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만만2> vs <세기의 여성들>

<야심만만 2> 월 오후 11시 5분
출연자 중 누구 하나라도 “그런데 여기 있는 분들도 이제 편성에서 잘리는 거 아니에요?”라고 대거리를 해야 했다. ‘패밀리가 떴다’ 하차를 후회하며 장혁재 PD에게 선처를 구하는 이천희와 나이 많은 최정윤을 놀리고, 졸지에 자신을 전지현, 송혜교와 비교하는 공주병으로 몰린 이민정과 역시 졸지에 마초 캐릭터로 몰린 정경호를 수세에 넣고 공격하는 MC들에게 “누가 누구를 놀리느냐”며 카운터를 날려야 했다. 예능에 약한 네 명의 출연자를 모아놓고 신나게 달려들어 그로기 상태로 만든 그 예의 없음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예의 따위 집어던진 공격본능은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어제의 <야심만만 2>는, 아니 대부분의 시간동안 <야심만만 2>는 재미가 없다는 거다. 이 토크쇼에는 게스트 안의 무언가를 끌어내서 교류하는 즐거움이 없다. 첫 키스와 마지막 키스가 언제냐는 빤하고도 짓궂은 질문도 문제지만 그에 대한 대답에서 새로운 맥락을 찾아내 소통하는 노력이 없다는 게 더 문제다. 그냥 게스트가 키스에 대한 경험을 얘기하고 그걸 듣고 놀리는데 그칠 뿐이다. ‘라디오 스타’는 적어도 직설적인 질문의 연속 안에서 상대의 대답에서 그의 새로운 면을 해석해내고 거기에 맞춰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그 안에서 게스트는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고 심지어는 예능에서의 자신감도 얻고 가끔은 MC를 공격하기까지 한다. ‘라디오 스타’의 공격이 상대방의 공격을 유도하는 공격이라면 <야심만만 2>의 공격은 그냥 공격, 일회적이고 맥락 없는 공격인 셈이다. 그러니 공격이 끝나고 남는 건 맥락 없이 부서진 말의 파편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어제 뭐 봤는지 모르겠다.
글 위근우

<세기의 여성들> 채널동아 월-화 오후 7시 30분
<프렌즈>와 <섹스&시티>의 종영 이후 비슷비슷한 리얼리티 쇼들로 채워져 심심해진 케이블 여성 채널들 가운데 채널동아의 <세기의 여성들>은 눈여겨볼만한 프로그램 중 하나다. 에미상을 수상한 바 있는 미국 A&E TV의 유명한 인물다큐 <Biography> 가운데 여성 에피소드를 선별한 이 기획 시리즈는, 하나하나의 에피소드가 핵심을 잘 짚어주는 인터뷰와 자료들로 밀도 높게 구성되어 그 인물에 대한 깔끔한 입문서를 완성하고 있다. 어제 방송된 ‘제인 오스틴’도 고전 인물이지만 단순히 역사적 의미만이 아니라 세기와 국경을 넘어 사랑받는 이유를 짚어봄으로써 현재적 의미까지 되새긴 에피소드였다. 특히 오스틴 전공자들은 물론이요, <오만과 편견>을 각색해 만든 발리우드 영화 <신부와 편견>의 여성 감독 거란다 차다와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의 작가인 아자르 나피시 교수와 같이 오스틴의 문제의식을 동시대에 재현하고 있는 페미니스트들이 참여한 인터뷰이의 면면이 흥미롭다. 오스틴이 시대상을 정확하게 통찰하는 비평가적 시선의 위대한 리얼리스트였다는 평가는 새로울 것이 없지만 그 세계를 인도의 작은 마을이나 이란의 여성 억압적 사회에 적용시켜도 여전한 의의를 지닌다는 증언들이 새삼 그녀의 위대함을 환기시켰다. 오스틴에 대한 그녀들의 좀 더 사적인 고백들도 인상적이다. “오스틴을 생각하면 처음 사랑에 빠졌던 때가 생각나요”, “다아시는 지적이고 사려 깊고 무엇보다 여주인공의 자질을 알아보는 완벽한 남자예요!” 오스틴이 정말 ‘세기의 여성’인 이유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로맨스와 가장 매력적인 남녀주인공의 창조자라는 데 있다는 점을 잊지 않는 것이다. <세기의 여성>은 이처럼 한 시간이 채 못 되는 러닝타임 안에서 그 대상의 압축된 정수를 맛볼 수 있는 인물 다큐의 좋은 사례다. 정규 편성 프로그램이 아닌 탓에 편성표를 챙겨봐야 하는 수고만 감수한다면 우리시대 문제적 여성들의 충실한 가이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 김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