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재즈의 전설 웨인 쇼터 전격 내한

웨인쇼터

재즈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색소포니스트로 평가 받는 거장 웨인 쇼터가 오는 4월 12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두 번째 내한공연을 갖는다.

올해로 여든한 살이 된 웨인 쇼터는 그의 인생이 곧 재즈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1959년에 아트 블레이키 재즈 매신저스에 참여해 음악감독까지 지내고 이후 존 콜트레인의 뒤를 이어 마일스 데이비스 황금 퀸텟의 일원이 된 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이후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 록·퓨전 작업에 참여하는 한편 조 자비눌, 자코 패스토리우스 등과 함께 웨더 리포트를 이끄는 등 재즈의 변곡점에 웨인 쇼터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여든이 넘은 나이로 꾸준히 연주활동을 하며 소니 롤린스와 함께 살아있는 재즈의 신으로 칭송받고 있다.

웨인 쇼터는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13년 재즈 명가 ‘블루 노트’와 43년 만에 재계약을 맺고 퀄텟으로 녹음한 새 음반 ‘위드아웃 어 넷(Without a Net)’은 “거장의 진면목을 보여준 명작으로 재즈의 역사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All About Jazz)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웨인 쇼터에게 생애 10번째 그래미상을 안겨줬다.

지난 2010년 3월 2일 열린 웨인 쇼터 퀄텟의 첫 내한 공연은 재즈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공연에 대해 재즈 월간지 ‘MM재즈’는 “특별하고도 기이하리만치 놀라운 음악적 체험”이라고 평했다. 다닐로 페레즈, 존 패티투치, 브라이언 블레이드라는 최정상급 연주자들로 이루어진 웨인 쇼터 퀄텟(4인조)은 2000년에 결성됐다. 10년을 넘게 이어온 세월만큼 응집력 있는 앙상블을 들려주고 있는 웨인 쇼터 퀄텟은 이번 내한에서도 최고의 연주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웨인 쇼터는?

1933년에 태어난 웨인 쇼터는 1959년부터 아트 블레이키 재즈 메신저스의 일원으로 활약했으며 1962년 다운비트 매거진이 주최한 투표에서 ‘뉴 스타 색소포니스트(New Star Saxophonist)’에 선정돼 재즈계의 영라이언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964년부터는 허비 행콕, 토니 윌리엄스, 론 카터와 함께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연주 멤버 및 작곡가로 활동했다. 웨인 쇼터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모던재즈부터 재즈 록·퓨전 시기까지 함께 하며 재의 진보에 기여했다.

비슷한 시기에 웨인 쇼터는 솔로활동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쇼터는 1964년 블루노트와 전격 계약을 체결하고 ‘나이트 드리머(Night Dreamer)’ ‘주주(JuJu)’ ‘스픽 노 이블(Speak No Evil)’, ‘더 수세이어(The Soothsayer)’ ‘아담스 애플(Adam’s Apple) 등의 명반을 차례로 발표했다.

마일즈 데이비스 퀸텟을 떠난 후 1970년에는 조 자비눌(건반), 미로슬라프 비투스(베이스)와 함께 퓨전재즈 그룹 웨더 리포트를 결성했다. 웨더 리포트는 흔히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리턴 투 포에버와 함께 재즈 록·퓨전의 정석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웨더 리포트는 1985년 그룹이 해체될 때까지 재즈를 기반으로 라틴, 민속 음악, R&B, 록, 펑크(funk) 등을 접목해 창조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웨인 쇼터가 첫 그래미상을 받은 것은 웨더 리포트 재적 당시다.

1985년 웨더 리포트 해체 후 웨인 쇼터는 솔로로 활동을 이어간다. 허비 행콕과의 조인트 앨범 ‘1+1’, 라이브앨범 ‘풋프린트 라이브(Footprint Live)’ 등을 통해 거장으로서의 위용을 과시한 쇼터는 2000년에 결성한 자신의 퀄텟을 통해 새로운 재즈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웨인 쇼터 퀄텟의 ‘알레그리아(Alegria)’ ‘비욘드 더 사운드 배리어(Beyond The Sound Barrier)’ 등이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이 영관은 근작 ‘위드아웃 어 넷’으로 이어졌다. 웨인 쇼터는 1969년부터 무려 17여 년 동안 연속으로 ‘다운비트’에서 ‘베스트 소프라노 색소포니스트’로 선정되는 대기록도 가지고 있다.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