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 “난 누워서 침 뱉기의 달인”(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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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쉰 살에 서른 살 외모를 가졌고, 무대에서는 로커를 꿈꾸는 발라드 가수, 자기보다 스무 살 정도 어린 후배들과 격 없이 어울려 애들같이 놀다가도, 녹음실에서는 완벽을 추구하는 고집쟁이. 당황스러울 정도의 솔직함은 때로는 주접에 가까운 발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항상 최고를 추구하는 아티스트라는 사실을. 그의 공연을 단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이승환의 음악에 대한 열정,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말이다. 정규 11집 ‘폴 투 플라이(Fall To Fly)’로 4년 만에 돌아온 이승환을 만났다. 그의 속내를 가감 없이 담았다.

Q. 드림팩토리 스튜디오에 화재가 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수리는 잘 했나?
이승환: 1997년에 콘솔(SSL SL4056G)을 구입했는데 그 기계가 사람과 같아서 24시간 전기를 공급해줘야 한다. 에어컨이 고장 나 과부하가 걸린 상황이었다. 연기가 나서 부랴부랴 전기를 껐는데 채널, 볼륨 페이더가 고장 나서 고치는데 하루 정도 걸렸다. 많은 이들이 새 앨범 대박의 징조라는 허무맹랑한 기대를 갖더라.

Q. 드림팩토리는 국내 최고의 스튜디오로 정평이 나 있다. 이례적으로 해외 음향잡지에 소개되기도 했다. 양질의 사운드를 추구하는 이승환의 자세를 보여주는 상징하는 것이 아닌가?
이승환: 드림팩토리는 사운드 명가다. 이번 앨범도 믹싱을 곡 당 2~3회에 걸쳐했다. 세계적인 엔지니어가 믹싱을 담당했는데 맘에 안 들면 계속 돌려보낼 정도였다. 마스터링은 기존에 세 번 정도를 반복했는데 이번에는 무려 6번을 했다. 덕분에 밀도 있고 촘촘한 사운드가 나왔다. 선 공개 곡 ‘내게만 일어나는 일’을 발표하고 후배들에게 사운드가 훌륭하다는 문자를 많이 받았다. 이번에도 사운드만은 자신 있다.

Q. 4년 만에 정규 11집으로 돌아오는 소감이 어떤가?
이승환: 2010년에 발표한 10집 ‘드리마이저(Dreamizer)’가 너무나도 비참하게 망하면서 다시 앨범을 안 내려고도 생각했다. 일단 앨범을 다시 냈다는 것에 감회가 남다르다.

Q. 새 앨범을 내게 한 용기를 준 계기가 있나?
이승환: 망각의 동물인거지.(웃음) 내가 벼랑 끝에 섰던 상황을 잊은 거다. 그러다가 2년 전쯤에 창작 의욕이 마구 샘솟아 많은 곡을 쓰게 됐다.

Q. 이번 앨범에는 여태 앨범 중 피처링 아티스트가 제일 많다.
이승환: ‘비누’를 함께 노래한 김예림의 경우 그녀의 독특한 음색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인지도 덕을 보겠다는 꿍꿍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내 노래가 음원차트에 오래 머문 적이 없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비누’도 차트에서 광탈(빛의 속도로 탈락)했다. 이번 앨범 피처링에서는 인지도보다 적재적소에 어울리는 뮤지션과 함께 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게만 일어나는 일’의 경우 리듬미컬한 곡이 아니기 때문에 랩을 넣으려면 정말 내공이 있는 아티스트가 필요했다. 한국대중음악상에서 그를 처음 봤는데 내 가사를 이해하고 보완해주는 것은 MC메타가 적격이었다. 로맨틱펀치의 보컬 배인혁이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내 공연을 대물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배인혁인데 그 정도로 끼가 많고 에너지가 대단한 친구다. 그런 식으로 각 곡에 알맞은 사람을 하려 했다. 배우 이보영 씨도 노래를 너무 잘해주셔서 15분 만에 녹음을 마쳤다.

Q. 차트 광탈이라니 아픔이 컸겠다.
이승환: 예전부터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많은 이들이 내 앨범이 굉장히 잘 된다고 생각하는데 난 1997년부터 꾸준한 내리막길이었다. 앨범 제목 ‘폴 투 플라이’의 의미도 비상을 위한 추락이다. 내 개인적인 상황과 맞물리는 것이다. 물론 체념해 있거나 답답한 상황에 놓인 여러분들을 위한 제목이기도 하다. 일만 하는 나, 그리고 얻지 못한 나의 고단함 같은 거 말이다. 이번 앨범은 마케팅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데 정말 열심히 한 앨범이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라는 별명이 있는데 이번 앨범은 그것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내 이미지가 희화화된 면이 있는데, 음악인의 면모도 알아줬으면 한다. 예능에 토끼 탈을 쓰고 나오는 사람, 중년 오타쿠로 알고 있는 이들도 있는데 난 원래 음악인이다.

Q. 콘서트를 보면 이승환의 예능감은 거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노래로 분위기를 끌어올리다가 감동을 할 무렵에 개그를 던지곤 한다.
이승환: 그렇지. 누워서 침 뱉기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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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타이틀곡 ‘너에게만 반응해’는 이소은이 함께 불렀다.
이승환: 내가 소은이 1~2집을 제작했었다. 지금은 뉴욕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데 꾸준히 연락을 해왔다. 타이틀곡에 예쁜 목소리가 필요했다. 누구랑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역시 예쁜 음색으로는 소은이가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은이가 가수 생활을 6년 정도 쉬어서 걱정도 됐는데 정말 만족스럽게 녹음을 했다. 이 곡은 공연 때 여러 번 해서 팬들은 아는 노래다. 원래 상당히 야릇한 가사였다. 이번에는 청소년에게 꿈을 주기 위해 순화된 버전을 실었다. 바우터 하멜과의 작업도 좋았다. 친한 사이다. 함께 공연을 하기도 했다. 바우터 하멜은 거의 한국인이다. 여기(인터뷰 장소 ‘팝’)서 같이 술 마신 적도 있다.

Q. 도종환 시인이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의 작사에 참여했다.
이승환: ‘봉하 음악회’에 참여하면서 도종환 시인을 뵙게 됐다. 내가 잘 쓰는 가사는 실연 당한 남자의 찌질한 이야기, 또는 유머러스하고 아기자기한 가사다. 이 곡은 깊이 있는 가사가 있었으면 해서 도종환 시인에게 부탁을 하게 됐다. 도종환 시인은 본인의 시에 누군가 멜로디를 붙인 적은 있지만 멜로디에 맞는 노래 가사를 쓰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시더라. 내일은 도종환 시인의 자선공연에 참석할 예정이다. 서로 품앗이 하는 거지.

Q. 이 노래에서 ‘함께 하고픈 누군가’가 누구인가?
이승환: 노무현 대통령이다. 본인은 그런 가사가 아니라고 하시는데 난 이 노래를 부르면서 계속 노무현 대통령이 떠올랐다. 도종환 시인은 노래를 해석하는 것은 가수의 몫이라고 하셔서 난 그렇게 불렀다. 노무현 대통령을 위한 헌가다.

Q. 지금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이 조금 민감할 수도 있다. 부담스럽지 않나?
이승환: 주변 사람들이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런데 난 가수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말리는 것이 이해가 안 간다. 시민의 입장에서 내가 좋고 싫은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노래에 어떤 선동적인 것은 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노래하는 트리뷰트의 성격이다. 사실 이렇게 말하는 순간에도 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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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995년 발표한 정규 4집 ‘휴먼’(Human) 앨범부터 데이비드 켐벨 등 최정상급 뮤지션들과 작업하며 국내 음반 퀄리티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사운드에 큰 욕심을 냈다. 앨범이 잘 팔리지 않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렇게 계속 투자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승환: 4집을 외국에서 녹음한 것은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다. 3집까지는 나도 지금의 아이돌 가수들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선배들을 보면 30대 후반까지만 인지도를 유지하다가 갑자기 사라지시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 조로하지 말자, 그러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고 마음먹었고, 미국에 가서 녹음을 시도하게 됐다. 그리고 운 좋게 거장 데이빗 켐벨을 만나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처음엔 현지 물정을 전혀 몰라서 돈을 많이 썼다. 로스앤젤레스에 ‘한국에서 온 왕자가 돈을 뿌리고 다닌다. 한국에서 석유가 나냐’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엄청나게 투자를 했다. 처음엔 잘 몰라서 돈 주고도 눈치를 보곤 했다. 우리 녹음물에 대한 냉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우리 음악에 감탄하기도 한다. 노하우가 많이 생긴 것이다. 이번 앨범은 나와 황성제 둘이서만 미국에 건너가 그 쪽 연주자들과 접촉한 후 직접 진두지휘를 했다.

Q. 이번 앨범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헨슨 스튜디오(Henson Studio), 내쉬빌에 위치한 오션웨이 스튜디오(Oceanway Studio)에서 녹음을 진행했다.
이승환: 외국에서 작업하면 결과물이 확실히 다르다. 1%로의 차이 때문에 하이엔드 오디오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작은 차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쌓이면 엄청난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Q. 황성제가 공동 작곡 및 편곡으로 참여했다.
이승환: 황성제와 공동 프로듀서로 둘이서 가내수공업처럼 곡을 만들어나갔다. 작업하는 내내 일주일 중 6일을 함께 작업했다. 1998년에 드림팩토리에서 전속 작곡가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황성제가 1호 작곡가다. 아직도 의리를 지키는 고마운 친구다.

Q. 팬들의 경우 이승환에게 기대하는 스타일의 음악이 있다. 발라드, 스케일이 큰 음악, 다소 실험적인 사운드 등. 이번 앨범의 음악적 변화를 말한다면?
이승환: 스타일적인 변화는 크지 않다. 대곡지향성의 노래는 마지막 곡 ‘함께 있는 우리를 보고 싶다’. ‘사랑하나요’처럼 달달하고 들썩이는 분위기는 타이틀곡 ‘너에게만 반응해’에서 느낄 수 있을 거다. 이번 앨범은 재즈, R&B 등 각 장르적인 특징이 심화된 면이 있다. 너무 파격을 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Q. ‘폴 투 플라이’는 후편 음반이 이어 나올 예정이다. 예전의 ‘에그’ 음반도 두 장이었다. 그때는 두 장의 성격이 달랐다. 뒤에 록 적인 것. 후편이 그렇게 나오나?
이승환: 성격이 다를 것 같긴 하다. 이번에 많은 곡을 만들었는데 처음에 미국에서 녹음을 한 것은 정말 기존에 국내에서 듣도 보도 못한 스타일도 있고, 나만의 것을 퓨전한 것, 완전 록 스타일의 곡도 있다. 그런데 이번 흥행을 신경 쓰다 보니 ‘폴 투 플라이’ 전편에는 싣지 않았다. 다소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곡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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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승환은 여태까지 소위 ‘음악 천재’라 불린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해왔다. 오태호, 정석원, 유희열, 이규호 등등.
이승환: 오태호는 정말 소녀 같았다. 68년생이라 나이가 꽤 됐는데 아직도 소녀감성으로 곡과 가사를 쓰고 있더라. 태호가 5월쯤에 새 앨범을 낸다. 그래서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을 했던 것처럼 함께 곡을 해보기로 했다. 정석원은 주위 사람들한테 음악적인 것부터 말투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줄 정도로 파급력이 있는 친구다. 내가 원래 포지티브한 사람이었는데 석원이 때문에 시니컬해질 정도였으니까. 희열이는 두루두루 친화력 좋고 어떤 장르도 잘 소화해낸다. 규호는 우리나라에서 가사를 가장 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규호의 새 앨범도 너무 좋아서 응원하고 싶다.

Q. 유희열, 지누(히치하이커)는 이승환의 무적밴드 출신이다. 최근 유희열은 예능 프로그램에도 잘 나오고, 지누는 SM엔터테인먼트 소속 뮤지션 등 아이돌그룹 작곡가로 맹활약하고 있다.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나?
이승환: 그럴만한 기질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워낙 음악을 잘하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어딜 가도 잘 하는 것 아니겠는가? 내가 제작한 지누의 1~2집이 다 힘들었었다. 그런데 결국 ‘아브라카다브라’가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됐다. 희열이는…. 종신이보다 야한 이야기를 더 잘 하는 것이 희열이였다.(웃음)

Q. 선구안이 있는 것 같다.
이승환: 매 앨범마다 새로운 작곡가를 투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번에는 편곡에서 칵스 출신의 숀(Shaun)과 함께 했다. 숀은 정말 지켜볼만한 친구다. 향후 우리 대중음악계를 주름 잡을 친구가 아닌가 한다. 내 뮤직비디오에 나온 여배우들도 잘 된 경우가 많다. 작곡가 보는 눈도 있지만 여배우를 보는 눈도 있다.

Q. 그러고 보니 요새 배우 박신혜(드림팩토리로 데뷔)가 정말 잘 나간다.
이승환: 내가 박신혜를 조건 없이 놓아준 것은 정말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한다. 드림팩토리에 계속 있었으면 지금처럼 잘 되기 힘들었을 거다. 난 정말 나쁜 제작자다. 내 전화기에 아는 PD 전화번호가 3명밖에 없다. 신혜가 어렸을 때 인격 형성에 신경을 썼다. 오전수업은 반드시 받는 것이 원칙이었다. 친구들과 사귀어야 하니까. 이성교제도 관여하지 않았다. 울타리를 치지 않고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한 거다. 역변 없이 예쁘게 커줘서 다행이고, 잘 돼서 너무 고맙다.

Q. 기타리스트 이현석도 정식 데뷔 전에 이승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
이승환: 90년대 초반이었는데 우리나라에서 잉베이 맘스틴처럼 기타 치는 사람을 본 것은 이현석이 처음이었다. 그때 현석이를 내 전국투어 오프닝으로 데리고 다녔었다.

Q. 최근에 관심 가는 후배들이 있다면?
이승환: 작년에는 로큰롤라디오에 꽂혔다. 내가 신인발굴 경연대회 ‘헬로루키’에 3년 동안 엠시를 보고 있다. 원래 엠시 보는 거 좋아하지 않는데 거기에 가는 이유는 실력 있는 신인들을 보는 것이 너무 즐겁기 때문이다. 로큰롤라디오는 연주력이 정말 뛰어나서 조금만 보강을 하면 장기하와 얼굴들 급으로 뜨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내 패션 롤모델은 지드래곤이다. 지드래곤 공연을 몰래 보러 간 적도 있다. 그리고 곧 앨범을 발표하는 솔튼 페이퍼(드림팩토리 소속)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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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앨범은 두 장의 CD로 나오고 뮤직비디오도 무려 5편을 촬영한다. 체력의 부담은 없나?
이승환: 체력적으로 힘든 것이 사실이다. 내가 올해 쉰 살이다. 쉰 살이 되는 날 1월 1일부터 힘들더라. 예전엔 녹음실에서 10시간 서서 노래하곤 했는데 지금은 2시간 씩 끊어서 한다. 슬프다. 그리고 공연 때 많이 앉는 편이다. 동료가수 이소라가 왜 그리도 의자에 집착했는지 이유를 알겠다. 가수의 고령화에 따른 관객의 고령화로 공연 시간도 4~5시간에서 3시간 반 정도로 줄였다. 사실 공연과 앨범을 규모 있게 준비하는 것이 지금의 대중음악계에서 쉬운 일이 절대 아니다. 나처럼 근 10년 정도 새로운 히트곡이 없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이번 앨범 준비할 때에도 주위에서 무모한 투자라고 말렸다. 요새 앨범을 만들어도 안 들으니 차라리 EP를 만들라고 하더라.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따. 일종의 자존심과 사명감이 어우러진 느낌이랄까? 디지털 싱글 단 한곡으로 내 이야기를 얼마나 할 수 있겠는가? 음반은 내 삶을 녹여낸 것이고, 그래서 만드는 재미가 있고 보람이 있는 것이다. 계속해서 만들 수밖에.

Q. 예전에 윤종신이 이승환이 4시간 공연 시작하는 바람에 다른 가수도 다 길게 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한 적이 있다.
이승환: 내가 어렸을 때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3시간 20분 공연 한 것이 해외토픽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나도 막연히 길게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재작년에는 내 기록을 깨려고 5시간 45분 동안 52곡을 노래했다. 내가 그렇게까지 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Q.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이승환 노래가 가장 많이 나왔다.
이승환: 너무 감사드린다. 역시 90년대는 서태지와 이승환이구나!(웃음) 기쁘고 좋았다. 그런데 한편으로 많은 분들이 예전 곡들에만 관심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기우도 있다. 너무 옛날 사람으로 인식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 말이다. 난 새로운 음악을 계속 만드는 창작가로 평가받고 싶다.

Q. 최근에는 인디 신의 후배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한다. 어떤 선배로 남고 싶나?
이승환: 60살이 돼도 25살 후배가 ‘형 놀아요’라고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선배로 남고 싶다. 물론 음악적으로도 좋은 선배가 되고 싶다. 나 스스로는 한 땀 한 땀 소리를 만드는 장인이 되고 싶다. 그런 것들이 후배들에게 밀알이 될 테니 말이다.

Q. 어린 후배들과 어울리는 것이 동안의 비결?
이승환: 내 궁극적인 목표는 70살이 돼도 록페스티벌에 서는 것이다. 음악의 미덕은 분명히 젊은 감각이라고 생각한다. 절대로 못된 어른들의 권위적인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누구에게도 군림하고 싶지 않다. 늘 어린 뮤지션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다. 작년에는 92년 생인 톡식의 드러머 슬옹이와 함께 일본여행을 다녀왔다. 27년 차이다. 이 녀석이 정말 아이더라. 나랑 떨어지면 무서워해서 귀찮아 죽는 줄 알았다. 부모의 심정을 한껏 느꼈다.

Q. 이번 앨범 반응이 기대에 못 미처도 차기작에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할까?
이승환: 벼랑 끝에 서면 분명히 그럴 생각이 없어질 거다. 그런데 세월이 또 잊게 해주겠지. 그러면 좀이 쑤셔서 다시 음악을 만들 거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드림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