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ame, 왕지원 (1)

왕지원

MY Name is 왕지원. 작명소에서 지은 평범한 이름이지만 성이 독특해 어렸을 때 별명이 참 많았다. 예상하는 것처럼 ‘왕뚜껑’ 같은 느낌의 별명들이다.

5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 미술, 피아노 등 예체능을 다양하게 배웠고 그 중 하나가 무용이었다. 유독 무용만큼은 싫증을 내지 않고 오래오래 좋아했다. 부모님도 내가 무용하는 것을 좋아하셨기에 든든한 지원을 해주셨다. 발레리나라는 꿈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린 나이에 발레가 좋았던 이유를 지금 생각해보면 분명히 떠오르지 않지만 그저 행복했던 것 같다. 어려서 시작했기에 유연성도 좋았고, 무엇보다 예쁘게 꾸며지는 느낌이 좋았다. 학교를 다니면서 대회 참가를 위해 일찍 조퇴해도 되는 소소한 특권을 즐겼던 것도 같다.

초등학교 때, 여자친구들의 시샘도 받았다. 남자친구들과 더 잘 어울렸다. 함께 축구도 할 정도였다. 발레 때문에 자주 학교를 빠지다가 남자친구들과 운동장에서 축구하는 그런 여자아이. 그래서 사실 마음을 터놓을 친구를 많이 사귀지는 못했다. 학교를 자주 빠진 탓도 크다. 수학여행을 간 기억도 없다. 예중 입시를 준비하고 있던터라 부상도 걱정되었고 얼굴이나 몸이 까맣게 탈까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발레는 그렇게 때로는 제약이 되기도 했다.

선화예중에 입학하고부터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친구는 여기서도 만나기 힘들었다. 아마 그 시절 그 공간의 모두가 그랬으리라. 어렸음에도 시기와 질투가 심했고, 무엇보다 엄마들의 치맛바람이 거셌다.

왕지원

15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아빠 일 때문에 가족 모두가 영국으로 갔고, 나는 영국 왕립학교인 로얄발레스쿨에 입학했다. 무용을 하는 이들이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꿈의 학교였다. 때마침 발레를 소재로 한 영화와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나왔던 시기인터라 내 머릿속은 온통 환상으로 가득했다. 그렇지만 영화와는 다른 현실이 버티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초등학교 3~4학년이 배울 테크닉으로 수업이 꾸려져있으니 지루할 밖에. 무엇보다 기숙사에 살아야 하는 조건으로 입학했는데 그 학교 전체에 동양인은 나 한 명, 언어 장벽도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차마 티를 내지 못했다.

부상을 당한 것은 그 무렵. 골반 뼈가 부러졌다. 휠체어 신세를 질 정도의 큰 부상이었다. 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바심이 커졌다. 그 나이에 쌓는 실력은 중요했다. 근력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는데 다쳤으니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자연스레 방황을 시작했다. 사춘기 때라 더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잡고 있던 모든 것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졸업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한예종에서 무용을 전공하면서도 잡지 모델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부상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모델 활동으로 해소하고 있었다. 마음이 차츰차츰 기울어 간 것은 그 때쯤 이리라. 발레리나에서 배우로 전향한 것, 남들이 볼 때는 갑작스러운 선택일지 모르겠으나 내 내부에서는 이 시기 부터 이미 변화의 조짐이 싹트고 있었다. 아주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22살, 배우가 되고자 마음 먹으면서 본격적으로 연기수업을 받았다. 그 기간이 2년에서 3년 정도가 된다. 당시 원빈 선배가 소속된 회사와 전속계약도 맺고 잡지나 CF 쪽으로 활동을 했다. 연기에 대한 기본기를 닦는 시기였지만, 남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 힘든 시간이기도 했다. 그 시절 영화 ‘블랙스완’이 개봉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내게 그 영화에 관해 물어보았다. 결국 엄마와 같이 가서 보고 말았다. 그리고…나는  나탈리 포트만이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금 놀랐다.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 흔적이 눈 앞에 선연했다.

왕지원

2013년  ‘굿닥터’에 캐스팅 됐다. 정확한 데뷔는 시트콤 ‘닥치고 패밀리'(2012)였지만, 등장하는 신이 몇 없었다. 반면 ‘굿닥터’는 주요 인물 안에 늘 같이 어우러지는 그런 역할이었다. 처음 들어간 미니시리즈라 마냥 신기해하며 촬영을 했던 기억이다. 좋은 배우들과 한 장면 안에 있는 내가 신기했다. 현장 분위기도 좋았다. 지금도 문채원 언니와는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로 가까워졌다.

첫 주연작 tvN ‘로맨스가 필요해3’는 아쉬움 투성이이지만 소중한 기억이다. 처음에는 (윤)승아 언니가 연기한 희재 역 오디션을 보러 갔었는데, 결국은 오세령 역에 캐스팅 되었다. 아직 스물 다섯인 내가 서른을 넘은 여자를 연기한다? 어렵게 생각할 수 있지만, 내 주변 30대 언니오빠들을 보면 나와 큰 차이가 없다. 걱정도 되었지만 설레기도 했다. 내가 어떻게 오세령을 만들어 나가게 될까 궁금하기도 했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오세령이라는 여자를 나는 이해한다. 화려한 스타일리스트이지만, 그 과정에 받은 상처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러면서 변했을 것이다. 그 누가 태어나면서부터 나쁜 사람일까. 세령 역시도 자신을 방어하려다보니 그렇게 강해진 것 같다. 자기 옆에 진정 마음을 터놓고 있는 친구가 없지만 그럼에도 그만큼 성공한 여자라면, 기가 그렇게 셀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똑똑한 사회생활을 하는 여자라는 생각도 들었다. 발레하던 시절의 기싸움도 생각이 나면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나는 그렇게 세령을 이해하면서, 그녀가 안타깝고 아프기도 했다.

배우로서 극복해야 할 과제? 청순가련형은 아마 못할 것이다.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충분히 장점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미팅을 할 때도 늘 내게는 부잣집 딸 아니면 잘 나가는 커리어우먼 등, 세고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역할이 주로 들어온다. 어떤 분은 내게 그런 역할을 숙명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더라. 그렇지만 진짜 나는 그렇게 강하지만은 않다. 보이는 것이 그렇다는 것은 나도 인정하지만 말이다. 결국 내가 풀어나가야 하는 숙제일 것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