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굶는데 내 나라, 너희 나라가 어디 있나요?

평생 누군가에게서 돈을 타서 쓰며 살아온 저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산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사실 잘 모릅니다. 하물며 열네 살 어린나이에 지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님과 동생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게, 내 한 몸 움직이지 않으면 내 가족이 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얼마나 크나큰 부담인지, 그런 건 더욱이 알 리가 없죠. 하지만 이번에 직접 디딜방아로 말린 옥수수 알갱이를 찌어 편찮으신 어머니께 죽을 끓여드리는 지오 군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듭디다. 열네 살이면 중학교 1학년일 나이 아닙니까? 우리나라라면 대다수의 아이들이 호강에 겨워 투정이나 부릴 나이에 지오 군은 가족의 한 끼 식량을 구하느라, 어머니께 약이 될 만한 약초를 구하느라 진종일 산 속을 헤매 돌아다니더군요. 그렇게 힘들게 캐서 다린 참마가 과연 약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그나마 그런 정성이라도 보여야 어머님이 더 나빠지시지 않을 것 같아 애를 쓰는 거죠?

세상에 열네 살 소년에게 그런 얼굴이 볼 줄이야

제작진의 도움으로 생전 처음 진찰을 받으러 병원 진찰대에 누운 어머님을 바라보던 지오의 긴장된 표정이 아직도 눈에 밟히네요. 세상에, 게임기 사 달라, 새 운동화 사 달라 피나게 졸라도 시원치 않을 나이에 그런 절박한 표정을 짓고 있다니요. 그러나 결국 어머님은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권유를 받은 채 그냥 집으로 돌아오셔야만 했죠. 지오군의 가족이 살고 있는 랑손이 베트남과 중국의 국경지대인지라 시설을 제대로 갖춘 도시의 종합병원이 너무 멀어 일정이 빠듯한 제작진으로서는 도와줄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 들었어요. 그게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저는 야속했습니다. 이왕지사 도와주겠다고 나섰으면, 그리고 일말의 희망을 주었으면 어떻게든 해결을 보고 돌아오는 게 옳지 않나 해서요. 함께 동행 했던 영화배우 봉태규 씨도 저와 같은 마음인가 봅디다. 그렇게 심란한 표정일 수가 없더라고요. 어쨌든 제작진이 지오 군에게 반드시 어머님을 큰 병원에서 진찰 받고 치료 받으실 수 있게 주선하겠다는 약속을 했지요?

그제야 마음이 놓인다는 듯 빙그레 웃는 지오 군이 마음에 걸려, 그래서 저도 오늘 그 약속에 동참하고자 도울 방법을 찾아보려 해요. 어머님의 치료는 물론, 지역에서 큰 상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 하지만 학교가 너무 멀어 가끔 학교에 갈 수밖에 없었던 지오군의 학업에 힘을 보태고 싶어서요. 제작진과 봉태규 씨가 마을에 학교를 만들어주긴 했어도 시설이 유지되려면 많은 이들의 힘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한국의 이 아줌마도 열심히 성원할게요!

솔직히 말해 저는 해외봉사 다녀왔다는 소리 들으면 곱게 안 보던 축이었어요. 특히 연예인들의 경우 ‘이미지 세탁’이라는 편견까지 갖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도 어려운 처지에 놓인 아이들이 그렇게 많다는데 왜 굳이 비싼 비행기 삯 들여가며 이역만리 타국까지 남의 아이들을 돌보러 가는 것이냐, 그게 알고 보면 이미지 개선이든 선교든 다른 목적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 삐쭉거리곤 했답니다. 그런데 실제 다녀온 분들 말씀이 가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라 하대요. 일단 직접 부딪혀 보고나면 내 나라니 너희 나라니, 뭘 믿으라니 마니 하는 생각이 쑥 들어간다고요. 하지만 그런 말을 여러 차례 들었어도 그 정도 여행 경비면 우리나라 아이들 수십 명 등록금을 대주고 남을 텐데 괜한 오지랖이지 하며 콧방귀를 뀌었답니다.

그러던 제가 tvN <월드 스페셜 러브>를 보면서 마음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어요. 그게 그렇더군요. 우리나라는 아무리 형편이 어려워도 어린아이가 끼니거리를 구하고자 직접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복지가 선진국처럼 잘 이루어지진 않더라도 극빈층을 위한 최소한의 도움은 주는 상황이죠. 그런데 세상에는 지오 군처럼 한 끼 걱정을 해야 하는 어린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얘기잖아요. 네팔의 한 일곱 살짜리 어린 소녀는 자기 밥벌이를 하느라 돌 광산에서 고사리 손으로 돌을 깨고 있고, 캄보디아의 고아 삼남매는 들에서 잡은 개구리가 유일한 반찬이니 억장이 무너질 일이 아니냐고요. 더구나 우리가 도와주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는데 그걸 나 몰라라 외면한다는 건 너무나 매몰찬 일이 아닐는지요. 저는 지오 군이 부디 멋지게 자라 자신의 꿈대로 하얀 가운을 입는 의사가 되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의사가 아니면 또 어떤가요. 어머니와 동생들 뿐 아니라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도와줄 인재가 되어주면 고마운 거죠 뭐. 그렇게 될 수 있게 머나먼 한국의 이 아줌마도 열심히 성원할게요. 우리 잘 해봅시다!

사진제공_ tvN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