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판소리 복서’ 엄태구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일? 결혼”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판소리 복서’에서 미완의 꿈인 ‘판소리 복싱’에 다시 도전하는 병구 역으로 열연한 배우 엄태구.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흥겨운 장구 장단에 어수룩해 보이던 한 복서는 춤을 추듯 주먹을 날린다. 지난 9일 개봉한 영화 ‘판소리 복서’에서 배우 엄태구가 연기한 병구의 모습이다. 한때 유망주로 주목 받던 복서 병구는 한 순간의 실수로 복싱협회에서 영구 제명된다. 설상가상 뇌세포가 손상돼가는 펀치드렁크 진단까지 받게 된다. 여전히 복싱에 대한 열망이 남아 있는 병구는 친구와 함께 이루기로 했던 ‘판소리 복싱’의 꿈에 다시 도전한다. 엄태구는 듣도 보도 못한 기발한 소재를 다룬 이 영화를 “휴먼드라마” 장르로 분류했다. 그는 “여러 코믹 요소가 과장돼 들어있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 영화는 정혁기 감독이 자신의 단편 ‘뎀프시롤: 참회록’을 장편으로 확장해 만들었다. ‘뎀프시롤’을 인상 깊게 본 엄태구는 장편으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하던 중 출연 제의를 받게 됐다. 그는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상한 영화죠. 그래서 좋았어요. 웃기면서 되게 슬프기도 하고 ‘쟤네 뭐하나’ 싶었어요. 독특한데 그게 제 취향이었죠. 이 기분을 관객들도 느낄 수 있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데 장면마다 찍을 때 가장 크게 생각했던 건 병구의 바로 직전 상황이었어요. 거기에 감독님이 주는 디렉션을 덧붙여 연기했죠.”

영화 ‘판소리 복서’의 한 장면.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엄태구의 민첩한 움직임과 날렵한 잽은 마치 프로 복서를 연상케 한다. 그는 촬영 전 두세 달간 하루 5시간씩 실제 선수들의 동계훈련에 버금가는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했다. 엄태구는 자신의 트레이닝을 맡은 코치와의 첫 만남에서 “복서로 만들어달라”고 했단다.

“프로 선수들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물론 제가 선수들이 대단하다고 얘기할 만큼 길게 하진 않았지만 복싱이 정말 힘들었어요. 코치님과는 일단 목표를 높게 잡았죠. 선수들이 보기에도 제가 프로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촬영 전까지도 최선을 다했어요. 당시 몸무게를 정확히 재보진 않았는데 많이 빠졌을 때가 65kg 정도였을 거예요. 지금은 영화 ‘낙원의 밤’ 촬영 때문에 찌워서 72kg 정도됩니다.”

엄태구는 함께 연기한 이혜리에 대해 “밝은 에너지가 내게도 좋은 영향을 줬고 현장의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안시성’ ‘차이나타운’ ‘밀정’ 등에서 선 굵은 연기를 보여온 엄태구는 이번 영화로 코미디 장르에 처음 도전다. “악역을 맡았을 때는 마음에 화를 계속 갖고 있어야 해서 지칠 때가 있어요. 이런 유한 연기는 그런 압박감으로부터 자유로운 게 좋았어요. 하지만 누군가를 웃긴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하하.”

영화에서 병구는 이상형을 “위아래 하얀색 한복이 잘 어울리는 여자”라고 말한다. 환상인지 과거인지 때때로 그가 떠올리는 소리꾼 친구 지연(이설 분)의 모습이다. 엄태구에게 실제 이상형은 어떤 스타일이냐고 묻자 “밝은 사람이 좋다”고 답했다. 죽기 전에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것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결혼”이라며 쑥스러워했다. 그는 “특별한 로망은 없지만 집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혁기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판소리, 필름 사진, 재개발, 유기견, 치매 등을 소재로 다뤄 잊히고 사라져 가는 것들, 아쉬움과 작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자 했다. 이 같은 영화의 정서를 엄태구는 어떻게 봤을까.

“‘어차피 나도 사라지고 잊힌다, 모든 것들이 다 사라진다’는 대사가 온몸으로 깊게 와 닿았어요. 나의 어린 시절, 어릴 때 키웠던 강아지, 나이 들어가는 부모님… 다 사라져 가는 것들이죠. 받아들여야하지만 두렵기도 합니다. 저도 사라져 가겠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었어요.”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