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준, 상경 후 10년…마침내 ‘응답하라 1994′(인터뷰)

손호준

‘응답하라 1994’에서 해태를 연기 중인 손호준

꼬불꼬불한 ‘송태섭 머리’가 아닌 멀끔한 손호준은 어딘지 어색해보였다. 번듯한 헤어스타일을 갖추고 나니 그의 잘생긴 마스크와 소처럼 큰 눈망울이 드러나 보인 것은 분명했다. “생각보다 훨씬 더 핸섬하군요!”라는 말이 절로 나왔을 정도이니까. 그러나 해태가 아닌 손호준의 모습을 보는 것은 괜히 서운하기도 했다.

지난해 1990년, 가까운 우리의 과거가 그토록 풍족했었음을 알게 해주었던 tvN ‘응답하라 1997’을 만든 신원호 PD-이우정 작가 콤비가 올해는 ‘응답하라 1994’로 돌아왔다. 전편의 성공에 힘입은 작품이었기에 어느 정도의 성공은 보장돼있었던 기대작이다. 군 제대를 하고 다시금 새로운 목표의식을 갖고 마음을 다잡았던 배우 손호준은 오디션을 통해 힘들었던 지난 10년 동안의 꿈을 이루게 해줄 해태와 만나게 됐다.

손호준은 드라마가 끝나고도 당분간 해태로 기억될 것이다. 데뷔작은 결코 아니었지만, 많은 대중에게 해태는 손호준이라는 배우의 아주 강렬한 첫인상이었다. 그러니 손호준을 말하기에 앞서 해태라는 사람을 먼저 말해보아야겠다. 해태는 아마도 수많은 여자 시청자들에게 내 가시권 안에 있는 편안한, 그러나 알고 보면 참 잘생긴 동기 같은 그런 존재, 떠올리면 행복했던 지난 젊은 날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는 그런 존재다. 더불어, 전라도가 고향이 아닌 이들에게는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희화화되기 마련이었던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도 충분히 사랑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런 존재였다는 것도 덧붙여야 하겠다.

그렇다면 배우 손호준은? 이런 매력적인 캐릭터의 수혜자 정도로만 평가하기에는 배우로서 갖춘 것들이 많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던 필견 영화 ‘바람’에서 그를 이미 목격했던 이들에게 ‘응답하라 1994’의 해태의 등장은 손뼉을 칠만큼 반가웠을 것이다. ‘응답하라 1994’의 대다수의 배우가 그러하지만, 손호준 역시 보는 이의 시선을 흡입하는 재능이 있다. 유려한 사투리는 그의 표정과 자연스러운 몸의 사용법과 같은 배우로서의 단련된 테크닉 탓에 날개를 달았다는 것, 결코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스타로서는 아주 중요한 것. 들여다보면 볼수록, 뜯어보면 볼수록 눈이 가는 ‘볼매’ 말이다. 독특한 헤어스타일과 사투리 탓에 처음 눈길을 보낼 때는 ‘비주얼’을 눈치 채기는 어려웠을지 모르나, 새삼 다시 바라보면 마스크도 꽤 잘 생겼다. ‘응답하라 1994’에서 비주얼로는 1등이라는 말도 솔솔 나오고 있을 만큼 말이다.

2003년 서울이라는 보다 넓은 땅에서 배우가 되고자 마음먹었던 스무 살의 광주 청년은 야심차게 상경을 한다. 목표로 뒀던 서울의 한 유명 극단에 들어가는 것은 실패했지만, 기회들은 여러 번 그를 찾아왔다. 물론 실패도 겪었다. 라면 한 봉지로 3일을 때울 만큼 가난하기도 했고 때로는 서러웠던 순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순간도 자신이 배우가 아닌 모습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런 손호준에게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줄 기회는 거짓말처럼 꼬박 10년 만에 찾아왔다. 2013년에서야 ‘응답’한 것이다.

손호준

‘응답하라 1994’에서 해태를 연기하는 손호준

Q. 많이 들었을 것 같은 뻔 한 질문이지만, 안 물어볼 수는 없다. 인기를 실감하고 있나.
손호준 : 현장에만 있고 밖에 돌아다닐 일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얼마 전에 마트에 장보러 갔을 때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았다.

Q. 외출을 할 때, 여전히 편하게 다니는 편인가 보다.
손호준 : 그렇다. 세수도 안하고 다닌다. 그런데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알아보시는 분들이 조금 계시더라. 특히 아버님, 어머님들이 많이 알아보시면서 바나나 우유를 하나 건네주셨다. 사진도 찍어달라고 하셨고.

Q. ‘인기의 상징’인 소녀떼를 목격한 적은 없나?
손호준 : 하하. 소녀떼까지는 아니었고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알아보기도 했고, 촬영장에도 그런 꼬맹이들이 기다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코 ‘소녀떼’라던가 ‘오빠부대’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사실 내가 아날로그적 인간이라, 인터넷을 잘 못한다. 유일하게 요즘 배우는 것이 트위터라 답장을 해주고는 있다. 재미있더라.

Q. 아날로그적 인간이라면, ‘응답하라 1994’의 정서와 통하는 부분이 많겠다. 해태와 본인도 많이 닮았나.
손호준 : 그렇다 비슷한 부분이 많다. 1994년에 실제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해태를 연기하기로 하면서 감독님(신원호 PD)이 해태에 대해 설명을 해줬다. ‘의리가 있어 친구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두루두루 잘 어울리고 또 그러면서 쿨한 면도 있고’ 그 정도였는데, 설명을 들으면서 들었던 생각이 실제 나와도 닮은 점이 많더라. 그래서 사실 연기를 함에 있어, 내가 갖고 있는 본연의 모습에 해태를 살짝 입혀놓으면  어렵지는 않겠다라고 생각했다.

Q. 아, 그런데 8회 방송에서 윤진(도희)이와는 완전히 가능성이 사라져버렸다. 둘이 커플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참 많았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해태와 닮았다고 해서 짚고 넘어가는 것인데(웃음), 윤진이 해태가 콘돔을 사는 것을 보고 완전 마니아로 몰아가지 않았나. 그 회를 본 어떤 네티즌은 ‘삼천포(김성균)는 멋있게 만들어놓고, 해태는 그냥 마니아로 남아버렸네요’라는 평을 남긴 것을 보고 빵 터졌었다.
손호준 : 아, 말도마라. 아쉽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않나. 윤진이는 이미 뺏겨 버렸는데. 그리고 실은 감독님께 ‘정우 형도 (유)연석이도 멋있고, 심지어 천포 형님까지도 멋있어 졌는데, 나만 마니아로 남은 것 아니냐’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

Q. 뭐, 어떻게 보면 윤진의 남편이 되지 않았으니 주인공 나정(고아라)의 남편에는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그런데 진짜 배우들도 누가 나정의 남편인지 모르는 건가.
손호준 : 그렇다. 감독님께 매일 여쭤본다. ‘대게 누가 남편이냐고!’ 그리고 또 칠봉이(유연석)는 이름 끝자가 준이고, 쓰레기(정우) 형은 김 씨고, 빙그레(바로)는 칠봉이의 사촌이라 항렬이 같고, 그렇게 이름에 대한 힌트가 다 나왔는데 나만 아직 꼭꼭 감춰져있지 않나. 그래서 한편으로는 반전을 기대한다! 예컨대, 군대를 갔다 와서 정신 차리고 온 그런 건 어떨까 상상도 해보고(웃음).

Q. ‘응답’ 팀에서 가장 친한 배우가 김성균이라고. 아무래도 룸메이트로 나와 자주 만나서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서로 호칭도 있나.
손호준 : 처음에는 천포형이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포블리(삼천포+러블리)형이라고 부른다. 그게 대세니까(웃음). 그리고 형님이 실제로 요정병에 걸렸다. 깜찍한 행동을 자주 하신다(웃음).

 

손호준

전라도 매력남 해태, 손호준


Q
. 김성균 씨가 77년생이라 올해 서른다섯인데 스무 살을 연기 중이다. 처음 캐스팅 소식을 듣고는 깜짝 놀랐었다. 동갑을 연기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인가.
손호준 : 그런데 나도 실제로는 서른이고, 차이를 크게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 역시 놀랐던 것은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인상 깊게 봤는데 거기에 나왔던 성균 형이 삼천포를 연기한다는 점이었다. 처음 회식하면서 과연 저 형에게 말을 놓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기는 했다. 그런데 연기를 워낙에 잘 하셔서 삼천포는 너무나 귀여운 스무 살처럼 보이지 않나.

Q. 꽤 유명해진 ‘돌이킬 수 없는 실수’ 장면은 정말로 애드리브였나.
손호준 : 원래는 지문만 나와 있었다. ‘각자의 지역 사투리로 싸운다’ 정도로. 그리고 작가님이 옆에 예시 문을 적어주시긴 했다. 흔히 나오는 지역 사투리, 예컨대 ‘창자를 뽑아다가’ 라던가’ ‘눈깔로 다마를 친다’ 뭐 이런 것들. 그러면서 감독님이 성균 형이랑 둘이 짜오라고 미리 말하긴 했었고, 형과 전화 통화하면서 짰었다. 그런데 막상 슛 들어가고 난 후, 전에 짰던 것은 하나도 안 나왔다. 내가 먼저 ‘돌이킬 수 없는 실수하지 마라’라고 했더니 형이 또 받아치시더라. 나중에 형에게 문자가 왔다. ‘영상까지 돌아다니면서 이슈가 되는 게 참 신기하고 뿌듯하지 않냐’라고. 정말 그랬다.

Q. 아! 이것도 궁금했다. ‘응답’ 배우들은 촬영하지 않을 때에는 ‘서울말’로 대화하나.
손호준 : 아니다. 서울말이 어색하다. 사투리 쓴다(웃음). 성균 형이 ‘해태↘, 술이나 한잔 하까↘’이러면 ‘갈까요 형님’ 하는 식.

Q. 배우에게는 내 애드리브를 탁탁 받아쳐주는 상대 배역이란 짜릿한 축복같은 존재 아닌가.
손호준 : 정말 그렇다. 형과 나는 이제 서로 잘 아니까 어떻게 반응할지까지 다 알고 잇다. 믿음이 있는 것이다.

Q. 알고보면 이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베드신까지 찍은 배우고(웃음).
손호준 : 아아~~ 그렇지~~ 재미있었다!

Q. 어쩌면 우정에 금이 가는 질문이 될 수도 있겠다. 당신을 제외하고 ‘응답’ 배우들 중 외모 서열 1위를 꼽아 달라.
손호준 : 아니, 날 제외할 필요 없다. 나는 1위가 아니다! 연석이도 있고 바로도 있지 않나. 또 실제로 보면 정우 형도 정말 매력적인 얼굴이다. 하지만 역시 외모 1순위는 포블리. 부동의 1위라고 하더라.

Q. 참, 영화 ‘바람’에 나왔던 배우들이 여럿 카메오로 출연했었다. 기분이 참 이상했을 것 같기도 한데.
손호준 : 의사로 나온 형은 봤는데, 소개팅 신에 나온 선배들은 못 만났다. 나와 날짜가 달라서. 아쉽다. 하지만 화면으로 봐도 어찌나 반갑던지. ‘바람’ 찍을 때는 항상 붙어다녔었다.

Q. 원래 고향도 전라도라고 들었는데, ‘바람’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원어민(?)처럼 하더라.
손호준 : ‘바람’의 전 배우들이 부산 사람이었기에 도움을 많이 받았고, 당시 매니저도 부산출신이었다. 또 영화 찍기 3개월 전부터 부산에 있었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부산 사람들과 이야기도 많이 했었다. (Q. 어학연수를 다닌 셈이네) 그렇다. 정말 어학연수였다.

Q. ‘바람’에서는 ‘응답’과는 다른 정상적인 헤어스타일을 하고 나와서 그런지  정말 다시금 손호준은 비주얼 배우구나 싶었다.
손호준 : 정말? 사실 그때 살을 무지하게 찌웠었다. 감독님이 80~90kg까지 나가기를 원해서 계속 먹어대면서 살을 찌웠는데 결국 그 정도까지는 못 찌웠고 74kg까지는 찌웠다. 그 영화가 정우 형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다룬 것인데, 실제 내가 연기했던 인물이 덩치도 키도 엄청 컸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위협적으로 보였으면 한다고 해서 주문을 했었다. 끝나고 나서 10kg를 감량하느라 꽤 고생했었다.

Q. ‘응답’에 ‘바람’ 대사도 몇몇 등장한다. 그때 대사나 이런 것들을 아직 기억하고 있나.
손호준 : 그럴 수밖에 없는데 리딩을 엄청나게 했었다. 너무 많이 해서 나중에는 대본 없이도 리딩이 가능할 정도였다. 심지어 다른 배역의 대사까지 다 기억하고 있을 정도. 지금도 거의 기억하고 있다. 단가까지도.

Q. 참, 포털사이트에 보면 앙드레김 패션쇼 모델을 한 경력도 있더라.
손호준 : 방송 일을 하기 전 우연한 기회에 앙드레김 선생님을 만나게 됐고, 그때 무대에 한 번 서달라고 하시더라. ‘너무 좋아요. 좋고 페이스 좋고'(손호준은 앙드레김 성대모사를 했다) 라고 하시면서 가봉 받으러 오라고 하셨다. 메인은 당연히 아니었지만, 여러 번 섰다. 하지만 나중에는 나를 기억 못하시더라(웃음). 그래도 선생님이 옷도 두 벌 선물해주셨다. 집에 아직도 있다. (Q. 평소에 입을 수 있는 의상인가?) 아…마…힘들 듯 하다.

Q. 처음 서울에 온 것은 언제인가. 또 그때 어디에서 살았나.
손호준 : 스무 살 때였다(2003년). 그때 함께 극단에 있던 친구와 신림동에 살았다. 지방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 곳을 구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강남과 최대한 가까운 곳’인데, 2호선으로 강남과 이어지고 또 당시만 해도 그 지역의 집값이 저렴했었다(웃음).

Q. 당신에게 지난 10년이라는 세월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손호준 : 고생을 많이 했다. 친구와 둘이 상경해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성인이 됐으니까 부모님께는 손을 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생계를 책임지면서 서울 극단에 들어가고 싶어 오디션을 알아보러 다니고 힘들고 배고프게 살았던 시간이 있었다. 참, 우리 드라마 에피소드에도 나오는데 삼천포가 지하철을 힘들게 타지 않나. 나도 처음에 그랬다. 700원짜리 노란색 표를 뽑아서 ‘아, 이 표 한 장이면 전철을 타고 어디든 가겠구나’ 했었는데, 어느 순간 기계가 표를 먹더라. 그곳 관리 아저씨께 ‘내 표 먹었어요’라고 말씀드리니, ‘시골에서 왔어요?’라고 하셨다(웃음).

Q. 힘들었던 시기에 기약 없는 배우의 꿈을 포기하고 싶었던 유혹은 없었나.
손호준 : 과거 광주의 극단에 있었을 때 극단 대표님이 ‘배우는 무수한 경험을 해봐야 한다. 무엇이든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담배 하나를 가지곡도 멋있게도 맛있게도 필 수 있는 그런 느낌을 다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지난 10년간 힘들게 살면서 별 경험을 다 해보았다. 라면 한 봉지로 3,4일을 먹기도 했었다. 국물을 남겨 쌀을 넣어 죽을 끓여먹었던 그런 것 말이다. 걷다가 떨어진 동전을 발견하며 좋아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경험이 내 연기에 큰 도움이 됐다.

Q. 힘들었음에도 꿈이 있어 심적으로는 여유로웠다는 말로도 들리는데.
손호준 : 에이~ 여유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 또 내가 잘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기에 다른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고등학생 때 처음 극단에 들어갔고, 상도 많이 받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축구를 했었기에 나는 운동도 해봤고 또 공부도 해봤지만 상을 받고 칭찬을 받고 인정받은 것은 연기가 처음이었다. 그래서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Q. 서울에 와서 극단 오디션에 떨어졌는데, 방송계와는 어떻게 연을 맺었나.
손호준 : 광주에서 친하게 지냈던 윤호(동방신기 유노윤호)가 아는 매니저를 소개시켜줬고 그분과 만나 방송 연기를 하게 됐다. 광주 극단에 친한 후배가 있었는데 그 친구와 윤호가 베스트였고 그렇게 만난 윤호와 한동안 항상 뭉쳐다녔다.

Q. 그 세 사람은 광주를 떠들썩하게 했던 지역 스타였을 것 같다.
손호준 : 윤호도 그렇지만 그 후배도 굉장히 잘 생기긴 했다. 하지만 우리 셋다 자주 밖으로 돌아다니는 성격은 아니었다.

Q. 어쩌면 흑역사일 것 같은 과거에 대해 물어보겠다. 타키온이라는 아이돌그룹으로 데뷔한 전력이 있지 않나. 당시의 기억 중 가장 오글거리는 것은 무엇인가(웃음).
손호준 : 전체가 다 오글거린다(웃음). 아이돌은 원래 다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데, 헤어 콘셉트를 정하기 전까지는 머리카락도 자르지 말라고 하더라. 한동안 단발을 하고 다녀야 했다. 앨범 재킷을 찍은 것도 지금 보면 너무 창피하고, 뮤직 비디오에서 예쁜 척 한 것도 오글거린다. 윤호나 주위 사람들은 아직도 그 영상을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다니면서 ‘형, 블링블링 했었어~’라고 놀리곤 한다(웃음).

Q. 심지어(?) 리더였지 않나.
손호준 : 별 의미 없었다. 나이가 제일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데뷔할 당시, 빅뱅, 카라, 소녀시대 등이 같이 데뷔했다. 싸움이 안됐다! 우리는 6개월 준비하고 나왔었는데 대적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분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수를 꿈꿨던 분들이지만, 나는 연기를 하고 싶었고 그 길이 좀 더 빨라진다는 설득으로 인한 결과였다. 견줄 수 없었다.

Q. 노래 파트는 뭘 담당했나.
손호준 : 아흑. 목소리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시작과 끝을 맡았다(웃음). 고음은 기존에 음악을 했던 친구들이 했었다.

Q. 음원을 사서 꼭 들어보겠다(웃음). 끝으로 여성팬에게 한 말씀?
손호준 : 나는 정말 XX 마니아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고(웃음). 해태를 많이 좋아해주시는데, 감사드린다. 더 매력적인 배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