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 밸리 vs 펜타포트│록키드들의 낮

수백 마리의 잠자리들이 낮게 비행을 한다. 그러나 여간해서는 누구도 그들과 충돌하지 않는다. 태양이 하늘 꼭대기에 오른 한 낮, 지산 밸리 리조트의 잔디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알록달록 돗자리를 깔고 자리에 앉거나, 혹은 누워있다. 빅 탑 스테이지에서는 피아와 크래쉬가 지축을 흔들어대고, 펜스 너머의 열혈 청춘들의 죽음을 각오한 헤드뱅잉에 몰입하고 있지만 잠시 귀를 막으면 잔디밭의 대부분은 피크닉을 나온 듯 평화로운 모습이다. 그러나 취향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을 불러 세운 이가 있었으니, 바로 교주님의 풍모와 함께 등장한 장기하다.

아쉽게도, 비가 내리질 않는다. 꾹꾹 힘주어 뭉친 듯한 먹구름이 빅탑 스테이지를 중심으로 송도 유원지에 낮게 드리워졌지만 수많은 인파의 발걸음이 피워 올리는 먼지 때문에 공기는 여간 건조한 게 아니다. 하지만 행사장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알록달록한 장화의 무리는 당당하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 빠지지 않고 비를 부르던 펜타포트라는 브랜드 안에서 이제 장화와 우의는 날씨와는 상관없는 펜타포트만의 문화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소용돌이치는 수트를 입고, 포마드를 바른 듯 머리를 빗어 넘기고 무대에 선 그는 “달이 차오른다아-” 한 소절만으로도 90%의 관객을 대동단결 시킨다. 이 기현상 앞에 어리둥절한 것은 더위 때문에 벌써 웃옷을 벗어 던진 금발의 외국인들뿐이다. 그런 점에서 데뷔 30주년을 넘긴 패티 스미스는 한수 위의 포스를 보여준다. 그녀가 기타줄을 끊어버리며 “People have the power!”를 외치자 국적을 불문하고 모든 사람들이 손을 머리위로 들어 올리며 뜨거운 함성을 토해낸다. 수만 명의 마음이 하나로 통하는 그 순간의 에너지는 이글거리는 태양보다도 뜨겁다.

비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빅탑 스테이지의 스피커가 제법 굵은 빗방울을 쏟아낸다. 문샤이너스다. “빗속을 나 홀로 정처 없이 걸었네”라는 가사와 보컬 차승우의 목소리를 감싼 록큰롤 기타 리프는 흠뻑은 아니더라도 제법 시원하게 가슴을 록 스피릿으로 적신다. 뒤를 이어 비바람을 몰고 온 건 트랜스픽션이다. ‘떼창’의 정석인 ‘라디오’와 ‘승리를 위하여’로 관객을 휘어잡자 연주에 실린 록킹한 에너지가 관객들에게 몰아친다. 비바람에 취해 목이 터져라 ‘떼창’을 하는 중에 얼굴에 빗방울의 촉촉함이 느껴진다. 어느새 공중에 날리는 생수통들이 차가운 물을 뿜어댄다. 기다렸다는 듯 중앙의 남자 관객들은 이 공연이 인생 마지막 공연인 듯한 결기와 치기로 서로의 몸에 슬램을 날린다. 질척한 진흙 구덩이건 먼지가 날리는 흙바닥이건 그렇다, 이것이 펜타포트다.

천막 그늘 덕분인지, 새벽에 내린 비로 물러진 흙바닥 때문인지 그린 스테이지 근처에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훨씬 드물다. 한국을 처음 찾은 스트레이트너는 점점 모여드는 관객들의 환호에 도취 된 듯 몸이 부서질 듯한 무대매너를 선보이고, 드러머의 군 입대로 오래간만에 무대에서 모인 몽구스는 ‘백문이 불여일견’으로 입소문이 자자한 특유의 파워로 모여든 관객들을 몬스터처럼 춤추게 만든다. 이 작은 오두막이 언제나 열광으로 가득 차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일등으로 기묘한 밴드 레이니선의 스산한 음색이 퍼져 나가자 객석은 뛰어오르는 대신 진지하게 눈을 반짝인다. 그러나 진지한 침묵도 잠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수줍은 무대매너에 “귀여워”를 남발하는 소녀들과 요조의 모습 앞에서 바리톤 메트로놈처럼 끊임없이 “요조! 요조!”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년들로 금세 그린스테이지는 북적거린다. 물론, 그 와중에 그린 스테이지 바깥의 작은 잔디밭에 드러누워 맥주 판매 부스에서 흘러나오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몸을 맡기고 낮잠을 즐기는 속 편한 관객들도 있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해가 지는 것, 그리고 슈퍼스타 헤드라이너들이 출동하는 축제의 클라이맥스일 것이다.

‘아악, 검정치마 시작했죠? 늦어서 못 볼 거 같아요. ㅠㅠ’ 1시 즈음 주말을 이용해 펜타포트에 오기로 했던 지인이 보낸 문자다. 정말 부지런해야만 볼 수 있는 12시 40분 무대의 앞이 관객으로 꽉 들어찬 건 역시 그 위에 선 게 검정치마이기 때문이다. “아직 텐트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깨우자”는 보컬 조휴일의 선동과 함께 격렬하진 않지만 신나기 그지없는 그들의 노래에 모두들 자신의 목소리를 더한다.

펜타포트 피플│곽대선(남), 이보현(여)
슬쩍 봐도 전혀 닮지 않은 그들은, 아니 정확히 말해 곽대선 씨는 자신들이 친남매라고 주장했지만 진실은 곧 드러나는 법이다. 웃음을 참지 못한 이보현 씨가 학교 선후배 사이라는 걸 밝히자 곽대선 씨도 순순히 남는 표가 있어 후배를 불러냈다는 사실을 밝혔다. 3년 연속으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 오고 있는 곽대선 씨는 “노브레인과 피터팬 콤플렉스가 두 개 스테이지에서 동시에 공연하자 사람들이 바글대던” 2008년 펜타포트의 첫날을 떠올리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오아시스의 유혹은 너무나 컸다. “작년 최고의 방한 뮤지션이 펜타포트에 왔던 카사비안이라면 올해는 오아시스죠. 오늘은 노브레인 때문에 펜타포트에 왔는데 26일엔 지산에 갈 생각이에요.” 자신의 취향을 고려해 두 개 페스티벌을 오가는 계획을 세우는 곽대선 씨와 달리 “노브레인이나 트랜스픽션처럼 이름이 알려진 밴드의 음악만 좀 들어왔던” 페스티벌 초보 이보현 씨는 “술도 마시며 밤에 재밌게 놀 생각”에 그저 설렌다. 곽대선 씨는 못된 것만 배웠다며 옆에서 핀잔을 주지만 페스티벌 선배로서 그가 이보현 씨에게 건넨 충고는 결국 “지금을 즐기라”는 것이다. 자신의 시간을 쪼개 두 개의 페스티벌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과정엔 취향과 헤드라이너의 네임밸류 등등 골치 아픈 계산이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페스티벌 현장에선 역시 지금을 즐기라는, 단 한 가지의 행동 방침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펜타포트건 지산 밸리건.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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