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블랙머니’ 이하늬 “1600만 관객·시청률 22%···선물 같은 한 해죠”

[텐아시아=박창기 기자]

영화 ‘블랙머니’에서 국제 통상 전문 변호사로, 대한은행의 법률 대리인 김나리 역을 연기한 배우 이하늬.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1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극한직업’과 최고시청률 22%를 기록한 SBS 드라마 ‘열혈사제’를 통해 대세 배우로 떠오른 이하늬가 전작들의 코믹한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변신을 예고했다. IMF 이후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한 후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떠난 론스타 사건을 극화한 영화 ‘블랙머니’에서다. 그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이면을 조명해온 정지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하늬는 극 중 국제 통상 전문 변호사인 대한은행의 법률 대리인 김나리로 분해 당차면서도 지적인 매력을 선보인다. 이번 영화를 통해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혹은 알면서도 잊고 있었던 사건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이하늬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0. 작품에 출연하게 된 계기는?
이하늬: 이번 작품에 출연하기 전부터 정지영 감독님을 존경했다. 소속사를 통해 조진웅 선배가 이 작품을 한다는 걸 들었다. 그러던 중 감독님이 나를 한 번 보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만나게 됐다. 감독님의 첫 인상은 되게 편안했다.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이다 보니 출연을 강요하거나 설교하지 않았다. 대본에 다 나와 있으니 한 번 보라고 했다. 왜 이렇게까지 정치와 연관된 이 영화를 하려고 하느냐고 감독님에게 물어봤다. 감독님은 이 영화를 하지 않으면 잠이 안 올 것 같다고 했다. 되게 강력한 한 마디였고, 함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출연하게 됐다.

10.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된 사건을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됐다. 부담스럽지 않았나?
이하늬: 부담은 없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영화로 재해석했다. 장면마다 재밌게 들어간 요소가 많았다. 내가 연기한 김나리는 영화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 캐릭터다. 실제 인물이라고 했다면, 연기하면서 고민이 많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허구로 만든 인물이라 자유롭게 연기했다.

10. 작품을 찍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이하늬: 내가 얼마나 무지했는지 깨달았다. 이번 작품을 통해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돼 정지영 감독님과 이정우 PD님에게 감사했다. 그저 작품의 일부가 돼서 관객들에게 사건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해서 함께 했다는 것에 감사하고 영광스럽다.

10. 극 중 경제 용어와 영어를 사용하는 장면이 많던데?
이하늬: 장면마다 경제 용어와 영어가 많아서 신경 쓰였다. 극 중 김나리는 경제 용어를 일상처럼 내뱉고, 미국 엘리트들과 일하기 때문에 영어도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하는 여자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에서 캐릭터가 무너지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외국인이 볼 때도 원어민인가 싶을 정도로 유창하게 해야 했기 때문에 자다가 툭 치면 영어 단어가 나올 정도로 노력했다.

10. 캐릭터를 연기할 때 중점을 둔 것은?
이하늬: 김나리의 설정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촬영하면서 김나리의 당차고 지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동작이나 대사가 많지 않아서 존재감으로 표현해야 했다. 그래서 안경을 쓰거나 세련된 옷을 입었고, 사람을 만날 때 하는 행동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표현했다.


이하늬는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이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게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도맡았다고 했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10. 상대역이었던 조진웅과의 호흡은?
이하늬: 조진웅 선배와 함께 연기하기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다. 언제쯤이면 조진웅 선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을까 싶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조진웅 선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나에게 많은 자극이 됐고, 조진웅 선배의 연기를 보면서 ‘역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10. 베테랑 배우들이 많이 출연했는데.
이하늬: 배우들의 개성이 빨주노초파남보처럼 제각각이고 인물 표현을 너무 잘했다. 이게 바로 정지영 감독님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모이기 힘든 배우들이 감독님의 부름으로 이렇게 합쳐지는 게 ‘블랙머니’가 가진 메시지에 동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경영 선배부터 강신일·조덕환 선배 등 많은 배우가 작품에 참여했다. 믿음이 가는 배우들이 장면마다 있어 극이 풍성해질 수 있었다.

10. 이전에 출연했던 작품들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차갑고 지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하늬: 예전에는 차갑고 이질적인 역할만 맡아서 고민이었던 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한다. 그때와 반대로 코믹한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재밌게 연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싶다. 이번 영화를 통해 오랜만에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을 하게 됐다. 당시 ‘극한직업’과 ‘열혈사제’를 끝내자마자 촬영에 들어갔다. 전작들의 유쾌한 캐릭터와 상반되는 이미지라서 호흡을 바꾸는 게 힘들었지만 재밌는 경험이었다.

10. 올 한해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열혈사제’의 인기, 부산국제영화제 사회자,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표창 수상까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하늬: 선물 같은 한 해다. 내가 배우로 살면서 영화로 1600만 명의 관객에, 드라마로 시청률 22%가 웬 말인가. 길을 걷다가 벼락 맞는 수준이다. 하루하루 내가 선택한 인생으로 행복을 누리면서 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얼마나 놀라운 행복인가. 이전에는 슬럼프가 찾아와서 힘든 시절도 있었다. 그걸 뚫고 지금까지 올 수 있게 돼서 그저 놀랍고, 감사하다.

10. 슬럼프가 찾아왔다고 했다. 어떻게 극복했나?
이하늬: 배우로 활동하면서 미스코리아 출신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대중과 싸우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데 대중이 그렇게 봐주지 않아 슬펐다. 누군가에게 ‘나 배우예요’라고 말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배우로 불리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값진 건 없는 것 같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면 대중이 언젠가 알아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면 선입견이나 불편하게 보는 시선들도 나아질 거라 믿는다.

이하늬는 작품에서 함께 호흡하고 싶은 배우로 김성규를 꼽았다. /사진제공=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10. 자기관리에 철저하다고 들었다.
이하늬: 배우로 활동하면서 가야금을 병행했다. 몸을 무리해서 사용하다 보니까 건강에 무리가 왔었다. 6개월 동안 작품을 찍고 나면 조금이라도 쉬어야 하는데, 독주회를 10시간 동안 진행하면서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 통증 때문에 잠도 못 자고 길거리에 주저앉기도 했다. 배우는 몸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건강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 지금은 허리가 좋아졌다. 건강을 위해 필라테스와 요가를 하면서 자격증도 땄다. 배우라는 직업은 몸이 자산이다. 몸부터 건강해야 촬영 현장에서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는데, 몸이 아파 버리면 정신적으로 좋을 수가 없다. 내 정신과 육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작품을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0. 정우성의 오래된 팬이라고?
이하늬: 정우성 선배만큼은 동료가 아니라 팬으로 남고 싶다. 그래서 만나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이번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식 사회자로 호흡을 맞췄다. 정우성 선배가 세심하게 배려해줘서 별 탈 없이 마무리했다. 정우성 선배도 내가 오래된 팬이라는 걸 알고 있다. 내가 ‘선배 팬이에요. 성덕(성공한 덕후)이에요’라고 말했다.

10. 흥행에 대한 부담감은 없나?
이하늬: 부담감보다도 배우로서 한 단계 도약하게 해준 영화다. 흥행보다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많이 공유했으면 좋겠다. 영화가 신중하게 제작되다 보니까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영화를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더 의미가 있으려면 대중이 많이 찾아보고 이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필요하다.

10. 앞으로의 계획은?
이하늬: ‘야금야금’이라는 가야금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앨범을 만들려고 했는데, 배우 생활을 바쁘게 하다 보니까 녹음을 못했다. 먼저 ‘야금야금’을 잘 마무리하고, ‘블랙머니’가 무사히 개봉해서 관객들을 만나면 한시름 놓을 거 같다.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서 메시지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영화가 경제에 관한 거라 어렵고 무겁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이다.

10.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남고 싶나?
이하늬: 어떤 배우로 남고 싶다고 말하기 힘들다. 그저 연기하는 것에 충분한 만족감을 느끼고 싶다. 촬영 현장에서 재밌게 연기하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좋은 배우, 신뢰 가는 배우’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박창기 기자 spear@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