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프라임> vs <PD수첩>

<다큐프라임> EBS 수 밤 9시 50분
피의 중요성은, 어떤 의미의 극한을 강조하기 위해 이 단어를 마치 최상급 수식어인 것 마냥 사용하는 관용구들이 얼마나 많은지만 살펴봐도 잘 알 수 있다. 피나는 노력, 피토하는 심정, 피 말리는 승부, 피를 나눈 형제 등. <다큐프라임>의 혈액에 관한 2부작 중 1회 ‘패러독스의 역사’는 이러한 피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유서 깊은 것인가를 역사적으로 탐구한다. 동물 벽화에 피를 뜻하는 붉은 색을 덧씌움으로써 사냥이 잘 되기를 기원한 원시시대 이래로 피는 곧 생명이며 영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인식이 오래도록 이어져 왔다. 붉은 태양을 여신이 출산한 피로 상징하며 숭배한 이집트 문명에서부터 재앙을 피하기 위해 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바친 아즈텍 문명의 피의 제의, 그리고 악운을 쫓기 위해 동물의 피를 사용한 우리 무속의 희생제의까지, <다큐프라임>은 풍부한 자료들을 적재적소에 인용하며 피에 대한 위와 같은 인식이 전 세계 문화권의 공통 현상이었음을 흥미롭게 증명해 나간다. 유구했던 피의 신비주의가 깨지는 것은 17세기 이후. 윌리엄 하비와 데카르트는 피를 구체적인 지식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혁명적 사고로 근대의 출발을 알렸다. 그 뒤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1부의 주제인 패러독스는 피의 이러한 역사를 정확히 압축한 것이다. 첨단 의학이 아무리 혈액을 유전자 단위로 분석해도 오랜 역사를 통해 무의식에 각인된 피에 관한 신비로운 인식은 여전히 인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대중문화의 스테디셀러 아이템인 뱀파이어 이야기처럼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의미하는 피의 또 다른 패러독스가 그 자극을 더 부채질하는지도 모른다. 방대한 정보량에 비해 지나치게 빠른 편집이 종종 몰입을 방해한 1부였으나 이 정도면 피 같은 시간을 내줘도 아깝지 않은 프로그램이다.
글 김선영

<PD수첩> MBC 화 밤 11시 15분
가난은 불편할 뿐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PD수첩>이 찾아간 신자유주의 사회 끝 벼랑에 선 가난한 이들에게는 얼굴과 이름이 없다. 모자이크된 얼굴과 가명으로 이름을 지운 이들을 지칭하는 사회적인 이름은 신(新)빈곤층.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해 당장 먹을 쌀이 떨어지고 전기세와 수도세를 내지 못해 끊길 위기에 처해 있지만, 기초생활보호대상자가 아니라서 정부의 혜택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다섯 명이 넘는 가족들을 단 한 사람이 부양하고, 그나마도 급여가 압류되거나 실직 위기에 놓여있다. “우스갯소리로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노숙자가 되면 차라리 편하대요.” 스스로를 그 직전 단계에 와 있다고 말하는 스물일곱 청춘은 돈 되는 가구를 모조리 팔아 텅텅 빈 아파트에 산다. 만삭의 임산부는 허리를 부여잡고 옥탑방에 오른다. 그나마도 고시원에 아이를 낳을 수가 없어서 무리를 했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 쌀이 떨어져 라면만 먹던 그녀가 올린 글에도 서울시 복지국은 답이 없다. <PD수첩>은 엄격한 수급기준을 완화해 그늘에 숨어있는 신빈곤층이 제도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 되었다. 개인의 한계로, 무능력으로, 실수로 가난하게 살아가야 했던 시대는 아주 오래 전에 지났다. 아니 사실 그런 시대란 없었는지도 모른다. 가난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봉고차가 있어 기초생활보호수급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던 초등학교 3학년 소녀가 보낸 편지에 감동한 이명박 대통령은 긴급한대로 모녀를 도왔다. 하지만 긴급지원제도는 결국 잠깐 눈에 보이는 부분만 일단 흡수하고 보려는, 언젠가의 전봇대와 같은 제도에 불과하다. 아주 긴급한 사람만 추려도 410만 명이고, 겨울은 다가오고 있다. 이 나라엔 뽑아야 할 전봇대가 어찌 이리 많은지 모르겠다.
글 윤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