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버티고’ 위태로운 천우희를 아름답게 담아내다

[텐아시아=노규민 기자]

영화 ‘버티고’ 천우희 스틸컷./ 사진제공=트리플픽쳐스

어두컴컴한 빈 사무실에서 두 남녀가 뜨겁게 키스를 나눈다. 계약직 디자이너 서영(천우희 분)과 개발팀 차장 진수(유태오 분)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사랑을 확인하던 두 남녀는 인기척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숨긴다. 순찰하던 회사 경비는 별다른 의심 없이 사무실 문을 닫고 유유히 사라진다.

진수는 뛰어난 업무 실적으로 회사 내에서 높은 신뢰를 얻고 있고, 이혼남인데도 훤칠한 키와 외모 때문에 사내 여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다. 서영은 그런 진수와 비밀 연애 중이다.

진수와의 관계는 늘 불안정하다. 어디 가서 떳떳하게 말도 못 한다. 그런데도 서영은 그 앞에서만큼은 웃는다. 괜히 장난도 쳐본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저 행복하다.

그와 떨어져 있을 때면 불안하다. 고층빌딩 안 사무실에 들어서면 이명과 현기증 증세가 나타난다. 재계약 시즌, 잘릴지도 모른다는 압박이 그를 짓누른다. 상사와 회사 동료들은 왠지 편치 않다. 재혼한 엄마는 새벽까지 전화로 히스테리를 부린다. 그리고 끝은 항상 ‘돈’ 이야기다. 평범한 생활을 꿈꾸던 30대 직장인 서영의 일상은 어느 순간부터 위태롭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명과 현기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았지만 크게 나아지지 않는다. 게다가 진수가 자신을 피하는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진수가 불미스러운 일로 갑자기 퇴사하게 된다. 서영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고, 그 사이 그를 지켜봐 왔던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난다. 고층 외벽을 청소하는 로프공 관우(정재광 분)다.

영화 ‘버티고’ 스틸컷./ 사진제공=트리플픽쳐스

‘버티고’는 고층빌딩 사무실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서영이 창밖의 로프공 관우와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감성 무비다. ‘한공주’ ‘곡성’ ‘우상’ 등에서 주로 강렬한 캐릭터를 연기해 온 천우희가 힘을 빼고 30대 여성 직장인으로 분해 짙은 감성 연기를 펼친다.

천우희는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서영 자체가 됐다. 눈빛부터 목소리, 걸음걸이까지 섬세하게 표현해 몰입도를 높였다. 감각적인 촬영 기법과 소리, 음악 등으로 위태롭기만 한 여성을 생생하게 구현했고, 영상미와 OST 등을 더해 그 위태로운 인물을 아름답게 담아냈다.

이 영화엔 천우희를 클로즈업한 장면이 자주 눈에 띈다. 그녀를 타이트하게 잡아 불안한 감정을 강조했다. 관을 타고 물이 흐르는 소리, 기계나 사무 집기가 삐걱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등 외부의 소리들을 더욱 크고 날카롭게 부각해 감정을 고조시켰다. 특히 천우희의 몸에 카메라를 장착한 ‘바디캠’ 촬영을 통해 서영의 감정을 폭발시키며 더욱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냈다.

영화 ‘버티고’ 티저 포스터. /사진제공=트리플픽처스

앞서 전 감독은 언론시사회를 마친 후 ” ‘버티고’는 일반적인 영화들처럼 이야기의 단단함에 기대는 작품이 아니다. 감각을 상실한 여성이 회복하는 과정, 그 감정을 어떤 음향과 미장센으로 담을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감독만의 영화적 감성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지막 장면엔 감독의 의도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다만 연출 방식에선 평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공감’을 안기는 이 영화로 인해 더 불편함을 느낄지, 치유를 얻게 될지는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달렸다.

‘버티고’는 오늘(16일) 저녁에 개봉한다.

노규민 기자 pressgm@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