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LINE, 전도연

전도연: 시간이 갈수록 점점 내 일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나는 나고 배우는 배우야!’라고 분리해서 생각했는데, 왜 그랬나 싶어요. 배우 전도연도 결국은 ‘나’인 건데. – 전도연, ‘텐아시아’와의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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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틴잡지: 수줍음이 많아 남들 앞에 나서길 즐기지 않았던 전도연에게 배우란 말 그대로 네모난 상자 속에 나오는 ‘다른 세계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시작한 하이틴잡지 모델 일에 재미를 붙인 전도연은 CF를 통해 조금씩 카메라 앞에 서는 재미에 익숙해 졌다고. 하지만 배우로서 미래를 계획한다거나 뭔가를 이루겠다는 욕심은 없는, 그냥 호기심을 느끼는 수준이었다. 서울예대 방송연예과에 들어간 것 역시 ‘친구 따라 강남 간’ 격으로 배우에 큰 뜻을 둔 친구를 떨어지고, ‘설렁설렁’ 면접을 본 전도연만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졸업 후 방송국 공채에 떨어졌을 때에도 “꿈이 배우가 아니었으니 시험에 떨어졌다고 좌절하진 않았다”는 전도연은 CF에서 그녀를 눈여겨 본 최윤석 PD에 의해 TV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 합류한다. 한마디로 스스로의 노력으로 배우가 됐다기보다는 운명이 그녀를 배우의 길로 이끈 셈.

박근형: 전도연의 연기력 향상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친 배우. 드라마를 시작한 초반, 전도연은 “출근하듯 나가서 일하고 정시 땡치면 퇴근”하는 직장인의 마인드로 연기를 대했다. 연기에 대한 큰 뜻이 없었을 때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그런 그녀의 숨어있는 승부욕에 불을 붙인 이가 박근형이다. 일일 드라마 ‘사랑할때까지’에서 전도연의 아버지로 출연했던 박근형은 그녀의 연기를 보고 “네가 무슨 배우냐 앵무새지!”라며 심하게 꾸짖었고, 자존심 강한 전도연은 뛰쳐나가 울기도 했다고. 그때 전도연은 처음으로 부모님이 녹화해놓은 비디오를 보며 자신의 연기를 모니터 했다. 이후 박근형으로부터 “연기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으며 연기의 맛을 알아갔고,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야망도 품는다.

심재명: 전도연을 ‘접속’으로 이끈 영화제작사 명필름 대표. 공채시험에 탈락한 배우가 떡 하니 인기드라마로 데뷔하고, ‘종합병원’ ‘사랑의 향기’ ‘사랑은 블루’ 등에 연이어 출연하자 “실력 대신 몸으로 승부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당대 최고의 톱스타 한석규가 출연하는 ‘접속’의 여주인공으로 물망에 오르면서 소문은 날개를 달기도 했다. 한석규조차 전도연의 캐스팅에 우려를 표명할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 하지만 심재명 대표는 “반바지 차림에 민낯으로 오디션을 보러 온” 전도연에게 호감을 느꼈고 “신선한 느낌이 ‘접속’과 잘 어울린다는 판단”으로 전도연을 과감하게 영화에 기용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해 겨울 전국의 거리는 ‘접속’의 OST ‘A Lover’s Concerto’로 물들었고, ‘낙하산’으로 평가되던 전도연은 각종 영화제 신인여우상을 거머쥐며 재발견된다.

심은하: 전도연과 함께 한때 투톱으로 불린 여배우.(고소영까지 하면 세 사람은 ‘트로이카’로 불렸다.) ‘접속’을 통해 스크린에 안착한 전도연은 이후 ‘약속’을 히트시키며 흥행성을 검증받고, ‘내 마음의 풍금’과 ‘해피엔드’로 연기력도 인정받는다. 당시 전도연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던 배우가 바로 심은하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 이어 ‘미술관 옆 동물원’을 내놓은 심은하는 드라마 ‘청춘의 덫’으로 절정의 매력을 과시하는 중이었다. 데뷔가 비슷하고 나이도 5개월 밖에 차이나지 않는 두 여배우는 ‘경쟁 부추기기’를 좋아하는 언론에게 훌륭한 비교대상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 심은하는 은퇴를 함으로써 전설적인 여배우로 남았고 전도연은 ‘칸의 여왕’ 자리에 오르며 더 큰 전설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밀양: 전도연에게 ‘칸의 여왕’ 이라는 수식어를 안긴 작품. 어느 순간부터 전도연을 가리켜 “연기 잘한다”고 운운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졌다. 전도연 스스로도 “내가 배우로 뭘 더 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비참”해질 때도 있었다고. 그런 전도연에게 ‘밀양’은 정체돼 있는 듯한 자신의 앞길을 열어주는 빛이었다. 남편을 잃고 밀양에 내려와 살다가 마지막 남은 희망인 아들마저 잃고 흔들리는 여자 신애. 이창동과 송강호라는 이름만 보고 시나리오도 없는 상태에서 출연을 결정한 영화에서, 전도연은 신애로 살고 신애로 아파하고 신애로 울며 무섭게 캐릭터에 몰입했다. 보경사 심보경 대표의 말처럼 “더 이상 꺼낼 카드가 없을 거라고 봤는데 아직도 보여 줄게 많구나”라는 놀라움을 안기는 괴물 배우의 탄생.

강시규: 전도연의 남편. 데뷔 때부터 “제 꿈은 현모양처에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온 그녀가 만난 지 100여일 만에 평생의 배필로 맞은 사람. 이유 있는 노출에 용기 있는 결단력을 보여 온 전도연이지만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입장에서, 은밀한 유혹에 이끌리는 ‘하녀’의 은이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전도연이 출연을 망설일 때 남편 강시규는 “배우 전도연이 결혼 후에 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덕분에 전도연은 결혼 후에도 온전히 배우 전도연일 수 있었다.

산드라 블록: ‘그래비티’의 여주인공. 전도연은 ‘그래비티’를 보고 무색무취의 여배우로 여겼던 산드라 블록에게 호감을 느꼈다고. 산드라 블록이 연기한 스톤 박사는 전도연이 처음으로 ‘저 캐릭터 한 번 연기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 배역이기도 하다. 전도연은 많은 인터뷰에서 “다작을 하기엔 흥미로운 여자 캐릭터가 너무 부족한” 현실에 대해서 아쉬움을 토로해 왔다. 실제로 ‘카운트다운’ 이후 2년의 공백을 가진 것은 남자 배우 위주로 돌아가는 충무로의 현실 때문이었다. ‘칸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굴레로 작용하기도 했다.  ‘수상으로 인해 더 다양한 작품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와 달리, 들어오는 작품의 편수가 줄고 장르가 제한됐다. 이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전도연은 “배우가 할 수 있는 노력이라는 게 기다렸다가 좋은 작품을 보여주는 것인데, 내가 기다려서 되는 게 아니라면 (연기를) 그냥 그만둘 듯하다. 씁쓸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타협점을 찾고 싶진 않다”고 말한 바 있다. 탁월한 연기력을 갖춘 의욕 넘치는 여배우를 방치하는 건, 충무로의 직무유기가 아닐지.

장미정: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전도연이 연기한 송정연의 실제 인물. 남자배우들의 리그인 충무로 현실에서 ‘집으로 가는 길’은 여배우 전도연에겐 굉장히 고마운 작품이었다. “전도연 외에 어떤 배우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방은진 감독의 말처럼 전도연이 아니었다면 빛나지 않았을 작품이기도 하다.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든든히 버텨주고 있으니 별것 아닌 씬도 괜히 꽉 차 보인다. ‘밀양’에 이어 절박한 상황에 처한 엄마로 분한 전도연의 이번에도 관객들의 몰입을 돕는다. 무능한 공권력으로 인해 하루하루 절망의 늪에 빠져가는 전도연의 고통은 스크린 밖으로 튀어 나와 관객의 절망으로 고스란히 치환된다. 전도연이라는 배우의 존재감.

박흥식: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인어 공주’에 이어 전도연이 ‘협녀: 칼의 기억’에서 호흡을 맞추는 감독. 전도연은 ‘집으로 가는 길’ 촬영이 끝나자마자 100억원 대의 대작영화 ‘협녀: 칼의 기억’을 위한 무술 연습에 들어갔다. 영화에서 전도연이 맡은 캐릭터는 고려 말 당대 최고의 여고수 설랑. 전도연의 전격 액션연기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하지만 박흥식 감독과 전도연의 이력에서 짐작할 수 있듯 ‘협녀: 칼의 기억’은 현란한 액션만을 내세운 무협영화가 아니다. 액션은 등장인물들의 감정을 실어 나르는 도구일 뿐, 영화의 중심에는 ‘대의’와 ‘희생’과 ‘정의’가 있다. 이 영화가 이안의 ‘와호장룡’과 비교되는 이유이기도. ‘협녀: 칼의 기억’은 전도연과 이병현의 ‘내 마음의 풍금’ 이후 14년 만의 재회라는 점에서도 묘한 긴장과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통해 세계 팬들에게 얼굴을 알린 이병헌과 그와는 다른 방법으로 해외시장에서 인정받은 전도연. 멜로가 아닌 장르에서 ‘남남투톱’이 아닌, ‘남녀투톱’을 만나는 게 얼마만인가!

Who is next
전도연과 함께 영화 ‘스캔들’에서 호흡을 맞춘 이미숙이 출연중인 드라마 ‘미스코리아’의 여주인공 이연희

글. 정시우 siwoorain@tenasia.co.kr
편집. 강소은 silvercow@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