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겨울왕국2’ 안나 만든 이현민 슈퍼바이저 “친언니에게서 영감 얻었죠”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2’에서 안나 캐릭터를 담당한 이현민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겨울왕국2’에서 낙관주의자 안나는 언제나 엘사에게 힘이 되는 존재다. 활발하고 살갑고 정의로운 안나의 모습은 관객들을 행복하게 한다. 이런 안나의 뒤에는 이현민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38)가 있다. 이 슈퍼바이저는 ‘겨울왕국2’에서 비주얼 개발 작업, CG(컴퓨터 그래픽) 캐릭터 애니메이션 등 안나 캐릭터를 총괄 담당했다.

이 슈퍼바이저는 자신이 애니메이터가 될 수 있었던 건 돌아가신 어머니의 응원과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영화에서 엘사와 안나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는 장면이 그에게는 더욱 뜻 깊었다고 했다.

이 슈퍼바이저는 디즈니에서 한국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슈퍼바이저라는 직책을 맡았다. 최근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이 슈퍼바이저를 만나 ‘겨울왕국2’와 안나 캐릭터부터 디즈니에 관한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10. 만화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
이현민: 어렸을 때부터 만화 보기, 만화 그리기, 만화책 읽기를 좋아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도 무척 좋아했다. 당시에는 주변에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인터넷도 활성화돼 있지 않았다. 커서 유명한 만화가가 돼서 인기를 얻으면 애니메이션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다.

10.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디즈니에서 여성 슈퍼바이저가 됐다. 디즈니에 들어가게 된 과정이 궁금하다.
이현민: 고등학교 때도 이과여서 미술을 전공하게 될 줄 몰랐다. 부모님은, 특히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결국엔 하고 싶은 거 아니겠냐고 했다. 한국에서 수능을 보고 천문학 전공으로 대학교를 한 학기 다녔고, 미국의 웨슬리언대학교에 합격해 입학하고 전공을 미술로 바꿨다. 거기도 애니메이션과는 없었는데 당시에는 어디 가서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도 몰랐던 것 같다. 그곳에서 미술에 대해 가르쳐주고 나를 잘 돌봐주신 교수님을 만났다. 이후 칼아츠라는 대학원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선생님, 선배님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졸업할 때쯤 디즈니에서 인턴십을 시작하게 됐다.

10. 기자간담회에서 제니퍼 리 감독은 당신의 돌아가신 어머니 이야기에 감동 받았다고 했다. 어머니가 많은 응원을 해줬다고 했는데 어머니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현민: 영화의 끝부분쯤에 ‘쇼 유어셀프(Show Yourself)’ 노래가 나오는 시퀀스를 감독님들이 굉장히 고심하면서 만들었다. 안나·엘사 어머니의 힘과 영향력이 (그들에게) 얼마나 컸던가에 초점을 두고 싶어 했다. 시퀀스와 스토리보드가 완성되고 노래도 완성돼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스튜디오에서 제작진이 함께 봤는데 모두 울어서 눈물바다가 됐다. 감독님들과 앉아서 얘기하던 중 나의 이야기도 하게 됐고,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에서 만화 관련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어머니가 응원하고 지원해줬다는 얘기를 했다. 어머니는 내가 고3 때 위암 판정을 받았는데 수능을 보고 한국의 대학교에 특별전형으로 붙는 것까지 보시고 그 해 12월에 돌아가셨다. 영화에서 엘사와 안나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각성하게 될 때 (둘에게는 이미) 부모님이 안 계신다. 하지만 자매는 간접적으로라도 어머니를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영화 속 그 장면이 나한테는 뜻 깊었다.

10. 애니메이션 슈퍼바이저라는 직업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진다. 안나 캐릭터를 담당했다고 하는데 어떤 일을 하는 건지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이현민: 디즈니의 작업은 여러 명의 협업으로 이뤄진다. 캐릭터 디자인을 하는 분, 의상 디자인을 하는 분, 목소리 연기를 하는 배우들 등이 있다. 나는 캐릭터가 어떤 몸짓을 할 때 그것이 그 캐릭터의 성격에 맞는지를 심층적으로 연구해서 기본 지침 같은 걸 만든다. 애니메이터가 80~90명 정도 되는데 그들이 안나 애니메이션을 작업할 때 나와 같이 한다. 나는 여러 사람이 한 작업을 한 사람이 한 것처럼 통일성을 부여해주기도 한다. 수정할 부분에 대해 (애니메이터들에게) 덧그림을 그려서 보여주기도 한다. 안나라는 캐릭터를 애니메이터들이 잘 표현할 수 있도록 위아래로 서포트해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영화 ‘겨울왕국2’의 안나 캐릭터 포스터.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0. 이번 영화에서 안나 캐릭터를 표현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이현민: 안나는 왈가닥이며 밝고 씩씩한 이미지가 있다. 그런 면을 잊지 않으면서도 두려움을 알게 되고 내면의 힘을 깨닫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1편에서 안나는 외롭지만 혼자 씩씩하게 자라왔다. 잃을 게 없던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엘사가 위험해졌을 때는 겁 없이 용감하게 뛰어들었다. 1편이 끝날 때 안나는 평생 소원하던 모든 걸 가지게 됐다. 사랑하는 가족인 엘사를 비롯해 올라프와 스벤 등 새 친구, 사랑하는 남자친구 크리스토퍼, 그리고 아렌델 왕국까지. 이젠 잃을 게 많아졌다. 2편에서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걱정하는 안나, 소중한 것들이 사라졌을 때 내면의 힘을 믿고 스스로 일어나는 안나 등을 보여주려 했다.

10. 다른 캐릭터들보다 특히 안나에 대한 애정이 클 것 같은데 안나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이현민: 무엇보다 솔직한 게 매력인 것 같다. 가족, 주변 사람들과 아렌델 왕국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한다. 그런 면은 내가 본받고 싶은 점이고 좋아하는 면이다.

10. 캐릭터 작업을 할 때 어디서 영감을 얻나?
이현민: 애니메이터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자기 내면과 주변 지인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최대한 사실적으로 와 닿는 캐릭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나도 언니가 있는데 언니의 활달하고 밝은 모습에서 (안나 캐릭터의) 영감을 받았다. 어떤 분들은 나의 발랄한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따라했다고 한다. 나도 다른 애니메이터들에게 영감을 받기도 한다. 애니메이션이라는 건 결국 생명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애니메이터들은 주변의 사람들, 생명, 그리고 그것들의 성격을 유심히 관찰하고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캐릭터와 맞는 부분이 있으면 그 때 그 사람, 그 장면들을 끌어내 반영한다. 애니메이터들이 관찰력이 좋아서 다른 사람 흉내를 잘 내는 분들도 많다.

영화 ‘겨울왕국2’ 스틸.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0. 디즈니라는 회사만이 가진 특징이 있다면?
이현민: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디즈니는 꿈의 직장이다. 나를 포함해 디즈니에 계신 분들은 디즈니라는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들어야 하고 디즈니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이 있다. 그 만큼 달성해야 할 목표가 높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들 애정을 갖고 열심히 하고 나도 신나서 작업한다. 디즈니는 지금 잠깐 재밌는 이야기보다는 몇십 년 후에 봐도 재밌을 것 같은, 한결같은 작품을 만들고자 한다. 내가 지금 좀 힘들더라도 최선을 다해 만들었을 때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 받는 작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동기 부여가 된다.

10. ‘겨울왕국’ 시리즈가 용기 있는 자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은 더 높게 평가 받는 대목이다. 앞선 디즈니 시리즈의 전형적인 공주 모습을 탈피하기도 했고. 엘사는 모험에서 ‘레깅스 패션’을 선보이기도 한다. 여성의 권리 신장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작품을 만들 때 이러한 여러 사회 이슈를 반영하나?
이현민: 사회적 분위기도 중요하지만 디즈니는 무엇보다 폭넓게 이끌어낼 수 있는 공감대, 몇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덕목들에 집중해서 만든다. 시대에 따라 반영하는 부분들이 달라질 수도 있지만 결국 사람들이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한다는 가치가 바탕에 깔려있다. 엘사와 안나도 자신이 왕이나 공주라는 점에 매이지 않고 자신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에 따라 움직이고 살아간다.

10. 칼아츠에 입학할 때만 해도 여성, 아시아인이 애니메이션 업계에 많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동안 변화가 있었나?
이현민: 칼아츠를 졸업한지 12년 됐는데 지금은 이전보다 애니메이션과에 남녀학생 비율이 균등해졌고 어떤 때는 여학생이 더 많을 때도 있다고 한다. 요즘에는 유튜브 등으로 독학하는 학생들도 많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배움의 기회가 늘어났으니 앞으로 점점 더 다양한 사람들이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하게 될 것이다. 시각이 다양해질수록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도 더 늘어날 것 같다.

10. 한국에서 ‘겨울왕국’은 1000만을 돌파한 첫 애니메이션 영화다.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흥행하는 영화를 보면서 감격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다면?
이현민: 어떤 순간이라기보다 안나, 엘사, 올라프 등 캐릭터들을 특히 아이들이 진짜로 존재한다고 믿고 그들을 가족, 친구처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볼 때 감격스럽다. 우리는 캐릭터들이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온전히 그들 스스로 존재한다고 인식될 때, 그러면서 우리의 존재가 보이지 않을수록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