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가 1위 한다고 달라지는 게 있어?

Q 웬일로 그렇게 싱글벙글이야? 추석 앞두고 보너스라도 받았어?
A 그보다 더 좋은 걸 받았지. 오늘부터 포스트시즌, 그러니까 가을야구가 시작하잖아. 특히 올해는 기아가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에 직행했거든. 지난 해 이맘 때 기아가 가을 야구 못하면 비뚤어지겠다고 했던 거 기억나? 그런데 그냥 가을야구도 아니고 정규시즌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으니 마냥 좋을 수밖에 없지.

Q 그게 그렇게 좋아? 난 정말 이해가 안 되는 게,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1위한다고 뭐 달라질 게 있어?
A 그럼 너는 왜 2PM이 <인기가요>에서 1위했다고 만세 삼창을 한 건데? 똑같은 거야.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잘 되는 걸 바라는 마음은.

Q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이런 거야. 멤버를 좋아하는 거랑 팀을 좋아하는 건 좀 다른 거 아니야? 그 선수들이 계속 있는 게 아니라며. 난 재범이 한 명만 빠져도 2PM에게 정 붙이는 게 어려운데 말이야. 그리고 2PM이나 빅뱅이나 이런 아이돌은 기본적으로 1위에 근접한 아이돌이잖아. 그런데 너 같은 경우엔 기아가 몇 위를 하든 응원하지 않아?
A 그렇게 물어보니까 뭘 이해하기 어렵다는 건지 알겠다. 우선 첫 번째로 야구를 비롯한 프로 구기 종목은 지역 연고제이기 때문에 자신의 고향 팀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아. 그게 합리적이 아니라 해도 기본적으로 의외의 장소에서 동향 사람 만나면 반가운 게 사실이잖아. 외국에서 한국사람 봐도 반갑고. 물론 최근 들어선 이런 태도를 세련되지 못하게 보는 게 사실이지만 나도 여기서 아주 자유롭다고는 못하겠다. 특히 기아와 롯데는 이런 지역 연고의 끈이 강한 편이거든. 그리고 두 번째는 의리야. 첫 계기가 어찌되었든 간에 한 번 마음을 줬던 팀이 성적이 좀 안 좋다고 외면하는 건 마치 친구가 사업에 실패했다고 외면하는 것 같은 양심의 가책을 주거든. 그리고 세 번째는 바로 프랜차이즈 스타지. 말하자면 2PM의 멤버가 계속 바뀌더라도 닉쿤이 자리를 지킨다면 그 팀에 대한 애정을 쉽게 버릴 수 없지 않겠어? 초기 멤버 중 누구 하나 안 남아있어도 김태원이 있으면 부활인 거잖아. 그렇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꼴찌를 해도 꿋꿋하던 사람이 프랜차이즈 스타가 팀을 옮기면 자기도 그 팀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은 거야. 나라도 종범신께서 다른 곳으로 옮기셨다면 끝까지 기아를 응원해야 하는 지 굉장히 고민했을 거야.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기본적으로 한 팀을 응원하면 다른 팀의 패배를 바라야 하는 스포츠의 속성이야. 내가 기아를 응원한다는 건 기아와 붙는 다른 7개 팀이 패배하길 바라는 거잖아. 그런데 기아가 조금 못한다고 전에 실컷 비난하던 팀을 응원하기란 쉽지 않지.

Q 그런데 심지어 1등까지 하셨다?
A 바로 그거지. 하지만 정확히 말해 대부분의 야구팬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정규리그 1위, 혹은 가을야구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루길 바라지만 그게 전부인 건 아니야. 각 팀마다 프로야구의 긴 역사에서 일종의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성적의 의미가 다 다르거든. 예를 들자면 매 시험마다 1, 2등 하던 애가 1등하는 거랑 꼴찌 하던 애가 1등하는 건 그 맥락이 다르잖아. 또 항상 2등만 하던 애가 또 아쉽게 2등을 하는 것도 그 나름의 드라마가 있고, 꼴찌를 벗어나려고 아등바등 노력하던 애가 턱걸이로 상위 50%만 넘기는 것도 충분히 흥미롭지. 말하자면 한 때 ‘꼴데’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던 롯데가 가을야구를 하는 것과 요 근래 가장 강력한 팀이라 할 수 있는 SK가 가을야구를 하는 건 전혀 다른 맥락을 만드는 거고 각 팀의 팬들은 그 맥락 안에 숨은 드라마를 즐기는 거야.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를 보면 남자 주인공이 계속되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우승 불발에도 불구하고 그 저주 자체를 자신의 원죄처럼 받아들이며 끝까지 응원하는 것처럼.

Q 그럼 기아의 1위도 너에겐 나름의 드라마겠네?
A 물론이지. 팬심 때문에 자칫 공정하지 못한 설명이 될까봐 조심스럽긴 하지만 기아의 1위는 지난 해 롯데의 가을야구 진출 확정만큼이나 흥미로운 사건이라고 생각해. 넌 잘 모르겠지만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는 역대 프로야구 사상 최대인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기록한 팀이야. 하지만 1997년 우승 이후 팀의 수호신이었던 이종범이 일본에 진출하면서 그 다음해엔 가을야구 자체를 못하게 돼. 심지어 2005, 2007년에는 꼴찌를 했고. 그런데 이번에 정규리그 1위를 하니까 기아 팬 입장에선 어떻겠어. 그토록 꿈꾸던 한국시리즈 우승이 눈앞에 있는 느낌이지. 해태는 한국시리즈에만 진출하면 한 번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거든. 기아 우승은 말하자면 전설의 부활 같은 거야.

Q 그런데 너 아까 해태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지금은 기아 타이거즈잖아?
A 엉, 해태 타이거즈의 모기업인 해태 그룹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팀을 매각하게 된 거거든. 그 때 기아가 팀을 인수한 건데 말 그대로 팀의 멤버와 팀의 역사까지 인수를 한 거지. 그래서 이번에 우승하면 10회 우승이라고 할 수 있는 거고.

Q 그런데 너 계속 기아 우승을 당연한 것처럼 얘기한다? 편파적이라는 리플 달리면 어쩌려고?
A 그러면 안 되지. 오늘부터 시작하는 가을야구를 즐기는 법을 설명하려고 내가 좋아하는 팀을 예로 든 거지만 사실 어떤 팀을 응원하든 다들 나름의 이유 때문에 올해 가을야구는 정말 재밌을 거야. 롯데야 뭐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가을야구를 하니 이제 진짜 로이스터 감독은 부산에 호적 만들어서 살면 될 거고, 두산은 비록 초반 상승세를 잇지 못해 정규리그 1위를 못했지만 만약 롯데를 이기고 플레이오프에 올라가면 SK를 만나 지난 해 한국시리즈에서의 패배를 설욕할 기회를 얻겠지. 그리고 지난 2년 연속 우승을 한 SK는 막판 19연승의 괴력을 보여주면서 실질적 최강자의 ‘포스’를 보여주고 있으니 한국시리즈 진출을 기대할만할 거야. 그리고 기아는… 뭐, 그래. 만약 90년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가 타이거즈와 신흥 최고 강호인 SK가 한국시리즈 우승을 놓고 다툰다면 정말 흥분되는 일이겠지. 이 정도 설명도 편파적인 건가.

Q 하긴 작년에 가을야구 설명하면서 우울해하던 거 생각하면 감회가 새롭긴 하겠다. 그러고 보니 거의 1년이 지난 거네?
A 그렇지? 그러고 보니 너한테 스포츠 상식을 설명한 것도 거의 1년이네. 근데 너는 아직도 참 한결 같이 스포츠에 젬병이구나.

Q 흥, 그래? 그럼 너한테 물어보지 말고 따로 공부할까? 참, 그러면 이 코너도 없어지겠네?
A 1년 동안 변변찮은 설명 듣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