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리뷰] ‘열두 번째 용의자’, 참담한 역사와 마주한 예술가들의 비극

[텐아시아=박창기 기자]

영화 ‘열두 번째 용의자’ 메인 포스터. /사진제공=(주)영화사 진

한국전쟁의 전운이 채 가시지 않은 1953년, 명동에 있는 오리엔타르 다방은 예술가들의 쉼터 중 한 곳이다. 여기서 예술가들은 시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며 저마다의 일상을 보낸다. 하지만 이도 잠시, 평화로운 일상을 깨뜨리듯 다방의 문이 열리며 의문의 남자가 들어온다. 육군 특무부대 상사 김기채(김상경 분)다.

김 상사는 단정한 말투와 예의 바른 태도를 보이며, 여느 손님처럼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리던 그는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주위 예술가들에게 말을 붙이며 살갑게 다가간 김 상사는 한 명 한 명에게 백두환 시인을 아냐고 묻는다. 백 시인을 아는 예술가들이 한둘씩 대답하자 그는 주머니에 있던 수첩을 꺼내 적기 시작한다. 예술가들은 취조하듯 묻는 김 상사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이에 김 상사는 백 시인이 남산에서 살해당했다고 털어놓으며, 자신이 백 시인 살인 사건의 수사관임을 밝힌다.

김 상사는 사건의 진범을 찾기 위해 본격적인 탐문에 들어선다. 그는 다방 안에 있는 예술가들에게 백 시인이 살해당한 당일 행적을 묻는다. 그러던 중 이들의 이야기에서 의심스러운 정황이 발견된다. 이에 김 상사는 다방 안에 있는 모든 이를 용의 선상에 올리고,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심문을 시작한다.

‘열두 번째 용의자’ 스틸컷. /사진제공=(주)영화사 진

‘열두 번째 용의자’는 2019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폐막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남산 시인 살인사건’으로 영화제에 출품됐으나, 상영을 확정하면서 제목을 바꿨다. 다방이라는 한 공간에서 살인사건이라는 주제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진범을 예측하기 힘들 만큼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져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게 한다. 주연과 조연을 망라한 배우들의 열연이 몰입감을 배가시킨다. 무엇보다 김상경의 광기 어린 울부짖음은 신선한 충격마저 안겨준다.

초반 용의자들의 사연들이 길게 늘어져 다소 지루하게 느껴지지만, 중반 이후부터는 충격적인 반전이 거듭돼 숨 막히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끝을 앞두고 펼쳐진 노석현(허성태 분)의 갑작스런 추리는 다소 뜬금없다. 전개가 급진전 되면서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12세 관람가. 오는 10일 개봉.

박창기 기자 spear@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