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수진, 스타가 아닌 배우라 더 반갑다(인터뷰)

경수진

배우의 탄생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게다가 그게 눈에 잡힐 듯 선명하게 성장세를 그려내고 있는 인물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누군가의 아역과 또 누군가의 첫사랑 역을 거쳐 비로소 JTBC ‘밀회’를 통해 꽃피운 배우 경수진에 대한 이야기이다.

‘밀회’ 속 박다미는 그야말로 경수진을 위한 캐릭터였다. VVIP 고객 앞에서 웃는 얼굴로 고개를 숙이지만, 내면에는 그들의 허위의식을 경계하는 굳은 심지가 담겼고 억척스러운 생활력의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순수함이 일렁거렸다. 따로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안판석 PD가 그녀와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 “네 안에 다미가 보인다”고 말했던 것도 ‘털털한 박다미’의 느낌이 그녀에게서 자연스레 묻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적도의 남자’를 통해 데뷔한 경수진은 ‘드라마스페셜-스틸사진’, ‘상어’, ‘TV소설 은희’ ‘밀회’ 등을 통해 쉼 없이 달려왔다. 스물여섯이라는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데뷔, 매 작품에 배우를 꿈꾸는 이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왔던 그녀는 이제 막 배우 인생의 두 번째 장을 열어젖혔다. 스타가 아닌 배우를 꿈꾼다는 그녀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Q. 지난 14일 ‘밀회’ 팀이 서울 마포구 일대에서 종방연을 열었다. 시청률보다도 뜨거운 화제성을 불러온 작품이라 감회가 남달랐겠다.
경수진: 연기도, 연기 외적으로도 정말 많은 걸 배운 작품이다. 촬영할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막상 끝나고 나니까 아쉬운 마음이 더 크더라.

Q. 술도 빠질 수 없었겠다. ‘밀회’ 팀에도 주당이 있나.
경수진: 많이 드시는 분은 없었다. 근데 다들 ‘소맥’으로 드시더라. 솔직히 조금 놀랐다, 하하.

Q.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이야기가 좀 더 깊은 법이다. 특히 대선배들과 함께하는 자리였으니 좋은 말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경수진: 주로 내가 고민을 털어놓으면 선배들이 답을 주셨다. 연기 문제, 자기 관리의 어려움 등 평소에 고민하던 주제를 꺼내놓으니 심혜진 선배가 조언을 해주셨다. “네가 내 삶의 중심이니 주변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말라”고.

Q. 안 PD와 정성주 작가는 별다른 이야기가 없었나. 아무래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가장 듣고 싶었을 법한데.
경수진: 안 PD님은 워낙 현장에서 꼼꼼히 지도를 해주셔서 막상 종방연 때는 별말씀이 없으셨다. 내가 정 작가님에게 많은 걸 여쭤봤다. “제가 연기한 다미가 작가님이 그린 다미와 닮았나요?”라고 물으니 “반반”이라고 하시더라, 하하.

경수진

Q. 사실 ‘밀회’는 김희애, 유아인 등 톱배우의 출연만큼 ‘디테일의 대가’ 안 PD와 정성주 작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안 PD는 오디션을 통해서는 캐스팅을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경수진: 오디션이라기보다는 미팅이었다. 안 PD님이 꼭 실물 미팅을 해보고 싶으셨다고 하더라. ‘TV소설 은희’를 마치고 어머니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난 상황이었는데 연락을 받고 한걸음에 다시 돌아왔다. 만난 자리에서는 편하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히려 작품 이야기는 별로 안 했던 것 같다.

Q. 구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경수진: 연기보다는 ‘경수진’이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라. 고양이를 키우는 터라 마침 그날 입고 간 바지에 고양이 털이 붙어 있었는데 그걸 보시더니, “너 정말 털털하다”고 하시더라, 하하. 그러다가 딱 한마디 하셨다, “네 안에 다미가 보인다”고.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 연락이 왔다. 다시 돌아가니까 모두가 손뼉을 치면서 맞아주셨다. 안 PD님이 마치 상장 수여식처럼 대본도 주셨고. 정말 잊지 못할 순간이다. 몸에 전율이 일더라니까.

Q. 당신을 만나 보니 다미 역이 그토록 잘 어울렸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실제로 ‘경수진’과 ‘박다미’의 싱크로율은 어느 정도일까.
경수진: 침 뱉고 욕하는 것 빼고 다? 하하하.

Q. 스물여섯에 ‘적도의 남자’로 데뷔하기까지 아르바이트하며 연기학원을 오가는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어찌 보면 다미 역에 살아 있는 생활감은 당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다.
경수진: 정확하다. 그래서 다미와 내가 닮은 부분이 많다고 느낀다. 또 다미처럼 스무 살 무렵에는 짝사랑도 경험했었고. 정말 배우는 다양한 경험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느낀 만큼 연기로 표현해낼 수 있는 부분이 늘어난다. ‘밀회’에서도 그런 부분을 다시금 확인했다.

Q. 개인적으로 겉으로 표현되는 연기 이상으로 다미의 성격이나, 어떤 ‘굳은 심지’ 같은 게 느껴져서 좋더라. 캐릭터를 잘 잡아냈다고 느꼈다.
경수진: 모두 안 PD님의 섬세한 연출과 디테일한 대본 덕분이다. 현장에서 미세한 눈빛, 손짓까지 다 잡아주시니까, 내가 할 일은 대본을 많이 읽는 일뿐이었다. 철저하게 연기자의 입장에서 연기하기에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신다. 아, 물론 처음에는 롱테이크로 찍는 게 적응이 안 되기도 했다. 정말 지금이 촬영 중인지 아닌지 구분을 못 하겠더라, 하하. 또 캐릭터가 워낙 좋았다. 나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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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다미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일까.
경수진: 선재(유아인)의 마음을 알게 된 순간? 다미에게는 선재가 가장 중요했으니까. 오혜원(김희애)을 찾아가 한바탕한 뒤에 선재를 찾아갔을 때, 정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선재에게 “그 아줌마 만나지 마”라고 말할 때 다미의 마음이 어땠겠나. 그래도 “그 아줌마가 다 버리면 믿어주겠다”고 말하는 대목에 다미의 마음이 모두 담겼다고 생각한다. 선재의 행복을 바라는 다미의 마음 말이다.

Q. 당신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인가. 지난해 말 텐아시아와의 인터뷰를 진행할 때는 ‘드라마스페셜-스틸사진’이 당신에게 터닝 포인트가 됐다고 말했었다.
경수진: 나에게 있어 ‘밀회’가 남긴 가장 큰 성과는 기존과는 다른 캐릭터를 선보일 수 있었다는 거다. ‘드라마스페셜-스틸사진’ 때와는 또 다른 터닝 포인트가 된 셈이다. 지금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수준에서 가장 내게 잘 맞는 캐릭터를 만났다는 게 행운이었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어진 느낌이다. 앞으로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Q. 그런 의미에서 ‘밀회’ 이전에 아침드라마 ‘TV소설 은희’에 출연했던 건 신의 한 수였다. 확실히 일일극을 거쳐서인지 연기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경수진: 이제는 카메라 앞에서도 떨지 않는다. 자연스레 카메라의 위치나 몸의 움직임도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대사가 너무 많아서 외우기에 벅찼었다. 많이 찍을 때는 하루에 80신도 더 찍었으니까. 또 반효정 선생님을 비롯해 김혜선, 황미정, 김보미 등 대선배들과 함께하니 긴장이 더 됐다. NG를 내면 안 된다는 강박감을 크게 느꼈다. 하지만 현장에서 선배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연기의 기본부터 배우의 자세까지, 돈 주고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7개월간 차근차근 배웠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확실히 나조차도 연기적으로 성장한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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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기존의 이미지를 깨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당신만의 색깔을 만드는 게 중요한 시점이 됐다.
경수진: ‘밀회’ 이후에 극단적으로 연기 변신을 시도해보고 싶은 욕심은 없다. 단지 지금의 연장선에서 좀 더 밝고 명랑한 캐릭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다. 아, 또 사극이나 액션도 도전해보고 싶다. 내가 원래 욕심이 좀 많다.

Q. 특히 여배우는 연륜이 생길수록 연기의 폭이 크게 넓어지는 것 같더라. 꼭 연기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결혼을 생각할 나이도 되지 않았나.
경수진: 아, 벌써 그렇게 됐나요? 하하. 물론 연기 외에 ‘여자 경수진’의 삶도 생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김희애 선배를 곁에서 보니 최대한 자기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지금은 딱 그 정도까지만 생각하려고 한다. 난 아직 갈 길이 머니까.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