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PM 재범 탈퇴│이것은 인권의 문제다

그룹 2PM의 재범이 8일 그룹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팬 카페에 올린 글을 통해 “모든 분들께 너무 미안하고, 죄송할 뿐이며 사랑해주셨던 fan 여러분들께는 더욱 죄송하다. 오늘부로 2PM을 탈퇴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재범이 과거 자신의 블로그에 한국을 비하하는 글을 썼다는 보도가 나간 지 4일만의 일이다. 재범이 정말 한국을 싫어했던 것인지, 이번 사건의 사과문에 쓴 것처럼 “언제 데뷔할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에서 감정적인 표현을 한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 일이다. 다만, 이 사건이 단 4일만에 그가 그룹 탈퇴를 할 만큼 엄청나게 커진 것은 분명하다. 포털 사이트 다음 아고라에는 ‘재범 탈퇴’는 물론 ‘재범 자살’이라는 청원까지 올랐고, 일부 언론에서는 재범에 대해 ‘제 2의 유승준’이라는 표현을 했다. 과거에 사적으로 올린 글로 인해 , 재범은 한국에 발을 디뎌서조차 안 되는 사람이 된 것이다.

판단도 기준도 없는 언론의 ‘네티즌의 반응’ 퍼 나르기

물론 재범의 과거 글에 실망할 수는 있다. 또 재범이 계속 활동했다면, 그와 2PM은 이 사건에 대한 부담을 지고 활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범법자도 공직자도 아니다. 그가 싫다면, 연예인인 그를 소비하지 않으면 된다. 방송사도 대중의 반응에 따라 그의 방송 출연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이미 재범은 출연 중이던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노다지’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그러나 재범이 한국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그에게 가수 생활을 그만두라고 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이는 재범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아이돌이라는 사실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재범의 직업이 무엇이든, 그가 자신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할 권리는 누구도 뺏을 수 없다. 단지 나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사회에서 배제한다면, 그것은 연예인의 문제가 아닌 인권의 문제다. 그 점에서 재범의 문제는 단지 연예계가 아닌 사회 전체가 토론해야할 문제다. 대중이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한 사람을 사회에서 내몰 수 있다면, 그것을 정상적인 사회라 말할 수 있는가.

재범이 자진 탈퇴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범이 탈퇴를 결정한 시간은 불과 4일이다. 그는 자신이 소비자로부터 어느 정도 반응을 얻는지 확인해볼 기회도, 시간도 갖지 못했다. 그리고 일부 매체에서는 재범의 탈퇴 직후 “아이돌 매니지먼트사들도 ‘대중’들의 무서움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는 기사를 썼다. 그 ‘대중’이 누구인지도 모호할뿐더러, 대중의 불쾌감이 그룹 탈퇴로 이어질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일부 매체의 주장일 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재범의 사건이 단 4일 만에 이런 식으로 전개된 것은 사건에 대한 판단 대신 사건의 확대에 주력한 언론의 책임이 가장 크다.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한 <동아일보>는 “이 화면이 조작이 아닌 실제 박재범의 글일 경우 논란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논란을 기정사실화 했다. 다음 아고라의 ‘재범 자살’이나 ‘재범 탈퇴’ 청원 역시 언론을 통해 헤드라인으로 등장하면서 크게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재범의 글이 어느 정도 문제인지, 반대로 이런 식의 청원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는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과거에 사적인 글을 남긴 것이 그저 한두 마디 싫은 소리 하고 넘어갈 일인지, 사과를 받아야할 일인지, 그룹 탈퇴를 요구할 만큼 심각한 일인지에 대한 논의도 없었다. 언론은 ‘추방’, ‘탈퇴’, ‘제 2의 유승준’, ‘비하’ 같은 단어들로 논란을 키우는데 급급했다. 심지어 멤버들이 미니홈피에 재범과 함께 가고 싶다고 한 것조차 ‘빈축’을 사는 일이 됐다. 재범이 범법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몇 년간 동고동락한 멤버들이 그래도 함께 하길 바라는 것이 ‘네티즌의 반응’을 핑계로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판단은 없고, 네티즌의 주장과 그에 대한 전달만 있다. 그 과정에서 당시 데뷔도 안 했던 한 교포 청년이었던 박재범이 몇 년 전 사적으로 올린 글은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확대됐다. 수백에서 수천의 네티즌이 다음 아고라에 청원을 올리고, 언론이 이를 기사화하면 연예인 생활 자체가 흔들리는 쓰나미 같은 매커니즘. 여기에는 연예인이 아닌 한 개인의 인권에 대해 말할 공간은 없다. 남는 것은 ‘대중’이 연예인을 원하는 대로 유도할 수 있는가에 대한 승리와 패배의 논리만 있다.

재범에 관한 논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모든 사건의 시작에 해외에서 건너온 아이돌의 ‘인성’ 문제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재범에 대한 모든 반감은 그가 한국에서 활동하지만 한국을 좋아하지 않고, 겉과 속이 다르다는 믿음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그는 ‘외국인 노동자’라는 비아냥을 들었고, 그에 관한 기사에는 “한국이 싫다면 너네 나라 가서 돈 벌라”는 리플이 달린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연예인은 어린 시절부터 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 안 되고, 겉과 속이 한결 같아야 하며, 사생활도 완벽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혹은 그렇지 않은 모습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대중과 언론이 한 사람에 대한 ‘자살청원’을 하고, 그 사실을 ‘논란’의 한 증거로 보도해도 된다.

대체 누가 연예인을 개인적인 생각, 그것도 몇 년 전 사적인 공간에서 쓴 글로 재단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재범의 사건은 연예인의 사생활이 그 내용이 가진 문제로 파악되기 보다는 일부 대중과 언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단으로 쓰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매커니즘에서는 연예인, 더 나아가서는 사람의 기본적인 인권이 ‘인성’과 ‘예의’와 ‘애국심’보다 우선시 된다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국민 정서’로 이름 붙여진 여론의 방향뿐이다.

그래서 재범에 관한 논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재범은 미국으로 떠났지만, 그에 관해 4일 동안 벌어진 수많은 사건들은 한국 사회에 관한 다양한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연예인은 자신의 언행을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고, 대중은 어느 선까지 요구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언론은 연예인의 사적 자유와 대중의 의견 사이에서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가. 이는 단지 연예인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한국 사회가 어떤 문제에 관한 논의를 진행시키는 시스템과, 연예인이란 직업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글. 강명석 (two@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