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자매│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드라마

어떤 드라마에 마니아가 있고 또 어떤 드라마에 팬이 있다면 홍자매의 드라마에는 대중이 있다. 세 살 터울의 친자매, 그래서 통칭 ‘홍자매’로 불리는 홍정은-홍미란 작가는 2005년 KBS <쾌걸 춘향>으로 등장한 뒤 SBS <마이 걸>과 MBC <환상의 커플>에 이르는 동안 판타지와 패러디의 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연타석 시청률 홈런을 기록했다. 엉뚱하면서도 ‘막장’으로 흐르지 않는 상상력, 저마다 강렬한 개성을 지닌 캐릭터가 결합된 코믹 멜로가 이들의 주특기다. 장르의 공식을 최대한 가지고 놀면서도 만화 같은 캐릭터들에게 진실성을 불어넣으며 <마이 걸>의 주유린, <환상의 커플>의 나상실 등 전무후무한 여주인공들을 탄생시켰던 이들은 지난해 초 퓨전 사극 KBS <쾌도 홍길동>에서 컬트적 희비극의 교차를 보여주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가족과 함께 일을 하고, 지금도 방송이 끝나면 가족들의 냉정한 모니터를 듣는다는 홍자매답게 이들이 대본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남녀노소 누가 보아도 불편하지 않은 드라마”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들 드라마의 발랄한 감수성 밑바탕에는 가족의 중요성, 어른의 책임감, 진심과 노력에 대한 보상 등 지극히 전통적인 가치들이 촌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배치되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드라마를 쓰기 시작한 이래 거의 쉬지 않고 “24시간 2인 1조 분업 없는 대본 공장을 돌리며” 살았던 이들은 <쾌도 홍길동> 이후 모처럼 긴 휴식기를 가졌다. 그 사이 홍자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은 “드라마의 그 어떤 캐릭터도 다 뛰어넘어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남아”, 바로 홍정은 작가의 득남이다. “소지섭의 눈과 조인성의 입술과 장쯔스의 기럭지를 닮아달라고 드라마를 보며 태교를 했건만, 안면 윤곽이 뚜렷하지 않고 온몸이 튜브처럼 빵빵하기만 하지만! 아직은 생후 오 개월, 앞으로도 희망은 있다고 믿고 있다. 애들 얼굴은 열두 번도 더 변한다니까” 라고 설명한 뒤 “왠지 ‘10 코멘츠’를 쓰는 강명석 기자가 ‘유전자는 안 변하죠’라는 댓글을 달 것 같다”고 덧붙이는 자학 개그의 센스가 여전한 홍자매다. 어쨌든, 홍정은 작가의 태교에 적극 활용되었고 홍자매가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드라마로 고른 작품들은 다음과 같다.

MBC <세상 끝까지>
1998년 극본 정유경, 연출 김사현

“부모에게 버림받은 서희(김희선)가 고아원 원장 아들 세준(류시원)과 사랑에 빠지지만 세준의 친구 민혁(김호진)의 아이를 갖는 바람에 세준과 헤어지고 민혁과 살다 버림받은 뒤 백혈병에 걸려 죽는 슬픈 내용인데, 그보다는 현실에서 절대 만날 수 없는 감히 질투조차 할 수 없는 절대 극강의 미모를 바라볼 수 있어서 더욱 재밌었던 작품이다.” 참고로 홍정은 작가가 뽑은 <세상 끝까지>의 김희선이 더 예쁜지, 홍미란 작가가 뽑은 <청춘의 덫>의 심은하가 더 예쁜지만을 두고도 토론은 계속된다. 이 둘의 미모를 뛰어넘을 여배우가 나오려면…음, 두 분 다 딸을 낳으셨다는데 거기에 희망을 걸어 봐도 될까?

SBS <발리에서 생긴 일>
2004년 연출 최문석, 극본 이선미 김기호

“수많은 시청자들이 그랬듯 우리도 <발리에서 생긴 일>을 볼 때마다 정신줄을 놓고 극에 끌려 다녀야만 했다. 그리고 간신히 잡은 마지막 정신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베개를 쥐어 뜯어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특히 강인욱(소지섭)과 정재민(조인성)의 저장번호 1,2사이에서 격렬하게 갈등하며 몸부림쳤고 애절한 OST의 전설로 남은 바로 그 노래, “난 안 되겠니~~”가 흐르는 순간이면 “전 돼요! 돼요!!”를 외쳐대며 자지러졌다. 무엇보다도 재민과 인욱의 투 샷, 대한민국 드라마 사상 다시없을 그 아름다운 투 샷만으로도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데 충분했던 작품이다.”

타이완 <장난스런 키스>(惡作劇之吻) CTV
2005년

“솔직히, 한류 드라마의 외국 팬들이 한국까지 드라마 촬영장을 찾는 것을 살짝궁 오버라고 생각한 적도 있다. 허나 <장난스런 키스>의 잘생기면서도 똑똑하면서도 냉철하면서도 귀여우면서도 멋있는 주인공 장쯔스(정원창)를 본 후, 우리는 타이완 행 비행기 표를 알아보기 시작했고 심지어 타이완 유학생 사이트까지 뒤지고 다니며 아주 진지하게 드라마 촬영장소를 찾아가는 방법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결국 갑작스런 사정으로 현지 방문은 취소되었지만 드라마 한 편이 사람의 생활을 얼마나 뒤흔들 수 있는가를 나이 서른 중반 줄에 새삼스레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미남이시네요>도 유쾌하고 상큼발랄하게”

요즘 홍자매는 SBS <태양을 삼켜라> 후속으로 10월 방영 예정인 <미남이시네요>를 집필 중이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남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 중 한 명이 사실은 여자라면’ 이라는, 다분히 순정만화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이 작품의 주인공 태경 역에는 홍자매의 전작 <쾌도 홍길동>에서 무거운 운명을 짊어진 미청년 창휘 역을 연기했던 장근석이 캐스팅되었으며 여름 끝 무렵에는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다. “<미남이시네요> 역시 그저 바라보고만 있어도 좋은, 유쾌하고 상큼 발랄한, 예쁘고 젊은 드라마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쓰고 있다”는 홍자매의 각오는 언제나와 같다. 하지만 엄청난 물량공세도, 거창한 야심도 없이 ‘이야기의 힘’ 만으로 쌓아온 신용등급 1위의 ‘홍자매표 드라마’의 컴백은 이번에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글ㆍ사진. 최지은 (five@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