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우새’ 이성민 “무명시절 가스비 못 낼 정도로 생활고”…묵묵히 견뎌준 아내[종합]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미운 우리 새끼’ 이성민. /사진=SBS 방송 캡처

SBS ‘미운 우리 새끼’(이하 ‘미우새’)에서 이성민이 무명시절 힘들었던 생계에 대해 털어놓았다. 힘든 그에게 버팀목이 돼 준 건 아내였다.

26일 방송된 ‘미우새’에는 이성민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이성민은 “총각 때 혼자 살 때 양말이 많았다. 크리스마스나 이런 때 혼자 사니 주변에서 양말이나 속옷 선물을 많이 해줬다. 속옷은 이틀씩 입어도 되는데 양말은 이틀 못 신겠더라”고 밝혔다. 이어 “양말이 40~50켤레 됐다. 매일 쌓아야지 하다가 큰 박스에 넣어놨다. 한 번 빨면 한 달 넘게 안 빨아도 되는데 40켤레를 물에 넣어놓고 잊어버렸다. 그러고 며칠이 지났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빨아야지,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했다. 하루는 갔는데 양말이 없더라. 참다못한 주인집 할머니가 다 세탁했더라. 주인집 빨랫줄에 다 내 양말이 걸려있었다”고 말했다.

이성민은 영화 ‘공작’으로 칸영화제에 참석했던 일화를 들려줬다. 당시 아내와 동행했던 이성민은 “아내가 좋아했었다. 거기 레드카펫은 입장하려면 드레스코드가 있다. 남자는 턱시도, 여자는 드레스를 입어야 한다. 평소 치마를 잘 안 입는 아내가 옷 산다고 일주일을 다녔다. 가서 입고 들어가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정작 영화 볼 때는 잤다고 그러더라. 시차가 안 맞아서라고 했다”고 덧붙여 웃음을 자아냈다.

신동엽은 “아내 분이 고생할 때도 한결 같이 버팀목이 돼줘서 인지 아직까지도 집에 들어가면 죄인이 되는 것 같다고 인터뷰했더라”고 이성민에게 물었다. 이성민은 “왜 집에만 들어가면 내가 작아지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했다. 이어 “지난해 ‘백상예술대상’ 때다. TV로 방송이 되니 멋있게 하고 갔다”고 말했다. 당시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이성민은 “집에 들어가니 음식물 쓰레기 버리고 오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너무 당황했다. 내가 ‘백상에서 상 받고 온 사람’이라고 했더니 ‘그래서?’라고 했다. 쓰레기봉투를 들고나가면서 ‘내가 왜 이래야 되지’ 싶었다”며 웃었다.

김종국 어머니가 “상도 처음 받은 게 아니고 여러 번 받아서 아니겠나”라고 했다. 이에 이성민은 “맞다. 처음은 아니었다. 상도 여러 번 받으니 익숙해졌나 보다”라고 말했다. 서장훈이 “쓰레기 치우시냐”고 묻자 이성민은 “촬영가면서도 분리수거 들고 내려온다”고 답했다.

‘미운 우리 새끼’ 이성민. /사진=SBS 방송 캡처

결혼 21년 차인 이성민은 결혼할 당시에도 형편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이성민은 “그 때가 연극할 때인데 결혼할 형편이 안 됐다. 저희 집사람이 먼저 대시했다. 나는 결혼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저희 부부는 내가 서른 셋, 당시 집사람은 스물 아홉에 결혼했다. 저희 때는 약간 늦은 결혼 나이였다. 결혼을 생각할 것 같아 결혼할 형편은 안 된다, 3년 이상은 결혼 얘기 안 했으면 좋겠다고 미리 얘기했다. 그러자고 했는데 1년 지나니 ‘집에 인사 안 하냐’고 하더라”고 밝혔다. 이어 “저희 집사람이 연애할 때는 여리고 약하고 겁이 많은 여자인줄 알았는데 (결혼하고 보니) 굉장히 강직하고 저를 지금까지 끌고 온 카리스마 있는 여자더라”고 말했다.

처가에 인사를 하러 갔을 당시 이성민은 “돈도 없어서 사과 한 박스 사갔다”고 털어놨다. MC들이 장인장모님이 반대하진 않으셨느냐고 묻자 이성민은 “어떤 내색도 안 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사전에 저희 집사람을 통해 정보를 들었을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고 이런 비전을 갖고 있지만 사실 그게 가능할지 안할지는 모르는 거지 않나. 그걸 미리 말씀드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결혼하고 내가 우리 집사람을 힘들게 했다. 나 혼자 지방에서 서울로 공연하러 다니면서 6년을 떨어져 지냈다. 그 때 저희가 도시가스비를 낼 형편이 안 돼서 장인어른 카드를 집사람이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장인장모님은 내색 안 하셨다.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성민은 드라마 ‘미생’을 통해 주목 받게 됐을 때 장인장모님의 반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저희 장인장모님께서는 제가 어려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크게 바뀐 것이 없다. 장인께서는 저희 집에 신혼 때 집들이할 때 말고 한 번도 안 오셨다. 출가한 딸 집에 안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얼마 전에 집에 오셨는데 마음이 새로웠다. 아버님께 방을 보여드리는데 기분이 묘했다”고 말했다.

이성민은 무명시절 일주일을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일주일에 10만원으로 버텼던 일화를 털어놨다. 이성민은 “제가 처음 서울 와서 연극할 때 수입이 없었다. 아내의 아르바이트비가 수입의 전부였다”며 “주말 공연이 끝나면 일요일에 버스 타고 (대구로) 내려간다. 화요일에 올라올 때 아내가 생활비로 10만원을 줬다. 그게 일주일 생활비였다. 차비를 제하고 나면 5만원 정도 남았다. 담뱃값과 교통비를 하면 다였다”고 밝혔다. 이어 “(연습이 늦게 끝나) 가끔 택시를 타야할 상황이 생긴다. 새벽 2시 30분 정도 마치면 PC방에서 지내면서 택시비를 아꼈다. 대구 내려갈 때 KTX를 타면 비싸니 버스를 탔다. 새벽 1시 30분쯤 출발하는 막차를 타고 내리면 새벽이다. 그러면 집까지 걸었다. 지금도 가끔 걷는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운동 삼아 걷는다. 터미널에서 저희 집까지 2시간 정도 걸렸다. 가다 보면 첫차가 왔다. 택시를 타는 게 겁나니까 그랬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금도 이런 친구들이 많다. 지금도 밤잠을 못 자는 친구들이 있을 거고 지금도 돈 1000원이 없어서 끼니를 고민해야 하는 친구들이 있을 거다. 지금도 그런 게 진행 중인 친구들이 있을 거라 이런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미안할 때가 있다”며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후배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표현했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