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션과 팩트 사이, 고려인 기승냥의 서러움…고려는 원의 속국인가요?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야 하지만, MBC ‘기황후’처럼 기황후라는 실존 인물에 픽션을 가미한 경우라면 더욱 실제 역사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실제 역사와 드라마의 내용을 일일이 따지려고 하면 끝이 없지만, 재미와 별개로 간단한 역사적 사실을 가끔 아는 것도 좋을 듯하다.

MBC '기황후' 38회 캡처

MBC ‘기황후’ 38회 캡처

# 먼저, 행성주가 뭐예요?
‘기황후’ 38회에서 정적인 연철이 죽은 뒤, 기승냥(하지원)은 각종 행성주들에게 선물을 받는다. 행성주, 쉽게 들리는 말이지만 평소 쓰지 않았던 단어이기에 어떤 사람들을 뜻하는지 궁금하다. ‘기황후’ 드라마 전개 내내 등장한 이 말은 맥락상 일종의 지방권력자를 의미한다는 것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행성(行省)’은 ‘행중서성(行中書省)’의 준말로 원나라의 최고 행정단위를 뜻한다. 현대 중국 지방 행정 구역인 성(省)의 기원으로 원나라 당시에서 10개의 행성이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행성주는 행성을 다스리는 사람일 터. 행성주는 자신의 행성 내에서 일반 행정은 물론 군사까지 지휘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이런 탓에 행성주의 비대한 권한이 원말의 정치적 혼란을 갖고 왔다는 지적도 있다. 아무리 조정과 황제를 주름잡던 연철이지만, 행성주들의 눈치를 보는 장면이 간간히 보이는 것도 이러한 권력 때문. 지난 37회에서 타환이 연철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것도 행성주들이 모두 타환의 편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 그렇다면 고려는 원의 행성인가요?
‘기황후’ 38회 방송에서 등장한 행성주에게서 온 선물들 사이에서 고려에서 온 선물도 함께 발견됐다. 또한, 백안은 왕유에게 “속국이라면 응당히 갖춰야할 예와 도리가 있지 않냐”며 고려를 깎아내렸다. 그렇다면 고려도 원의 행성이나 마찬가지인 속국일까? 고려는 원 간섭기에 들어서 폐하에서 전하로, 태자에서 세자로, 태조 등의 명칭이 충렬왕 등으로 바뀌는 등 관제 및 관직 칭호가 한 단계 격하돼 사실상 속국이나 마찬가지인 수모를 겪기도 했다. 또한, 원은 고려에 정동행성을 설치해 일본 원정에 필요한 군사와 물자를 수탈하는 등 내정간섭의 기구로 이용하기도 했다. 행성이 실제로 있었던 것이다! 기승냥의 경우처럼 처녀를 공녀로 끌고 가거나 각종 수탈을 자행한 것은 물론이다. 이밖에도 고려의 사정으로 여러모로 서러웠다.

그러나 고려를 원나라의 완전한 속국이라고 보기에는 이르다. 원나라는 정벌하는 거의 모든 땅을 직접 통솔했지만, 오직 고려만은 부마국(사위의 나라)으로서 독립적인 지위를 유지시켰다. 원나라가 유라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고려는 아주 작은 영토다. 그럼에도 원나라는 완전히 정복하지 않은 채 부마국으로 남겨둬 고려가 어느정도 자주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대한 이유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고려 원종이 세자 시절, 쿠빌라이(원 세조, 제 5대 칸)를 찾아갔을 때 쿠빌라이가 “일찍이 당나라 태종이 몸소 공격하였어도 항복받지 못하였다. 지금 그 나라의 세자가 나에게 돌아왔으니 하늘의 뜻이다”라고 반긴 것을 보았을 때, 고려가 분명 단순한 속국 이상의 위치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다. (참고로 부마국으로서 고려의 위치도 원종이 얻은 외교적 성과다. 원종은 쿠빌라이에게 고려 풍속의 인정과 함께 몽고군과 다루가치 철수 협약, 부마국으로서 위치까지 획득했다. 원종과 쿠빌라이 사이의 이야기는 실제 역사에서 꽤나 흥미진진한 부분이다.) 또한, 정동행성이 내정간섭 기구로 알려졌지만, 원나라와 고려 간의 공적인 연락 기관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사실 고려의 부마국으로서의 위치와 원나라와 관계를 둘러싼 논의는 아직도 여러 차례 이뤄지고 있다. 정동행성과 관계없이 고려는 국가 자체로 부인된 적이 없다는 시각, 원이 고려를 고구려의 후신으로 인정했고, 어느 정도의 자주성은 고려의 끈질긴 항쟁이 얻어낸 성과라는 이야기도 있다. 속국 인식은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식민사학의 영향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렇듯 고려와 원은 복잡미묘한 관계를 지녔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고려인이라서 서러웠을지언정 속국이라며 역사를 부끄러워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글. 박수정 soverus@tenasia.co.kr
사진. MBC ‘기황후’ 캡처
참고. 이익주, ‘원의 부마국으로서의 고려국가의 성격’, 한국사 시민강좌 제40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