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후> 제작진│“닥터는 심장이 두 개라 두 배로 인간적인 사람”

지난 11일, <서울 드라마 어워즈 2009>에서 BBC의 <닥터 후> 시즌4는 ‘가장 인기 있는 올해의 외국드라마’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사실 한국에서 <닥터 후>는 한국에 최초로 판매된 영국 드라마이자 지상파에서도 방영된 SF드라마지만 대중적으로 폭넓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대신 SF장르 마니아들과 주연을 맡은 데이빗 테넌트의 팬들 사이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다. 최근 <닥터 후>는 시즌4의 종영과 함께 새로운 스페셜 에피소드를 선보였고 새 시즌에선 데이빗 테넌트 대신 다른 닥터가 등장할 예정이다. <서울 드라마 어워즈 2009>에 참석한 <닥터 후> 시즌4의 제작자 필 콜린슨과 의상 디자이너 루이스 페이지를 만나 <닥터 후>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10 한국에 <닥터 후>의 팬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나. 그 커뮤니티 안에서 필 콜린슨은 떡밥(hooks)의 제왕이라고 불린다.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웃음)
필 콜린슨
: 내겐 칭찬이다. (웃음) <닥터 후>는 처음으로 한국에 판매된 드라마인데 반응이 좋다고 들어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영국에서도 이렇게 긴 에피소드가 순차적으로 진행된 경우가 드물다. <닥터 후>가 성공한 이유 중에는 바로 그렇게 ‘떡밥’을 던진 것도 크다고 생각한다. (웃음) 시즌마다 전체 이야기가 대충 정해져 있는데 거기에 맞춰서 매 에피소드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전개해나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야망이 많지만 시간과 돈이 항상 받쳐주진 않는다”

10 <닥터 후>는 시간을 다룬다는 점에서 다른 SF 장르물보다 더 풍성하고 다양한 이야기가 나온다고 생각한다. 시즌과 시즌, 에피소드와 에피소드들이 앞뒤로 꽉 짜여졌다는 느낌도 받는다. 처음부터 이 모든 걸 다 고려해서 만드나.
필 콜린슨
: 그렇다. 새 시즌을 기획했을 때 <닥터 후>의 메인 작가 러셀 T. 데이비스가 13개 에피소드마다 한 두 줄의 짧은 코멘트를 달아놓았다. 그걸 보고 나는 각 에피소드에 대한 예산을 조정했다. 비용으로 보자면 시즌4에선 폼페이 에피소드가 가장 비쌌고, 도나의 시간여행인 ‘Turn Left’가 가장 저렴했다. (웃음) 몬스터의 경우도 어떤 몬스터를 CGI로 할 건지 분장으로 할 건지 결정한다. 사실 우리가 가장 신경을 쓰는 건 세트 디자인이고 그게 <닥터 후>의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여행을 다루기 때문에 미래와 과거가 복합적으로 등장하고, 그에 따라 세트와 의상을 모두 새롭게 구상한다.

10 제작비 분배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제작비에 따라 만족도도 다를 것 같다. 시즌4에 한해서 제작자로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에피소드와 아쉬웠던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예산 배정을 중심으로 말해주길 바란다. (웃음)
필 콜린슨
: 나는 마지막 에피소드 두 개를 가장 좋아한다. 시즌의 마지막 피날레에 어울리게 그 동안의 모든 캐릭터가 돌아왔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달릭도 돌아왔고. (웃음) 아쉬웠던 건 폼페이 에피소드다. 이탈리아에 있는 치나치타 스튜디오,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애용하던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는데 폼페이에 대한 세트가 정말 훌륭한 곳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우리가 쓸 수 있는 시간이 단 2일밖에 없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좀 더 디테일한 에피소드가 되었을 것 같다. 우리는 야망이 많다. 그런데 그걸 시간과 돈이 항상 받쳐주진 않는다. (웃음)

10 그러면 의상을 만드는 입장에선 돈과 시간이 언제나 문제일 것 같다. 과연 닥터의 옷이 단 두 벌이란 건 제작비 절감을 위해선가. (웃음)
루이스 페이지
: 하하, 아니다. 닥터에게는 갈색 수트도 다섯 벌이나 있고 파란 수트도 다섯 벌 있다. (웃음) 셔츠나 타이도 많다. 닥터의 의상을 처음 기획했을 때 중요했던 건 이 사람이 어느 시대, 어떤 배경에서도 그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필 콜린슨: <닥터 후>의 의상을 담당할 인재를 찾기 위해 제작진은 많은 디자이너들을 만났다. 그때 루이스는 닥터에 대한 콘셉트를 완벽하게 잡아왔었다. 데이빗 테넌트에 대해서도 연구를 많이 했는데 모델처럼 마른 그의 몸에 딱 맞는 옷에 캔버스를 신긴 스타일이 좋아보였다. 그게 일종의 영국 스타일로 굳어졌다고 본다.
루이스 페이지: 인터넷에는 닥터의 의상을 똑같이 만들어서 파는 사이트도 있다. 예전에 다섯 살 정도 된 꼬마가 닥터의 의상을 쫙 빼입고 찾아온 적도 있었다. 닥터의 의상은 사실 범생이 스타일이다. 뿔테 안경도 있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닥터는 섹시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여자들도 좋아하고, 남자들도 좋아하고, 또 아이들도 모두 좋아하는 캐릭터다. 게다가 닥터는 눈도 맞고 비도 맞고 가끔 떨어지기도 한다. 그 모든 걸 고려해서 의상을 디자인했고 와이어를 껴야할 때는 평소보다 좀 넉넉하게 만들기도 한다.

“시즌5에서는 타디스의 디자인도 많이 바뀐다”

10 닥터는 파란 수트와 갈색 수트를 번갈아 입는데 어떤 룰이 있는 건 아닌가?
루이스 페이지
: 그 점에 대해서 러셀 T. 데이비스와 데이빗 테넌트를 만나 얘기를 많이 나눴다. 갈색 수트는 배경이 과거일 때 주로 입었고, 푸른 수트는 닥터가 미래나 다른 세계로 갈 때 주로 입는다. 우주선을 탈 때도 파란 수트를 입는데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갈색 수트를 입은 건 그게 엔딩이라서 그렇다.

10 과거와 미래에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의 의상은 어떤 기준으로 만드나.
루이스 페이지
: 모두 내 머리에서 나온다. (웃음) 물론 과거 의상을 만들 때는 스크립트를 참고한다. 시대가 달라져도 크게 변하지 않는 의상, 진 같은 것들을 활용한다. 우주 시대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미래적이거나 우주복 같은 어떤 전형을 고려하는 건 아니다.
필 콜린슨: 우리는 시청자들이 의상이 아니라 캐릭터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신경 쓴다. 디자인도 그렇게 결정된다. 주머니의 사이즈나 스티치의 유무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는데 브랜드나 로고 같은 건 드러나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10 시즌4는 <닥터 후>의 이야기가 한 판 정리된 느낌이다. 모든 캐릭터가 등장해 지구를 구하고 모두 제 자리로 돌아간다. 그래서 시즌5는 어떤 이야기로 전개될까 궁금하다. 물론 여러분들은 시즌5에 참여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스포일러’를 들을 수 있을까. (웃음)
필 콜린슨
: 안타깝게도 나도 잘 모른다. (웃음) 시즌5에 대해선 나도 시청자의 입장이다. 물론 이야기의 큰 줄기는 대충 들었다. 데이빗 테넌트가 연기한 11대 닥터가 죽는다는 슬픈 소식도 들었다. 타디스의 디자인도 많이 바뀐다고 한다. 3주 전부터 촬영에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스틸 사진을 보면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무슨 역할을 하는지 궁금해서 나도 인터넷을 찾아본다. (웃음) 나도 어릴 때 <닥터 후>를 보고 자랐는데 지금 딱 그 기분이다.

“닥터는 심장이 두 개라 두 배로 인간적인 사람”

10 마지막 질문이다. 두 사람에게 모두 묻고 싶은데 각자의 입장에서 닥터는 어떤 사람인가. 그는 시간을 축으로 영원한 여행을 하는 사람이고 매번 혼자 남겨지는 사람이다. 늙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종족인데 그래서 외로운 사람일까, 행복한 사람일까.
필 콜린슨
: 내 생각엔 닥터의 캐릭터는 어느 정도 균형이 필요한 캐릭터다. 본질적으로 그는 멜랑콜리한 존재다. 나이도 먹지 않고 정착할 수도 없다. 항상 누군가의 죽음을 봐야하고 괴물과 싸워야하는 존재면서 동시에 매번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신이 나는 존재기도 하다. 그 균형을 유지해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나는 닥터가 낙관적이라고 본다.
루이스 페이지: 어려운 질문이다. (웃음) 그는 매번 동료들을 잃지만 또 항상 새로운 동료를 만난다. 그가 굉장히 슬퍼 보일 때도 많지만 정작 모든 사람은 그를 좋아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닥터를 그저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10 ‘인간적’이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닥터는 항상 감정이 없다는 비판을 받고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캐릭터가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보인다는 것도 재밌다.
루이스 페이지
: 그도 우리랑 똑같이 느낀다. 그게 인간이다.

10 심장이 두 개라서 두 배 더 느낄지도 모르겠다. (웃음)
루이스 페이지, 필 콜린슨
: 오, 맞다. 그는 두 배 더 인간답다. (웃음)

글.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