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김동률 콘서트, 장인이 빚어낸 하모니…’오래된 노래’의 새로움

[텐아시아=김하진 기자]

뚝심 있는 장인이 빚어낸 우아하고 세련된 작품을 보는 기분이었다. 무대는 마치 액자처럼 보였고, 노래마다 틀의 모양과 색깔, 배경까지 모두 달라지는 마법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젊은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가, 뉴욕의 어느 재즈 바와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지난달 22~25일, 28일~12월 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가수 김동률의 콘서트다. 지난해 12월 열린 콘서트 ‘답장’에 이어 1년 만에 돌아온 그는 8일간 2만 4000여 명의 관객들을 만났다. 김동률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오른 건 2012년 앙코르 콘서트 ‘감사’ 이후 약 6년 만이다.

세종문화회관의 대극장의 8회 공연은 대중음악 가수로는 쉽게 시도하기 힘든 일이다. 김동률은 귀한 기회를 얻은 만큼 심혈을 기울여 이번 공연을 준비했다. 무대에 오른 그는 “평소 하고 싶었던 걸 다 해봤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만 가능할지도 모르는 무대 연출을 위해 지난해부터 구상했다고 한다.

가수 김동률. / 제공=뮤직팜

◆ “철저하게 음악 위주로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지난달 28일, 이번 콘서트의 중간 지점에 선 김동률은 더 견고해진 느낌이었다. 피아노를 치며 부른 ‘그림자’와 가수 이소라에게 만들어준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로 공연의 막을 연 그는 이어 ‘노바디(Nobody)’ ‘편지’ ‘오래된 노래’ ‘여름의 끝자락’ ‘배려’ ‘연극’ ‘아이처럼’ ‘출발’ ‘트레인(Train)’ ‘농담’ ‘취중진담’ ‘잔향’ ‘고독한 항해’ 등 150분 동안 20여 곡을 열창했다.

김동률은 “선곡이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관객이 있을 수 있다”면서 “철저하게 음악 위주로 들려드리고 싶어서 그런 노래를 골랐고, 영상도 자제하고 아날로그 무대와 음악, 조명에 충실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는 김동률의 목소리로도 듣고 싶다는 팬들의 의견을 반영했고, 카니발이 부른 어두운 분위기의 ‘농담’과 김동률 하면 떠오르는 대표곡 ‘취중진담’은 빠르게 편곡해 완전히 새로운 곡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연주자들도 실력파들로 꾸렸다. 그룹 멜로망스의 정동환이 피아노를 맡았고, 임헌일과 김동민 등이 기타를 잡았다. 반도네온 연주자 고상지도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 지난 8월 발표한 싱글 ‘여름의 끝자락’으로 오랜만에 김동률과 협업한 피아니스트 김정원도 8일 내내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라 ‘여름의 끝자락’과 ‘청원’을 연주했다. 김정원은 공연의 인터미션 때 홀로 무대에서 멘델스존과 쇼팽, 슈만 등의 곡을 연주하며 관객들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음악 본연에 충실하고 싶었다”는 김동률의 말처럼 공연이 이어지는 내내 모든 건 ‘음악’ 위주였다. 중계 화면도 없애 오롯이 소리와 빛에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느낌 없이, 단조로운 건 아니었다. 마치 액자 속 그림을 하나씩 넘겨보듯, 무대는 노래의 분위기에 따라 확 바뀌었다. 김동률이 준비한 멋진 작품을 하나씩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가수 김동률. / 제공=뮤직팜

◆ “뉴욕에 다녀왔으니 이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실까요?”

노래마다 다른 색을 입혀 준비한 무대 연출 덕분에 시간과 공간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김동률은 “1960~70년대 뉴욕의 재즈 바(BAR)로 가보자”면서 ‘Nobody’와 ‘편지’를 연이어 불렀다. ‘Nobody’를 부를 땐 정동환과 피아노 협연으로 소리가 더욱 더 풍성해졌다. 한 편의 짧은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이번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보자”며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연주와 탱고 리듬이 가슴 뛰게 만드는 ‘배려’와 ‘연극’을 열창했다. 노래가 절정을 향할 때 음악과 빛도 정점을 찍어 관객들을 압도했다.

콘서트를 위해 거의 모든 곡들을 다시 편곡한 김동률은 연주자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솔로 연주 파트를 따로 만들었다. 김동률은 “내 공연 때 같이 데뷔해 15년째 호흡을 맞추는 연주자도 있고, 이번에 처음 합류한 연주자도 있다. 오랜 시간을 같이 해온 이들은 눈빛만 봐도 서로를 알고, 젊은 피들은 의욕이 넘치고 열정이 뜨거워서 이번 공연을 연습하는 내내 행복했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해준 피아니스트 김정원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덧붙였다.

묵직하게 편곡한 ‘아이처럼’에 이어 “내 곡 중 가장 신나는 곡”이라며 ‘출발’과 ‘Train’을 불렀다. ‘취중진담’은 중후한 느낌으로 확 달라졌다. 김동률은 “‘취중진담’은 스물세 살에 발표한 곡이다. 가수는 나이를 먹는데 노래는 나이를 안 먹어서 ‘어덜트(성인) 버전’으로 오래만에 편곡을 바꿔봤다”고 소개했다.

공연을 열 때마다 ‘빛과 소리의 향연’이라는 찬사를 이끌어내는 김동률은 이번에도 어느 때보다 완성도 높은 공연을 선보였다. 특히 이번 콘서트는 더욱 더 신선하고 특별했다. 선곡부터 새로웠다. “아끼는 곡과 신곡에 밀려 공연에서 누락된 노래들을 작정하고 셋리스트에 넣었다”고 했다. 여러 가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 음반처럼 공연도 아티스트의 색깔이 묻어나도록 했다.

김동률만의 색깔이 녹아있는 선곡과 군더더기를 빼고 음악에만 충실한 무대 연출이 공연 제목 ‘오래된 노래’와도 어우러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곡은 새롭게 편곡돼 다른 느낌을 풍기고, 조명과 음향은 최첨단 기술을 써서 저절로 관객을 빨려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26년째 음악을 하고 있지만 안주하지 않고 늘 자극받으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김동률의 장인 정신이 만든 ‘환상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공연이 막바지에 달하자 김동률은 “아직도 늘 무대는 떨리고 실수도 한다. 음악은 할수록 어렵고 만족할 수가 없어서 아쉽고 겸손해진다. 그게 원동력이 돼 욕심이 생기고 다음의 밑거름이 된다. 백발이 되어도 늘 어렵게 음악을 하겠다. 공연을 할 때 여러분들의 표정을 보고 감동을 받는다. 오늘도 관객들의 표정을 고스란히 가슴에 담겠다. 우리, 조만간 조금 더 멋지게 늙어서 만나자”고 말했다.

김하진 기자 hahahajin@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