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탐나는 배우, 서우로다

제주도에서 태어난 소녀가 물질을 싫어한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끔찍한 딜레마였을까. 그것도 1640년 조선 시대에. MBC <탐나는도다>의 열여섯 해녀 장버진(서우)은 그렇게 중차대한 인생의 벽에 부딪혔을 때 금발 파란 눈의 사나이 윌리엄(황찬빈)을 만난다. 한 순간 망설임도 없이 이 이방인을 바다에서 구해 낸 버진에게는 그로부터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21세기를 사는 또 다른 소녀는 무용가가 되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자랐지만 무용에서 행복을 찾지 못했다. 결국 9년 동안 해온 무용을 그만두고 우연히 연기에 발을 들였다. 버진이 물질을 싫어하는 만큼 물을 무서워했지만 하루 열두 시간씩의 수중 촬영을 견뎌냈다. 서우는 그렇게 <탐나는도다>의 버진이 됐다.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 너머를 내다보는 것은 그렇게 두렵지만 신나는 일이다.

이 대범한 아가씨는 대체 어디서 왔을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수영이에요. 물에 빠진 적이 있어서, 사실은 목욕도 싫어해요. 샤워만 해요.” 작은 체구, 조그만 얼굴에 커다란 눈과 도톰한 입술. 인형 같은 외모보다도 정작 시선을 뗄 수 없는 것은 어느 순간 툭툭 던져지는 예측불허의 말들 때문이다. 고막이나 내장을 다칠 수도 있는 수심 6m 아래에서의 험난한 수중 촬영을 떠올리면서도 “1회에서 윌리엄과 인공호흡 키스신이 있는데, 전 너무 떨려서 가그린을 종류별로 3개나 사놓고 칫솔도 큰 거 사서 계속 이 닦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촬영할 때는 민망한 것도 잊고 오직 살기 위해 숨 참느라 정신없었어요!”라며 까르르 웃어대는 서우에게서는 ‘신인’ 혹은 ‘여배우’다운 이미지 관리용 멘트를 듣기가 오히려 힘들 정도다.

그런데 늦둥이로 태어나 부모님께는 사랑만 받고 자랐고 나이 차가 많은 언니들의 영향을 받아 ‘아줌마’ 같은 성격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는, 제 나이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이 스물두 살 아가씨의 대범함은 아무래도 타고 난 모양이다. 데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본 오디션에서는 쟁쟁한 경력의 다른 멤버들의 자기소개 끝에 “저는 <아들> 하나 나왔구요, 대신 여기 계신 분들 중에 출연료가 제일 쌀 겁니다!” 라고 외쳐서 합격했다. MBC <김치치즈스마일>에서 김밥에 콜라를 뿌려 먹는 엉뚱한 소녀 역할이었다. “나중에 방송국을 지나가는데 어느 감독님이 ‘혹시 니가…걔니?’라고 물으시더라구요. 당황한 분들이 많으셨나 봐요.” 팔랑팔랑, 날아갈 것처럼 가볍게 이야기하는 서우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 위로 ‘옥메와까’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아이스크림 광고가, 전교 왕따 주제에 “애들이 저한테 열등감 느끼나봐욧!”이라며 뻗대던 영화 <미쓰 홍당무>의 중학생 서종희가 하나씩 겹쳐진다.

“‘어디 잘 하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지켜봐주세요”

지난 해 <미쓰 홍당무>로 크고 작은 신인상을 휩쓸고도 “처음 받을 때 든 생각은 ‘회사에서 힘썼나?’ 였어요”라며 웃는 서우지만 그만큼 <탐나는도다>에 대한 부담도 크다. “저에 대한 편견이,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하시는 건데요. 그건 편견이에요! 한 번 잘 했다고 다 잘 하는 게 아니거든요.” 이토록 진지한 얼굴로 자기가 ‘거품’이라고 설명하는 배우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하지만 그토록 싫었던 수중 촬영을 해 낸 뒤에는 역시 만만치 않았던 1년간의 사전 촬영 기간 동안 “그 때에 비하면 이건 아무 것도 아니”라며 버티고 대본 리딩 이틀 전 제주도 사투리 대사가 몽땅 수정되자 밤을 새 가며 코피가 터지도록 교습을 받았던 근성 역시 흔치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칭찬받으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 ‘어디 잘 하나 보자’라는 마음으로 지켜봐주세요”라는 서우의 도발적인 다짐에 슬쩍 미소를 띠게 된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꽃 같은, 여신 같은 여배우가 아니라 불꽃이 당겨진 시한폭탄 같은 히로인이 찾아온 것이다.

스타일리스트_하경미 / 헤어&메이크업_이경민포레(재선, 지선) / 의상협찬_레니본, 지아킴, 금은보화, 왓아이원트, 갤러리아어클락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