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점, ‘서프라이즈’ 작가님, 히스 레저가 자살이라뇨!

조커가 된 남자

지난 2일, 히스 레저가 종일 주요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렸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이하 서프라이즈)에서 ‘조커가 된 남자’라는 제목으로 히스 레저(1979년 4월 4일~2008년 1월 22일)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다크 나이트’의 조커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에 대한 이야기인 만큼 시청자들의 이목은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몇몇 영화 게시판에서는 히스 레저의 이야기가 방송된다는 소식에 방영 전부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고인의 연기 열정을 다시 한 번 짚어보려 한 ‘서프라이즈’ 측의 의도는 나쁘지 않다. 문제는 얼마나 사실에 근거해서 그의 인생에 접근 했느냐인데, ‘서프라이즈’는 히스 레저가 조커 역할에 몰입한 나머지 우울증을 앓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밝히며 ‘자살을 선택한 히스레저’ 라는 자막까지 친절하게(?) 내보냈다. 그런데, 그는 정말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일까.

‘자살을 선택한 히스레저’라는 자막까지...

‘자살을 선택한 히스레저’라는 자막까지…

1. 히스 레저는 정말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인가! 

히스 레저가 숨진 채 발견 된 것은 지난 2008년 1월 22일. 발견 당시 그는 알몸인 상태로 침대에 쓰러져 있었고, 주변에서 다량의 수면제가 발견됐다. 당시 사건을 맡은 뉴욕경찰청은 “사인이 자살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며 “그를 사랑하던 사람들에게는 특별히 어려운 시간이므로 정확한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근거에 추측한 보도는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었다. 히스 레저의 유족들 역시 연일 매스컴을 타고 올라오는 히스 레저의 자살설에 반박하며 “의도하지 않은(accidental) 사망”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뉴욕시 검시관 엘렌 보라코브 대변인은 “히스 레저가 진통제, 신경안정제, 수면제 등 6가지 종류의 처방약을 한꺼번에 복용해 급성중독을 일으켜 숨졌다”고 밝혔다. 자살이 아닌, 우발적 약물 과다복용(accidental drug overdose)에 의한 사망임을 공식 발표한 셈이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은 1년 후 다시 한 번 논란이 된 바 있는데 보험사가 히스 레저의 사인이 사고사가 아닌 ‘자살일 수 있다’고 판단, 레저의 딸 마틸다 로스에게 돌아가야 할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분노했고, 결국 보험사는 마라톤 협의 끝에 생명보험금 1,000만 달러를 마틸다에게 지급했다. 히스레저의 사망 원인이 자살이 아님을 보험사도 받아들인 것이다.

이처럼 뉴욕 경찰은 물론 보험사마저 조심스럽게 접근한 한 배우의 죽음을 ‘서프라이즈’는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자살로 결론 지어버렸다. 그리고 히스 레저는 졸지에 (‘조커가 된 남자’가 아니라) ‘자살을 한 남자’가 되고 말았다. 확인되지 않은 추측을 근거로 한 사람을 자살로 물아 가는 것은 엄연히 명예훼손이다. 사망 당시 히스 레저가 연기에 대한 중압감이 컸다는 것은 그가 남긴 많은 인터뷰(고 히스레저는 2007년 11월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임 낫 데어’를 촬영하며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고, ‘다크 나이트’의 조커를 연기하는 동안 수면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한바 있다)에서 확인 할 수 있지만, 그것이 자살로 몰고 갈 이유가 될 수는 없다.

2. 히스 레저가 ‘다크나이트’의 성공을 보고 죽었다고?

히스 레저

이 날 방송 중 사실과 달랐던 또 하나는, 자살 시점이다. 방송은 내레이션을 통해 “‘다크 나이트’의 조커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캐릭터로 히스 레저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주었지만 정작 그의 곁에는 조커의 망령만 남아 그를 괴롭힐 뿐이었다”고 했다. 앞에서 밝혔듯 히스 레저가 사망한 것은 2008년 1월. ‘다크 나이트’가 개봉한 것은 그로부터 7개월 후인 2008년 7월이다. 그러니까 히스 레저는 ‘다크 나이트’의 흥행 소식과 자신에게 쏟아지는 찬사를 경험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셈인데 방송은 마치 히스 레저가 자신에게 쏟아지는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뒤로한 채 생을 마감한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묘사했다.

물론 ‘서프라이즈’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시사교양국이 아닌 예능국에서 제작하는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재미를 위한 어느 정도의 포장이 있을 수 있으며, 재가공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역사적 사건과 베일에 가려진 진실들’을 파헤치는 것을 의도로 제작된 프로그램인 만큼 그것은 어디까지나 ‘팩트’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야 한다. 하물며 한 생명의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라면 PD와 작가들이 조금 더 세심하게 다뤘어야 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고인에 대한 공식적인 사죄와 정정보도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