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뚫고 하이킥>│장르의 해탈을 꿈꾸는 시트콤의 도인이 온다

지난 7일 첫 방영한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은 김병욱 감독이 MBC <거침없이 하이킥>이후 2년 만에 내놓는 시트콤이다. 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지붕 뚫고 하이킥>은 주목받을 이유가 있는 작품이다. SBS <LA 아리랑>부터 <거침없이 하이킥>에 이르기까지 김병욱 감독의 작품은 곧 한국 시트콤의 변화사이기도 했고, 그는 지금 쇠락한 한국 시트콤에서 경쟁력을 가진 시트콤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작품에서 일정한 대중적 성과와 비평적 지지를 얻었던 김병욱 감독은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무엇을 보여줄까. <10 아시아>가 <지붕 뚫고 하이킥>과 김병욱 감독에 관한 이야기와 현장 스케치, 그리고 김병욱 감독의 인터뷰를 준비했다. 만약 김병욱 감독의 팬이라면 그의 시트콤 역사를 훑어 볼 수 있는 시험을 치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 가족이 있다. 돈은 많지만 괴팍한 할아버지, 드센 딸과 미덥지 못한 사위, 말썽꾸러기 손자들. 그리고 매일 그들의 집을 들락날락 거리며 그들과 일하고, 싸우고, 사랑하는 사람들. 언제나 변함없이 웃기는 가족들의 이야기. 그렇다. 김병욱 감독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이다. ‘돌아왔다’는 말이 어울릴 만큼, <지붕 뚫고 하이킥>의 초반은 그렇게 제목마저 닮은 <거침없이 하이킥>의 세계를 재현한다. 이순재는 여전히 부유한 할아버지고, <거침없이 하이킥>의 멍청한 아들과 강단 있는 며느리의 구도는 딸과 사위로 바뀌었을 뿐이다. 출연진들이 실명을 쓰되, 성만 ‘할아버지’의 성으로 바꾸는 작명도 여전하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자기 복제가 아니다. 김병욱 감독이 15년 동안 1400여회의 에피소드를 만드는 동안, 그는 스스로 가족 시트콤의 기준을 만들고, 파괴하고, 다시 발전시켰다.

한국 가족 시트콤의 다른 이름, 김병욱

SBS <LA아리랑>이 등장했을 때, 시청자들은 더 이상 근엄하지만은 않은 아버지와 지극히 세속적인 어머니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가벼운 코미디를 즐겼다. 하지만 MBC <거침없이 하이킥>의 시청률이 정점에 올랐을 때 쯤, 시청자들은 윤호-민정-민용의 멜로의 결과를, 민영(박민영)을 둘러싼 미스터리의 정체를 궁금해 했다.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는 늘 즐거울 것만 같던 시트콤 속 가족이 한 사람의 죽음을 감당해야 하는 광경을 보여줬고, SBS <똑바로 살아라>는 때론 ‘한 달에 180만원 받는’ 직원과 고용주 사이에서 벌어지는 계급갈등마저 드러낸 풍자극이었다. 김병욱 감독은 슬랩스틱부터 풍자를 아우르는 다양한 코미디와 25분 사이에 기승전결을 마치는 전형적인 에피소드 패턴으로 대중을 끌어들였지만, 동시에 대중에게 낯선 재미와 성찰을 경험케 하는 ‘이상한 시트콤’ 작가다.

그래서 <지붕 뚫고 하이킥>이다. 아직 작품 초반이기에 단정할 수는 없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은 김병욱 감독의 새로운 전환기가 될지도 모른다. 제목이나 가족 구성이 마치 <거침없이 하이킥>의 속편처럼 보일 만큼 비슷하지만, <지붕 뚫고 하이킥>은 사실상 <거침없이 하이킥>과 대구 관계 같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김병욱 감독의 시트콤 중 양적, 공간적, 장르적으로 가장 확장된 작품이었다. 그는 한 가족을 중심으로 학교와 병원에 이르는 다양한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다채로운 캐릭터를 집어넣어 그들이 코미디부터 미스터리에 이르는 장르들을 소화하도록 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은 25분 내에 기승전결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시트콤 에피소드의 형식은 유지하되, 그 안에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끌어들여 장르의 형식적 한계까지 도달했다.

김병욱 감독식 ‘드라마’의 시작

반면 <지붕 뚫고 하이킥>의 초반은 ‘다른’ 시트콤의 모습으로 전개된다. <거침없이 하이킥>과 반대로, <지붕 뚫고 하이킥>은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인다. 3회에 이른 시점까지 이야기는 순재의 가정과 세경-신애 자매에게 일어나는 소소한 사건들로 채워지고, 학교나 순재의 회사는 말 그대로 그들의 배경일 뿐이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초반부터 여러 캐릭터들을 여러 공간에 배치하고, 불꽃놀이하듯 동시다발적으로 사건을 터뜨린 것과는 대조적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톤은 차분하고, 패러디나 미스터리도 없다.

대신 <지붕 뚫고 하이킥>은 느슨한 흐름 사이에 스토리를 쌓아 나간다. 순재와 자옥은 연애중이고, 아버지의 빚 때문에 산골에서 살았던 세경과 신애는 서울로 도망쳐 거리를 방황한다. 이런 흐름은 시청자들이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와 갈등을 상상할 수 있게 한다. 이미 지훈(최다니엘)을 한차례 만난 세경은 언제쯤 순재의 가족들과 만날까. 그리고 세경은 지훈과 줄리엔(줄리엔 강) 중 누구를 좋아하고, 자옥은 자신을 싫어하는 순재의 딸 현경(오현경)과 어떤 갈등을 빚을까. <거침없이 하이킥>이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그들의 관계로부터 서사를 이끌어냈다면, <지붕 뚫고 하이킥>은 초반부터 스토리를 전개 시킨 뒤 거기서 캐릭터를 조금씩 만들어나간다. <거침없이 하이킥>이 1400여회의 시트콤 끝에 나온 시트콤의 끝이었다면, <지붕 뚫고 하이킥>은 김병욱 감독식 ‘드라마’의 시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트콤이라는 지붕을 뚫고 나올 새로운 정신

이 형식적 변화는 동시에 김병욱 감독의 메시지를 두드러지게 한다. 전작들보다 차분해진 톤과 서사가 가진 추진력 위에서, <지붕 뚫고 하이킥>은 사람들의 처연한 슬픔을 태연하게 보여준다. 돈 없이 서울에 올라온 자매는 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한 가난한 과외 교사는 능력 부족을 이유로 해고당한다. 그의 연출과 이야기가 시트콤에서 드라마로 좀 더 옮겨오자, ‘김병욱 월드’ 밑에 있던 ‘김병욱 정신’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똑바로 살아라>에서 가난한 영규가 50만원 때문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동안, 부유한 주현(노주현)이 50만원을 딸의 용돈으로 주던 에피소드를 기억하는가. 다소 과장된 톤의 코미디와 시트콤의 경쾌한 에피소드 전개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늘 가족의 정 아래에 각박한 세상의 슬픈 풍경들을 묻어두었다. 그리고 <지붕 뚫고 하이킥>은 그가 조심스레 전달했던 그의 생각들이 보다 전면에 떠오를 가능성을 품고 있다. 21세기에 식모살이를 할 세경-신애 자매와 순재 가족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돈이 만들어낼 비극을 내포하고 있다. 어쩌면 <지붕 뚫고 하이킥>은 시트콤의 붐과 쇠락을 모두 경험한 시트콤 장인이 내놓은 다음 단계의 시트콤일지도 모른다.

물론, <지붕 뚫고 하이킥>이 정말 하늘로 솟아오를 작품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단지 아직 작품 초반이어서만은 아니다. 이는 오히려 드라마와 시트콤의 화학작용에 관한 문제다. <지붕 뚫고 하이킥>은 드라마의 서사와 흐름을 가졌지만, 각각의 컷들은 시트콤적인 연출을 보여주곤 한다. 드라마에 비해 컷은 좀 더 빠르고, 순재가 자옥과 학교에서 데이트를 하다 발각되자 학생들로부터 도망치면서 벌이는 추격전은 지극히 시트콤적인 과장된 액션을 보여준다. 과연 드라마적인 서사 안에서 이런 시트콤의 웃음은 어디까지 용해될까. 그리고 서사가 깊숙이 진행됐을 때, <지붕 뚫고 하이킥>이 드라마와는 다른 ‘시트콤’의 무엇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장르와 메시지, 대중성과 작가주의.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그리고 놓치지 않았던 김병욱 감독이 시트콤이라는 ‘지붕’을 뚫고 세상에 ‘김병욱표 하이킥’을 날리기 위한 무대 위에 섰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