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엔 스포츠 에이전트가 없다고?

Q 넌 혹시 스포츠 에이전트 같은 거 되보고 싶었던 적 없어?
A 응? 스포츠 에이전트? 글쎄? 그건 왜? 아니, 그것보다 어떻게 네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올 수 있는 거냐.

Q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나도 영화 <제리 맥과이어> 정돈 봤다고. 그리고 어제 시작한 <드림> 보니까 대충 어떤 직업인지 좀 알겠던데?
A 아, 드라마 보고 그러는 거였구나. 아유, 스포츠 에이전트는 아무나 하냐. 스카우트해야 하거나 현재 계약한 선수의 현재 능력치와 가능성을 냉정하게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고, 게다가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서도 밀고 당길 줄 알아야 되고. 내가 가진 지식과 말주변으로는 어림도 없어.

Q 그래? 스포츠를 좋아하니까 그 길로 나가면 어떨까 싶었는데. 드라마 보니까 돈도 엄청 잘 벌고 되게 멋진 독신 남성의 길을 걷잖아. 혼자 사는 집인데 엄청 넓고 좋더라.
A 그래, 빈 맥주 캔 굴러다니는 내 방이랑은 차원이 다르지. 하지만 드라마에 나오는 스포츠 에이전트의 모습이 마치 실제의 에이전트를 반영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해. 적어도 <드림>의 남제일(주진모) 본부장 같은 에이전트는 우리나라에 없어.

Q 아니, 나도 그렇게 잘생기고 멋진 남자일 거라 예상하는 건 아니라니까?
A 그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 에이전트라는 개념은 없어. 드라마에서처럼 구단과의 연봉 협상부터 이적까지 다 책임져주는 그런 대리인 제도가 우리나라에는 없단 말이지. 이런 식의 대리인이 인정되는 건 오직 해외진출을 조율할 때뿐이야. 그러니까 드라마에서 남제일이 국민타자 강기창(연정훈)의 모든 걸 관리하는 건 그냥 허구라고 보면 돼. 야구뿐 아니라 프로 농구 역시 대리인 제도를 인정하지 않아.

Q 그럼 우리나라에선 스포츠 에이전트라는 직업 자체를 찾을 수 없는 거야?
A 그런 건 아니야. 프로 축구의 경우에는 국제축구연맹의 규정에 따라 공인 에이전트를 뽑아. 하지만 실제 우리나라에서 축구 에이전트가 하는 짓을 보면 남제일처럼 협박하고 어르는 건 양반이야. 그나마 남제일은 일이라도 잘하지. 국내 프로축구 리그인 K-리그 대구 FC에서 뛰던 이근호 선수 같은 경우 자유계약 신분이 되면서 유럽에 있는 리그에 진출하려고 했다가 프랑스와 네덜란드, 영국을 떠돌면서 입단 테스트만 받으며 몇 달 동안 떠돌이 신세로 지내야 했어. 이쪽 팀과 계약이 성사됐다는 에이전트 말을 믿고 움직인 건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던 거지. 또 최근엔 안정환 선수가 과거에 에이전트에게 1억 5천만 원 사기를 당했다고 고소를 하는 일도 생겼고.

Q 드라마와는 많이 다르구나. 그래도 어차피 우리 범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격투기 드라마라며. 다른 종목이야 어찌 됐든 큰 상관없을 거 같네.
A 그건 네 생각이고. 사실 규약에도 없는 야구 에이전트 일을 하거나 한껏 멋을 부리면서 선수를 관리하는 건 설정의 문제일 뿐, 남제일이라는 캐릭터의 능력까지 엉터리가 되는 건 아니라고 봐. 그런데 정말 문제는 우리나라 격투기 시장을 평정하겠다는 스포츠 에이전트가 입식격투기와 종합격투기의 차이조차 모른다는 거지. 그건 능력의 문제거든.

Q 입식과 종합의 차이? 언젠가 들었던 거 같기도 한데 그게 어떤 차이가 있는 거야?
A 간단해. 입식격투기는 말 그대로 서서 싸우는 거야. 서서 주먹이나 발, 혹은 무릎으로 상대방을 가격하고 그러다 상대방이 쓰러지면 카운트를 세는 거지. 권투와 무에타이, K-1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그리고 종합 격투기는 상대방이 쓰러진 후에도 발로 차거나 깔고 앉아 때리거나 관절기를 쓸 수 있는 시합이야. 이제는 없어진 프라이드나 지금 추성훈이 진출한 UFC, 드라마 이름과도 같은 일본의 드림 같은 이벤트가 이런 종합격투기지.

Q 그래서 남제일이 그 차이를 모른다는 거야?
A 응. 드라마에서 보면 일본의 스모 챔피언 출신인 아케보노가 종합격투기에 진출했었다고 얘기하는데 실제로는 입식타격기인 K-1에 진출했었어. 자료 영상으로 나온 것도 밥 샙과 K-1 룰로 싸운 시합이었고.

Q 잠깐 헷갈렸나보지. 너도 가끔 오타 내잖아?
A 그…그건…그건 말이지… 잘못했습니다. 하지만 종합이 아닌 입식이라고 이해해줘도 남제일이 격투기 시장에 대해 하는 말은 우리나라 환경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나 할 수 있는 말이야. 군소 업체 다 잡아먹고 좋은 선수 다 확보해서 시장 독과점 만들자고? 물론 그 전략 자체는 나쁘지 않아. 프로레슬링 단체인 WWE가 현재의 위치에 이르고, UFC가 종합격투기의 메이저리그가 된 것 모두 그런 방식이었으니까. 그런데 한국에선 그게 의미가 없어.

Q 왜? 우리나라에선 격투기를 독점할 수 없는 거야?
A 아니, 그게 아니라 격투기를 독점해봤자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이야. 적자 사업이거든. 격투기의 인기? 물론 많지. 그런데 그 인기라는 게 집에 있는 TV에서 무료로 중계해줄 때 맥주 마시면서 즐기는 딱 그만큼의 인기거든. 말하자면 돈 내고 경기장에 가서 볼만큼의 인기는 아니란 말이지. 만약에 미국처럼 PPV로 결재해서 봐야 하는 거면 지금 1% 살짝 넘는 UFC 시청률은 반 토막 아니라 열 토막이 날 걸? 어제 레미 본야스키도 나왔지? K-1 최고 레벨의 스타야. 그런데 그런 본야스키와 본야스키 못지않은 스타인 피터 아츠, 레이 세포 같은 K-1 최고의 스타들이 참가했던 서울 그랑프리의 경우 결코 흑자가 나오진 않았어. 이 상황에서 남제일이 데려오라고 하는 선수들 데려온다고 흑자 격투기 이벤트가 가능할 거 같아? 어림도 없지. 드라마에서 어떤 직원이 5년 정도 천천히 인프라를 강화하자고 할 때 남제일이 완전 무시했지만 사실 한국처럼 저변이 전혀 없는 나라에서 한 번에 투자금 회수할 생각으로 격투기 대회를 만드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야.

Q 그럼 네가 봤을 때 남제일은 에이전트로서 꽝인 거야?
A 응, 내가 봤을 땐. 심지어 좋은 신인을 스카우트 할, 매의 눈조차 없는 거 같아.

Q 응? 드라마에선 신인 스카우트 하는 건 안 나왔는데?
A 자기 여자친구를 미녀로 분류하잖아. 이런 눈 가지고서 유망주를 참 잘도 분류하겠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