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인디 컬렉션, 원초적 독창적 사운드로 부활한 써드스톤(part6)

써드스톤 피쳐사진73

(PART5에서 이어짐) 마지막으로 밴드에 참여한 베이스 한두수는 인천시 남구 주안에서 2남중 막내로 1981년 5월 10일에 태어났다. 책을 찢어놓고 휴지를 뜯고 노는 걸 좋아했던 천방지축 꼬마 한두수는 충격적인 사고를 경험했다. “자전거를 타고 노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저를 때리시더군요. 한 아기가 제 자전거 뒷바퀴를 잡고 놀다 손이 잘린 사실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 상황이 섬뜩하고 괴로워 제 자아에서 분리시키고 싶어 멍 때리는 망상이 시작되었고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기분이 울적할 때 술을 마시면 그냥 눈물이 납니다. 죄를 씻는다는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잘해주며 스스로 치유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그 상황이 믿기지가 않습니다.”(한두수)

어린 시절의 악몽은 그에게 운전을 할 때 후진에 대한 공포를 안겼다. 음악에 깊게 빠져들게 된 것도 그 때문.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그는 음악대회에서서 수상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바이올린까지 배웠던 그는 선인중 1학년 때부터 현악부 악장을 하면서 모든 악기를 폭넓게 듣는 능력을 배양했다. “혼자서 음악을 하다 다른 악기들과 협연을 하면서 내 소리와 다른 사람 소리를 한꺼번에 듣는 호흡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경험했습니다.”(한두수) 2학년 때 아버지가 연수동에 병원을 개업해 막 개교한 연성중학교로 전학을 가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page
그때까지 클래식을 주로 연주했던 그는 같은 반 친구 채일석을 만나면서 록음악을 처음 듣게 되었다. 바로크 속주 주법을 구사했던 잉베이 맘스틴에 열광했던 그는 차츰 세련된 LA메탈에 빠져들었고 조지 윈스턴, 야니 같은 이미지적인 음악도 마음에 들었다. 채일석을 따라 서울 이태원에 있는 라이브클럽 ‘저스트 블루스’에 갔다. “기타 앰프에서 나오는 사운드를 처음 듣고 충격을 받았죠. 처음에는 기타소리에만 빠져 있다 차츰 블루스 음악을 검색해 찾아들었지만 블루스에 대한 열광은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한두수)

유행과는 동떨어진 음악만 들었던 그는 중3때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과 라디오헤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기타를 친 친구 채일석의 영향을 받아 기타를 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콜트 액션 베이스 일렉트릭 베이스 기타를 구입해 연주를 시작했다. “릴테이프로 녹음을 하면서 베이스 기타의 저음을 겨우 알게 되었습니다.”(한두수) “두수 연주를 처음 들었을 때, 영혼의 베이스란 생각에 저보다 형인 줄로 착각했었습니다.”(박상도) 음악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인천 인항고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일석이와 같은 학교에 가려고 1지망으로 서인천고를 썼는데 어머니 때문에 다른 학교에 가게 되어 화가 나 소리를 지르고 문을 발로 찼던 생각이 납니다.”(한두수) 혼자 베이스 기타를 치며 독학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써드스톤 롤링홀 공연5
고1 겨울방학 때 채일석이 “밴드하자”는 말을 처음 꺼내 합주를 했다. “밴드 이름이 있었는데 공연 몇 번하고 해체되어 기억이 나질 않네요. 일석이는 금방 그만 두었습니다. 자신이 늘 음악을 리드했는데 제가 틀린 걸 지적하는 게 싫었나봅니다.”(한두수) 고2때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분출하고 싶어 학교 축구 동아리에 들어갔다. 공을 차다 양쪽 인대가 나가버려 분출할 통로를 잃어버리면서 음악은 그의 전부가 되었다. 아버지에게 “음악을 하고 싶으니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지만 반대는 엄청났다. “뒤지게 맞았죠. 그때 아버지가 친척의 보증을 잘못 서 힘든 시기였죠. 너는 아직 성인이 아니니 대학에 간 다음에 음악을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한두수)

집에서 공부만 시켜 답답한 마음에 인천 백운역 뒤쪽에 있던 라이브클럽 락캠프에서 휘모리 메탈밴드 멜로딕 스피디의 공연을 보았다. “공연 후 격이 다른 정유천사장님의 사이키델릭 블루스 록 연주를 보는 게 낙이었죠. 빨리 어른이 되어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한두수) 질풍노도와 같은 사춘기 방황의 시기가 몰려왔다. 음악에 대한 간절한 마음과는 달리 자아가 형성되지 않았던 한두수는 이후 가출과 외박을 밥 먹듯이 했지만 다행히 특차로 홍익대 컴퓨터공학과에 합격했다. “인디 하면 홍대라 홍대를 택했습니다. 입시를 끝내고 외숙모가 과외를 잡아줘 돈을 벌어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했던 낸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한두수)

한두수 20살 때 인천에서 학원강사 하던 시절

한두수 20살 때 인천에서 베이스 강사 시절

서울 낙원상가에 갔다가 뮤즈에로스, 백두산, 넥스트 등 여러 밴드에서 연주했던 선배 베이시스트를 만나 레슨을 받게 되었다. “한국에서 록 베이스로는 그 형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예민한 나이에 2년 정도 수발을 들어가며 레슨을 받으면서 정말 값진 경험을 했죠. 메탈 하는 형들의 독불장군 같은 고집과 아집 같은 것이 있는데 지금은 그 형을 절대로 배우지 말아야할 모델로 생각합니다. 그 형을 끊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한두수)

홍익대에 진학한 한두수는 수업을 전혀 듣지 않아 중간고사에서 ALL F를 받았다. 관심이 컸던 ‘현대음악의 이해’ 과목만 수업을 들어 유일하게 D를 받았다. 혼자서 거문도로 베이스 기타 하나를 달랑 들고 여행을 떠났다. 비오는 날, 숙소 뒷산 절벽에 앉아 많은 생각을 했다. 처음으로 ‘이제는 내 의지대로 살아보겠다.’는 자아를 발현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졌다. 당시 홍대 앞에서 자취를 했던 그는 종로 쪽 고시원에서 자취하며 연극을 했던 여자 친구를 여행기간동안 자신의 자취방에 머물게 했다. 때마침 아들의 자취방에 찾아온 어머니가 왠 여자아이가 술을 마시고 있는 걸 보고 오해를 해 난리가 났다.(part7으로 계속)

한두수 30살때 다시간 거문도 여행

한두수 30살때 다시간 거문도 여행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한두수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