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스틸러의 발견, ‘비밀’ 황석정 ‘한예종 대모’의 신화 (인터뷰)

4직접 대면한 배우 황석정은 본연이 뿜어내는 강렬한 기운과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잡아줄 것을 주문하자 쑥스러워하는 소녀의 모습이 공존하는 이였다.

부산여고 재학시절 서울대 국악과를 가기 위해 야자시간에 몰래 빠져나와 무덤가에서 피리를 불던 담대한 소녀였던 그녀는 극단에서 포스터를 붙이던 시절 만나게 된 선배 배우 설경구가 “너는 연기해야 한다”고 한 말을 무심히 주어삼키지 못하고 가슴 한 구석에 남겨둔 섬세한 사람이기도 하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했지만 유난히 불타는 창작욕구는 그녀를 음악인으로만 머물게 하지 않았고, 장고 끝에 마음을 먹고 다시 연기를 배우기 위해 한예종에 들어간다. 늦게 입학한 탓에 나이 어린 동기생들로부터 “왕언니” 소리를 들었던 그녀가 아래 인터뷰에서 소개한 ‘김밥공장’ 일화는 아침드라마와 시트콤을 버무린 장르에서나 나올 법한 것이다. 동기들로부터 “연기 완전 잘하던 누님” 소리를 들었던 그는 지금도 한예종에서 대모로 불리고 있다.

자, 황석정의 신화를 쭉 읊어보았지만 아직도 그녀를 모른다는 당신에게 한 가지 결정적 힌트를 더 드리겠다. 얼마 전 종영한 KBS2 드라마 ‘비밀’에서 콧소리를 내던 산드라황.

몇 해 전부터인가 ‘신 스틸러'(Scene Stealer, 직역하면 장면을 훔치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훌륭한 연기력이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해서 주연 못지 않은 주목을 받은 조연을 뜻한다)라는 말이 유행처럼 매체를 통해 번져나가 때로는 단어 본연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지만, 이 지독한 비극의 드라마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놓고 웃을 수 있게 해준 산드라황이 등장하던 순간 ‘신 스틸러’라는 단어 고유의 의미가 가슴에 ‘팍’ 와닿았다.

Q. 인터넷에서 발견한 황석정이라는 사람의 신화같은 이야기가 있더라(웃음). 부산여고 시절 밤마다 피리를 불렀고, 결국 서울대 국악과에 합격하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황석정 : 아니, 그런 이야기는 대체 누가 하고 다니는 것인지(웃음). 내가 다니던 부산여고는 인문계 학교였고 예체능을 하는 친구가 없으니 연습을 할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근처 무덤가에서 피리를 불어야 했다.

Q. 인문계를 다니던 평범한 소녀가 피리를 불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과정도 꽤 드라마틱할 것 같은데.
황석정 : 집안 사람들이 다 음악을 했다. 원래는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했는데 지나치게 음에 집착하자 당시 선생님이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지금은 좋은 선생님들도 많아 그것을 하나의 재능으로 간주해 발전시키려 하겠지만, 당시만 해도 이상하다는 시선을 받아야 했다. 결국은 동생이 피아노를 치게 됐고,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국악연주회를 보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홀렸었고 수소문 끝에 내 형편 상 만날 수 있었던 선생님이 피리 선생님이었던터라 피리를 부르게 됐다.

Q. 원래부터 평범한 소녀는 아니었던 것 같다. 또 음악을 하는 집안이었다면, 가족모임에 연주회를 한다거나 하는 다복한 가정의 풍경이 떠오른다. 실제는 어떠했나.
황석정 : (부모님이) 음악을 하셨지만, 음악인으로서의 꿈은 다 펼치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TBC 악단의 트럼본 연주자였고 쇼 무대나 쇼 프로그램, 카바레 등 악단이 필요한 무대에 섰고, 어머니는 음악교사 출신이었지만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앞서 인민군 출신의 아버지와 서울 출신 어머니는 6.25 시절 부산에서 만났다고 하신다. 한반도 비극의 역사를 온 몸으로 맞은 두 분이 이룬 가족은 태생 자체가 비극이었다.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은 행복하게 자란 사람들이 어우러졌을 때 빚게 되는 안정감에서 오는 것인데 두 분 모두 결핍돼있다보니 슬픔과 한이 많았다.

Q.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자식들에게 음악을 시킨다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황석정 :  어머니는 그 시절 서울대 성악과를 들어가신 분이다. 졸업은 못하셨다. 그 한이 있으셨다. 아버지는 또 암스트롱 내한 당시 구덕운동장에서 노래를 부르신 분이다. 음악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결국 자식에게 자연스레 전가된 것 같다.  본인이 미처 이뤄내지 못한 꿈을 자식이 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는데, 자식 입장에서는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었고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했다. 폭압으로 느껴진 적도 있고. 그러나 등록금도 내지 못했던 집안에 피아노는 있었다. 다만, 기억 속에 엄마는 회초리를 들고 피아노를 치는 내 옆에 서계셨지(웃음). 행복하게 음악을 한 것은 아니었다.

Q. 그러나 반항하지 않고 결국 음악을 전공하게 된 것을 보면, 음악적 환경이 자연스레 정체성에 영향을 미쳤었나 보다.
황석정 : 음악에 대한 열정은 분명 내 안에도 있었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있었던 것인지, 오빠는 부산대에서 음악이론을 전공했고 동생도 중앙대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게 됐다. (Q. 형제들은 지금 다 무엇을 하고 사나?) 다 함께 산다. 오빠는 음악이론을 전공했지만 결국은 은행원이 됐다. 하지만 또 결국 그만두고 부산에 있던 동생까지도 다 서울로 와서 함께 연희동에서 살고 있다. 밥집도 되고 카페도 되고 술집도 되는 가게를 하나 하고 있는데, 예술하시는 분들이 자주 오는 그런 곳이다.

Q. 그런데 어느 날 연극을 하겠다, 배우를 해야겠다 했을 때 두 분의 반응은?
황석정 : 어머니의 반대가 극심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어머니의 고등학교 졸업앨범을 보니 그 시절 연극을 하셨더라(웃음). 아무튼 어머니는 내가 음악을 해 교수가 되길 바라셨고, 그렇게 좋은 직업의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는 것을 원하셨다. 하지만 배우는 그때만 해도 명예도 돈도 없는 직업이었으니 반대를 하셨을 수밖에.

'비밀'의 황석정

‘비밀’에서 산드라황을 연기한 배우 황석정

Q. 어쩌면 음악인으로서 탄탄대로였을 길을 버려두고 배우가 천직이다 믿고 뚜벅뚜벅 새로운 길로 걸어가게 된 계기는?
황석정 : ‘연기를 해야되겠다’라는 생각보다는 계속해서 되돌이 되는 삶, 그리고 무언가 고여있는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야 했다. 나의 성향은 책을 읽으면 장면이 떠오른다거나 자꾸만 무언가가 떠오르는 편인데, 음악 역시도 이런 성향에 부합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그 시절에는 영화감독을 해야하는 건가라는 생각도 하곤 했다. 그러다 무작정 연극을 보고는 ‘아, 저런 세계에 있어야 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무작정 찾아서 들어간 곳이 최형인 선생님이 계셨던 한양레퍼토리라는 극단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설경구 선배가 왜 그러셨는지 모르겠지만, ‘너는 연기를 해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에는 ‘제가요?’라고 되물었지만, 그렇게 극단 생활을 하면서 그 마음이 더 커졌던 것이다.

Q. 극단에 들어갔으니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는 방식으로 배우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제도교육(한예종 연극원)을 선택했다.
황석정 : 극단생활이라는 것이 쉽지가 않다. 나한테 할당되는 것은 포스터 붙이고 진행하는 것 정도였다. 그러다 덜컥 기회가 찾아와도 나는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어느 날 최형인 선생님이 독백을 시켰고 한양대 수업에 들어가 독백 발표를 한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에 갑자기 큰 역을 덜컥 맡기셨다. 그런데 무대 사용법 등 기본기를 몰랐던 것이다. 결국 공연 15일 전 ‘극단을 위해 이 역을 하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 스스로도 큰 상처를 입었다.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에 가게 됐다.

Q. 그런 제도교육은 어떤 도움을 주었나.
황석정 : 제도교육의 장점이라기 보다, 일단 그곳에는 좋은 선생님이 계신다. 날 인정해주고 격려해주는 선생님 말이다. 물론 ‘너는 안될거야’라며 굉장히 상처를 주시는 분들도 있다. 그런 격려와 상처 속에서 내가 어떻게든 하려고 자생하는 힘을 기르게 된다. 또 수많은 경쟁상대가 있고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계속해서 나를 돌아볼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작은 정말 힘들었다. 나는 남자같이 자라 여성스러운 것을 못한다. 무뚝뚝하고 말도 별로 없으며 표현방법도 모르는데, 여성스러운 여자까지도 표현해야했다. 괴로웠다. 내 자신을 벗어나야하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Q. 한예종 동기들 사이 대모로 불리우던데. 인터뷰 하기 전 동기인 장재용 장인엔터테인먼트 대표와 통화를 했더니 ‘우리 왕언니’라며 무척 반가워하시더라.
황석정 : 아무래도 동기들과는 나이차이가 있으니까 그랬던 것 같다. 나는 한예종이 들어가기 전 이미 대학을 한 번 다녔었으니까 다 지나온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이제 갓 시작하는 불꽃같은 상태였지. 걱정도 되고 예쁘기도 하고, 숙제하라고 야단도 치게 되고 그랬다. 또 다들 우리집에서 술 먹고 자고 그런 시간이었다. 늘 스무명이 와서 자고가서 이불을 다 덮고 잔 기억이 별로 없다. 쌀 20kg를 갖다놓아도 일주일이 안가더라니까(웃음).

Q. 그때 또 다른 동기들은 누가 있나.
황석정 :  배우 유선 씨도 있고, 개그맨 양희성도 있고 또 활동 중인 친구들도 있고 잠시 쉬는 친구들도 있다. 우리기수가 문제기수였는데, 나중에는 다들 열심히 하더라.

Q. 그런데 그 시절 경제활동은? 학교만 다니고 먹고 살수는 없지 않았을까 싶은데.
황석정 : 김밥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Q. 김밥공장?
황석정 : 지금에야 편의점이 많이 생겼지만 그때는 막 편의점에 생기던 시절이었는데 그곳으로 김밥을 납품하던 공장이었다. 하루에 몇백개씩을 말았고, 남은 김밥을 자취방에 가져가면 애들이 아기세처럼 떼거지로 달려들었다(웃음). 그런데 이 일이 참 막일이라, 내 나이 또래는 보통 2~3일을 못버티더라. 하지만 나는 너무 열심히 잘 하니까 나중에는 공장에서 스카우트하려고 했었다. 연극해야한다며 도망가긴 했지만(웃음).

Q. 김밥공장보다는 연극이 더 쉬웠나보다(웃음). 그렇다면 연극과 음악은 어떻게 다르던가.
황석정 : 깊이 들어가면 다 힘들지만, 음악은 홀로 외로이 싸워 이겨내는 희열이 있다. 차츰차츰 내 것이 되어가는 것을 느끼며, 완전히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이놈의 연기는 혼연일체가 되기가 너무나 힘들다. 사람들은 다 맛이 가서 연기하는 줄 아는데 굉장히 이성적인 상태에서 나온다. 완전히 그 배역에 녹아있는 나와 이성적인 내가 공존하고 있어야 한다. 또 타인과의 수많은 약속 안에서 가야한다. 굉장히 계산을 하면서 또 그렇지 않은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연기는 곧 자기 통제라는 생각도 든다.

'비밀'의 황석정

‘비밀’의 배우 황석정

Q. 후배들의 연기지도를 혹독하게 한다는 평가도 있더라. 참,  한예종에 출강도 나가시던데.
황석정 : 11년동안 강의를 했는데 잘렸다.(폭소) 그래, 아무래도 잘린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하다보니 꼭 강의 있는 날과 겹치고 말더라. 어느 해에는 유독 잦았는데 결국…그리고 연기는 될 때 까지 해야한다. 단내가 날 때까지 하고 또 해야한다. 될 때까지 시키니까 굉장히 감사한 것이다(웃음).

Q. 지금은 연극(황석정은 오는 27일부터 내달 8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이라는 연극무대에 오른다) 연습으로 분주하다. 그런데 최근 출연한 드라마 ‘비밀’이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황석정이라는 배우를 인지하기 시작한 대중도 꽤 있더라. 
황석정 : 연극에서는 화전민 역을 맡았다. 남성성, 폭력에 대한 고발과 여성성에 대한 숭고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비밀’의 산드라황과는 완전히 다른 인물을 연기한다. 그래서일까. 잘 못 알아보신다. 연습실이 서울역 근처인데, 평범하게 하고나가면 우리 배우들이 노숙자들과 다를 바 없다(폭소). 간혹 알아보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자꾸 의심한다(웃음).

Q. 드라마는 아주 작은 역인데도 불구하고 매체의 특성상 파급력이 크고, 연극은 큰 역할인데도 보는 이들이 얼마 없는 것이 또 현실이다. 또 연기적인 면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은 TV 연기가 갈증이 느껴질 것 같기도 하다. 장단이 있을 것 같다.
황석정 : 아무래도 연극과 방송은 보는 사람의 숫자 자체가 너무 다르다. 그러나 파급력이 중요한 세상이고, 꾸준히 TV와 영화를 할 생각이다. 물론 단 한 작품으로 갑자기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같이 나이든 배우는 특히나. 그래도 꾸준히 연기를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이고 하는 모든 작품이 잘 될수는 없을테고, 또 때때로는 칭찬을 들은 작품도 쉽사리 잊혀지고. 그러나 그 과정에서 쌓아온 것들이 좋은 작품과 만나면 큰 파급력을 발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여하튼 ‘비밀’에 출연한 것은 내게 감사한 일이었다. 본래는 4회까지만 나오는 것이었는데 후반부에도 나오게 됐다.

Q. 아, 4회까지만 나왔더라면 유정(황정음)이를 괴롭히기만 하고 끝났었겠다. 지성 씨와 광수도 못만나고(웃음).
황석정 : 참 이상한 게 4회를 다 찍고 집에 가는 순간, 배우들에게 ‘우리 또 만날 것 같다’고 그랬다. 결국 나중에 감독님(이응복 PD)이 7~8부부터 또 나와주셨으면 한다 연락이 오더라.

Q. 광수(최웅)와의 신이나, 이후에 빚어진 산드라라는 코믹한 캐릭터는 다 애드리브 연기라고 들었다.
황석정 : 원래는 산드라 황이라는 배역 자체가 없었으니까 대본상에 캐릭터가 정확하게 이렇다라고 나와있지 않았다. 물론 뼈대는 대본을 가지고 한 것이지만, 밤새 고민을 해 연구하고 현장에 가서 연기를 했다. 그러나 산드라가 탄생하기 까지는 주변 모든 이들의 너그러움이 필요했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감독님의 허락과 주변배우들의 엄청난 협조가 필요했다. 그런 신뢰 속에 광수와의 즐거운 신들도 만들어지는 것이다.

Q. 지금까지 걸어온 삶이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지금 어떤 마음으로 연기를 하며 또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황석정 : 살면서 연극을 하고 영화를 하고 드라마를 하면서 아버지 생각이 굉장히 많이 난다. 돌아가신지 3년이 됐는데, 아버지는 이북사람이라 친척이 없다. 또 자신의 출신을 숨겨야만 하는 시대를 살았다. 그 아픔이 어떤 것이었을까, 얼마나 힘드셨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찾아온다. 신기하게 내가 지금까지 작품 속에서 맡게 되는 역할도 탈북자라던가 간첩처럼 아버지를 생각하게 되는 역할이 많았다. 그러면서 점점 그분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러면서 나라는 사람 자체가 우리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가 하는 연기에도 그런 역사의 아픔, 고통이 담겨 누군가에게 전달된다면 내 인생은 의미가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거창한 답이 된 것 같은데, 삶의 사명이라는 것이 각자 다 있겠지만 나는 아마도 나를 완성하고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고, 그 안에는 부모님이 거쳐온 수많은 아픈 역사도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의 아픔을 들어주고 그것을 또 전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 너무 거창해졌다(웃음). 아니, 마이클 잭슨이 이래서 위대하다니까. ‘위 아더 월드’라니(폭소).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