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김광석③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VS ‘그날들’ VS ‘디셈버’

김광석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뮤지컬계가 김광석에게 시 한편을 선사한다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한 해 김광석은 무대 위로 끊임없이 호출됐다. 김광석의 노래를 담은 주크박스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날들’, ‘디셈버:끝나지 않은 노래’(이하 ‘디셈버’)가 차례로 관객을 만났다. 김광석의 노래가 1년 내내 뮤지컬 무대를 장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러한 흐름은 올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디셈버’가 지방으로 공연을 확대한 가운데,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시즌2를 내 놓았고, ‘그날들’도 재공연을 계획 중이다. 김광석을 내세웠지만 규모와 형식 내용면에서는 완전히 달랐던 세 편의 뮤지컬을 비교해 봤다.

1. 김광석 음악 충실도: 원석 그대로의 느낌 VS 파격 편곡 VS 김광석 미공개곡 공개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람이 불어오는 곳’

바람이 불어오는 곳: 김광석의 곡들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에서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바로 김광석이다. 워낙 주옥같은 노래들이기에 그 감성을 그대로 보존해 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명곡을 훼손했다는 불명예만 안고 나가 떨어지기 십상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작품이다. 순수 악기(기타, 베이스, 퍼커션 등)로 연주하는 ‘어쿠스틱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 덕인데, 배우 박창근이 작사 작곡한 ‘어느 목석의 사랑’을 제외하곤 김광석의 노래 20곡이 원형 그대로 보존됐다. 주인공 이풍세 역의 박창근과 최승열이 모창가수에 가깝게 김광석 노래를 소화한 것도 원곡의 분위기를 살리는데 한몫했다. ‘최승열?’ 잠시 고개를 갸웃하고 있다면, 맞다. JTBC ‘히든싱어 2’에 출연해 화제가 된 그 배우다. 그의 모창실력만 봐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김광석 곡의 느낌을 얼마나 충실하게 재현해 냈는지 가늠할 수 있을게다. 한마디로 김광석 음악 충실도에서는 세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

그날들: 김광석의 음악을 듣는 게 목적이었다면 ‘그날들’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드라마가 취약한 주크박스 뮤지컬의 태생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그날들’은 노래를 이야기에 맞춰 재구성하는 파격적인 편곡을 감행했다. 원곡을 비틀어서 나온 뮤지컬 넘버들은 김광석 음악 특유의 느낌에서 탈피, 이야기에 맞아떨어지는 노래로 재탄생했다. 김광석의 노래를 새로운 관점으로 듣는 재미가 분명히 있다. 반대로 말하면 김광석 노래를 고스란히 추억하고 싶은 관객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는 얘기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일어나’ ‘그대 웃음소리’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등 김광석이 직접 만든 10여곡이 제외된 것도 아쉬움인데, 이는 저작권법(노래를 편곡하려면 원저작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문제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김광석의 오리지널리티를 느끼고 싶은 관객보다 한국 창작 뮤지컬을 경험하고 싶은 관객들에게 적합한 뮤지컬이다.

디셈버: ‘디셈버’는 앞의 두 뮤지컬보다 좋은 위치에서 출발한 ‘복’받은 뮤지컬이다. 김광석의 사진을 사용할 수 있는 초상권과 이름을 쓸 수 있는 성명권 그리고 그의 자작곡에 대한 권리는 모두 갖고 있는 위드삼삼뮤직으로부터 김광석에 대한 각종 권리를 양도받았다. 덕분에 ‘디셈버’는 ‘그날들’이 사용하지 못한 김광석의 자작곡들은 물론, 김광석의 미발표곡 2곡도 녹일 수 있었다. 고인 생전의 무대 영상까지 자유롭게 사용하는 특혜도 입는데, 이러한 장점을 충분히 살렸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남겼다. 김광석의 노래에 스토리를 억지로 꿰맞춘 장면들이 극의 완성도를 떨어뜨렸다는 평. ‘서른 즈음에’를 지나치게 코믹하게 편곡,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김광석이 주인공과 함께 듀엣을 부르는 장면을 홀로그램 시스템으로 구현했다고 홍보하기도 했지만 미흡한 완성도로 실망을 안겼다. 다행히, 김준수의 음성으로 듣는 미발표곡 ‘12월’은 충분히 달달했다.

2. 키포인트: 입소문 VS 흥행보증수표 장유정  VS 장진+NEW 

‘그날들’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유명 스타도 화려한 무대도, 거대 제작비도 없다. 공연기획자의 결혼자금을 포함한 4,000 만 원으로 시작했다는 이 뮤지컬은 그러나 대구에서 서울로, 시즌1에서 시즌 2로 이어지며 강한 생명력을 자랑했다. 장기 레이스의 비결은 입소문이다. 2012년 11월 대구(김광석의 고향)의 조그마한 소극장에서 첫 막을 연 공연은 관객 입소문에 힘입어 2013년 1월 6일(1월 6일은 33세로 생을 마친 김광석의 기일) 마지막 공연까지 3,000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김광석의 생전 흔적이 남아있는 대학로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 눈독을 들인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2013년 7월 서울로 진출한 공연은 9월 대구공연으로 시즌 1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11월부터 스토리를 보강한 시즌 2가 찾아와 선보여졌다. 다만, ‘가격 대비 만족도’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높은 가격의 ‘그날들’과 ‘디셈버’에 비해 완성도에 대한 관객들의 허용도가 높았다.

그날들: ‘그날들’에는 김광석만 있는 게 아니다. ‘오! 당신이 잠든 사이’와 ‘김종욱 찾기’로 창작뮤지컬계 흥행 보증수표로 불리는 극작가 겸 연출가 장유정도 있다. 뮤지컬 업계에서 장유정이라는 브랜드가 지니는 파워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여기에 장유정과 오랜 시간 호흡을 맞춘 실력파 음악감독 장소영과 뮤지컬 대중이 원하는 안무를 척척 만들어 온 정도영, 오재익 안무까지 ‘그날들’은 끌어안았다.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그날들’이 창작뮤지컬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평가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실력파 스태프들의 활약이 컸다. 미스터리가 가미된 추리극 향식의 이야기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유쾌한 군무가 무대를 채웠다. 그 결과 ‘그날들’은 ‘제7회 더뮤지컬어워드’ 올해의 창작뮤지컬상, 남우신인상, 극본상 등 3관왕의 영예를 얻었다.

디셈버: 블록버스터 뮤지컬! 제작비 무려 50억 원이 투입된 ‘디셈버’가 주목 받은 이유는 차고 넘쳤다. ‘7번방의 선물’ ‘감시자들’ ‘변호인’ 등을 배급한 영화배급사 NEW가 내놓은 첫 뮤지컬 작품, 영화‧연극‧TV예능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는 장진 감독의 첫 뮤지컬 데뷔작, 김광석의 미발표 곡 ‘다시 돌아온 그대’와 ‘12월’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작품 등 ‘디셈버’에 향한 업계 안팎의 반응은 뜨거웠다. 기대가 너무 컸을까. 뮤지컬에 대한 노하우가 없는 제작사와 역시 뮤지컬 장르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연출의 만남은 여러 시행착오를 불러일으켰다. 첫 공연 이후 ‘디셈버’는 기대를 받은 만큼의 혹평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처음이기에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는 자세가 좋았고 수정 보완에 대한 흡수도 빨랐다. 첫 공연 때의 ‘디셈버’와 마지막 날 공연된 ‘디셈버’의 완성도 차이가 큰 이유다. 앞으로의 ‘디셈버’를 지켜보고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3. 배우: ‘히든싱어’가 낳은 스타 VS 잔 뼈 굵은 뮤지컬 배우들 VS 티켓파워 김준수

‘디셈버:끝나지 않은 노래’

‘디셈버:끝나지 않은 노래’

바람이 불어오는 곳: 시즌 1 당시, 배우를 보기 위해 이 뮤지컬을 찾는 관객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즌2는 상황이 달랐다. JTBC ‘히든싱어’ 김광석 편에 출연한 주연배우 최승열 때문이다. 김광석과 거의 비슷한 음색으로 화제를 모아 마지막 라운드까지 진출한 최승열의 인기는 뮤지컬로 이어졌다. 인터파크의 뮤지컬 티켓 랭킹에서 ‘디셈버’를 제치고 1위에 오르는 마법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이를 두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날들: 믿고 보는 오만석, 일본 극단 사계 출신의 실력파 배우 강태을, 명품 가창력 최재웅, 관록의 배우 방진희, 여기에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활발한 활동을 유준상 등 ‘그날들’에는 이름값과 실력에서 A급인 배우들이 포진했다 아이돌 출신으로 저평가 받던 오종혁이 기대이상의 호연으로 재평가 받았고, 최근 ‘기황후’로 사랑받고 있는 지창욱도 제 몫을 해 냈다. 다만 6년 만에 뮤지컬 무대로 컴백한 여주인공 김정화의 가창력과 연기력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김정화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가슴을 졸였다는 관객이 적지 않았다.

디셈버: 무슨 말이 필요할까. 어쩌면 ‘디셈버’는 김준수로 시작해 김준수로 끝난 뮤지컬이었을지 모른다. 공연의 완성도와 별개로 김준수에 대한 평가는 호의적이었다. 그의 12월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글, 편집.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사진제공. 이다엔터테인먼트, NE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