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인디 컬렉션, 원초적 독창적 사운드로 부활한 써드스톤(part3)

써드스톤 피쳐사진58

고2가 되면서 박상도의 인생을 바꾸어 놓은 운명의 음악시간이 다가왔다. 선생님이 그에게 노래를 시켰다. 긴장이 되어 바이브레이션이 저절로 걸린 상태로 이태리 가곡 ‘오솔레미오’를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다. 아이들이 박수를 쳤고 선생님이 “성악을 해 볼 생각이 있냐?”고 칭찬을 했다. 기분이 좋아진 박상도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때까지 저는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목청은 타고나 아무리 크게 불러도 목이 쉬질 않아 고등학교 때 연대장까지 했었습니다.”(박상도)

고2 여름방학 때 어머니에게 코드를 배워 기타를 쳐보았다. 느낌이 너무 편안했다. 사실 모태시절부터 태교음악처럼 통기타를 치며 노래한 어머니의 노래를 들었던 그에게 기타소리는 영혼의 고향이나 다름없다. 어머니에게 노래 발성법까지 배우며 통기타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국내외의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음은 잘 나오지 않았지만 어머니가 목소리가 좋다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학교와 미술학원에 기타를 들고 다니면서 악을 쓰며 노래하니 그동안 나오지 않았던 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더군요.”(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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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주자로 떠오르던 포크가수 이정열의 공연을 보러가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감동받았다. 블루스 포크가수가 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고3 음악시간에 통기타로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불렀다. 친구들이 ‘똑같다’고 감탄을 했다. 탄력을 받아 들국화, 김현식, 윤도현의 샤우팅 창법을 구사하니 “그들이 합쳐진 목소리 같다”는 반응에 한껏 고무되었다. 2000년 경원대 서양화과에 진학해 통기타 노래 동아리 ‘고운소리’에 들어갔다. 동아리 내에서도 노래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여행스케치’ 노래를 부르면서 화음을 넣는 법을 습득했고 동아리 선배로부터 가성과 진성을 섞는 법도 배웠다. 하루 3시간이상 발성 연습을 했다. 예전엔 2옥타브 파가 간신히 나오는 수준에서 1년이 지날 때마다 반음씩 올라갔다.

파트3용-박상도 통기타 라이브카페 아르바이트 무명가수 시절

박상도 통기타 라이브카페 아르바이트 무명가수 시절

1학년 겨울방학 때, 부천 ‘에이스’, 안양 ‘추억만들기’ 등 라이브 카페에서 돈을 받고 노래하는 무명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동아리 음악부장이 된 그는 1학년 마치고 휴학했다. 2003년 군에 입대해 2006년 복학했다. 사실 박상도는 타고난 골격은 좋지만 허약 체질이다. 그가 공익근무를 했던 것은 손발에 땀이 많이 나는 다한증 때문. “공부하려고 글을 쓰면 노트가 젖을 정도고 버스 손잡이 잡으면 땀이 뚝뚝 떨어지는지라 기타를 치면 땀을 엄청 흘립니다. 그래서 21살 때 다한증 수술을 했는데 이제는 손이 아닌 다른 부분에 땀이 많이 납니다. 그 덕에 공연하면 열심히 연주하는 것으로 오해들을 하십니다.(웃음)”(박상도)

경원대 미대 재학시절 박상도가 그린 그림

윤도현밴드의 모습이 멋있어 밴드를 해보고 싶었다. 당시 그의 친동생 박상명은 인천전문대 동아리에서 드럼을 쳤다. 베이스를 찾으러 동생을 찾아갔다 안성진을 만났다. 현재 밴드에서 드럼을 치는 안성용의 친형이다. 그렇게 세 사람은 동아리방에서 즉흥연주를 해본 후 3인조 포크록 밴드 슬리핑 잼을 결성했다. 박상도는 기타리스트로 나서기엔 실력이 부족해 악기 관련 인터넷 사이트 ‘뮬’에 구인광고를 냈다. 21세 신치범이 찾아와 4인조를 구성했다. 자작곡과 윤도현 밴드 커버 곡을 불러 오디션을 통과해 인천 라이브클럽 락캠프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홍대 앞 클럽 롤링스톤즈도 오디션을 통과했다. “오디션 때 롤링스톤즈 대표님이 제 노래를 듣고 윤도현이 왔나 착각했다고 하셨죠. 그땐 윤도현, 강산에 선배와 목소리가 비슷하다는 소리가 너무 좋았는데 나중에 노래를 그만두고 기타에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박상도) 그 장벽은 2006년 12곡을 녹음했지만 밴드 슬리핑 잼의 앨범을 발표하지 못한 원인이 되었다. 아류라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부담스러웠기 때문.

슬리핑잼시절14(전두희,정유천,박상도)

락캠프에서 전두희,정유천,박상도(왼쪽부터) 블루스잼

2003년부터 인천 락캠프에서 매주 토요일에 공연했죠. 공연이 끝나면 사장님이 공연을 했어요. 그때 솔로 기타 연주만으로도 노래보다 더 사람의 심금을 울릴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스티비 레이 본의 영상까지 보면서 ‘기타가 왕’이란 확신이 들어 2004년부터 정말 열심히 기타연습을 했습니다. 공연 때 솔로 기타 연주곡을 한 두곡씩 하기 시작했죠.”(박상도) 2006년 공익근무 마치면서 첫 밴드 슬리핑 잼을 그만두었다. “21살 때부터 20곡정도 작곡을 만들어 4년 정도 불렀는데 앨범을 내고 또 불러야 한다는 게 지긋지긋했고 윤도현, 강산에 아류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밴드를 해체했는데 멤버들이 지금 ‘그때 왜 그랬냐?’고 섭섭한 마음을 보여 미안할 따름입니다.”(박상도)

밴드 슬리핑잼 시절 공연 모습3

슬리핑잼 시절

박상도는 공익근무 후 인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밤에 컴퓨터로 지미 헨드릭스의 ‘써드스톤 프롬 더 선’ 노래를 듣고 충격을 받고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경도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며 번 돈으로 펜더 기타를 샀다. UCC 동영상이 대유행했던 당시, 카피 곡들을 기타 치며 노래하는 영상을 캠코더로 찍어 뮬 사이트에 올렸다. 반응이 좋았다. 2007년 7월, 베이스 안성진과 드럼 박상명과 함께 3인조 밴드 써드스톤을 결성했다. “밴드이름을 노래 제목 그대로 가기엔 너무 길어 써드스톤으로 줄였습니다. 지금은 한국이름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 후회가 되지만 그땐 한국음악의 한계를 느꼈고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미국에 대한 동경이 심했습니다.”(박상도) (PART4로 계속)

슬리핑잼시절 박상도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박상도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