상상하면서 곡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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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다. 어린 시절엔 어떤 뮤지션을 좋아했나?
이규호: 중고등학교 때 밴드를 했다. 당시 같이 밴드를 하던 친구들은 록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유재하와 어떤날(조동익 이병우의 듀오)을 더 좋아했다.

Q. 결국 ‘유재하 음악경연대회’를 거쳐 하나음악을 통해 조동익과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이규호: 내가 1993년에 입상한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심사를 조동익이 본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나게 됐다. 그러고 나서 하나음악과 인연을 맺었을 때에는 동익 형이 너무 바빠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다. 그 때는 정말 범접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쓱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게 참 영광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다가 내가 찬용 형 작업실에서 함께 작업하면서 점점 동익 형과 보는 시간도 늘어났다. 동익 형이 ‘동경’ 앨범을 녹음하는 것을 바로 옆에서 구경할 때에는 무척이나 행복했다. 정말 많이 배웠다.

Q. 어린 시절 꿈은 뭐였나?
이규호: 어렸을 때부터 작곡가가 꿈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마흔 살 정도에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받는 꿈을 꾸곤 했다. 막연히 음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 도전한 것이다. 원래 목표는 대학교 4학년 때쯤에 입상하는 거였는데 1학년 때 덜컥 입상해버렸다. 사실 스무 살 때는 음악활동이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개념조차 없을 때다. 그렇게 음악의 언저리에 머물게 된 후 스물네살에 여행스케치에게 곡을 준 후 ‘아, 이제 나 작곡가 되는 구나’라고 생각했다.

Q. 작곡가가 꿈이었는데 1집 ‘얼터에고’를 통해 싱어송라이터로 데뷔를 했다.
이규호: 찬용 형과 함께 작업실을 쓸 때 솔로앨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그러면서 조금씩 데모를 만들기 시작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음악들이 모이자 동진 형님(조동진)이 앨범을 내자고 해서 1999년에 1집이 나오게 됐다.

Q. 이제 마흔 살이 됐다. 새 앨범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15년 전과 목소리가 그대로라는 말들도 있더라.
이규호: 난 많이 변한 것 같은데.(웃음) 목소리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나만 아는 변함이 있을 것이다. 예전의 좋아해준 팬들에게 정말 고맙다. 사실 내 음악이 나를 좋아하는 팬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쉽게 퍼져갈 수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 긴 호흡으로 보고 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우연히 내 음악을 듣고 좋아해준다면 만족스러울 것 같다. 내 음악이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내 음악을 알릴 수 있을지 내가 수긍할 수 있고, 그들도 수긍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Q. 이규호가 작곡하고 윤종신이 작사한 ‘팥빙수’가 일종의 그런 ‘방법’이 아닐까?
이규호: 그 곡을 처음 들었을 때에는 종신 형에게 버럭 했다.(웃음) 어떻게 그런 가사를 쓸 수 있냐고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팥빙수’ 때문에 고마운 일들이 생기더라. 이제는 애착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곡이 됐다.

Q. 앨범 발매 기념 공연에 대한 설명 부탁드린다.
이규호: 앨범에 공동 프로듀서를 맡은 박용준이 음악감독을 맡고 신석철(드럼) 민재현(베이스), 이경(건반), 이성열(기타) 등 평소에 필순 누나와 함께 하던 연주자들이 함께 한다. 나는 가사를 열심히 외우는 중이고(웃음), 용준 형과 편곡을 논의 중이다. 1~2집 곡을 골고루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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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호(왼쪽)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푸른곰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