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광대들’ 손현주 “준비는 꼼꼼하게, 나 자신에겐 혹독하게”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에서 영의정 한명회 역으로 열연한 배우 손현주. /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데뷔 29년차 ‘연기 장인’ 손현주가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으로 처음 사극영화에 출연했다. 뛰어난 지략가로 세조를 보위에 올리는 데 공을 세운 한명회를 연기했다. 영화에서 그는 말년에 나약해진 세조를 북돋워 주고 그에 대한 평판을 높이기 위해 광대패에게 백성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일을 꾸며보라고 지시한다. 손현주는 영화에서 위압감이 느껴질 만큼 강렬한 카리스마를 자랑한다. 탄탄한 연기력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 손현주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지는 영화 속 캐릭터와 달리 탁월한 유머 감각으로 연신 웃음 폭탄을 터트렸다.

10. 영화 속 광대패가 부리는 재주가 기상천외하다.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진 않았나?
손현주: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생각보다 사극이 무겁지 않고 유쾌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과한 부분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웃음) 할리우드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우리가 과하다는 걸 알고도 보지 않나. 그게 영화적 재미다.

10. 한명회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어떤 부분에 유념했나?
손현주: 이번 영화에서 한명회는 광대패를 데려다 풍문조작단을 기획하고 세조의 미담을 만들어내라고 지시한다. 지금까지의 한명회와 다르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세조실록에 기록된 이적현상 중 몇 가지를 골라 상상력을 덧대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인데) 한명회라는 캐릭터는 공신이고 세조의 조력자이며 광대패 기획자이기 때문에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밝음과 어두움을 어떻게 섞어 앙상블을 이뤄낼지 고민했다.

10. 한명회라는 인물의 그런 부분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나?
손현주: 그렇다. 대사에서 한명회가 세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도 느껴진다. 그러면서 자신의 안위도 생각한다. 일관되기도 하고 다른 꿍꿍이가 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람이니까 그렇다. 양면적인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해봤다. 한명회가 광대들을 써서 세조의 미담을 만들어냈다는 이야기도 지금까진 없던 내용이지 않나.

배우 손현주는 ‘광대들: 풍문조작단’에 대해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해 만들어 어렵지 않고 유쾌하게 볼 수 있는 발랄한 가족영화”라고 소개했다.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10. 후배 배우들이 같이 출연한 선배 배우들 중 가장 귀엽다고 꼽았다. 기분이 어떤가?
손현주: 하하하. 너무 고맙다. 영화 촬영하면서 배우들끼리 모여 자주 막걸리를 마셨다. 주로 내가 주도하고 거의 내가 샀다. 어느 방에서 모일지 얘기하다 보면 늘 내 방이다. 애들 가면 내가 다 치워야하는데, 나도 좀 자야 하는데, 아휴! 말만 형이라고 하고 대접은 안 해준다.(웃음) 모여서 하루에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고 감독도 부른다. 남양주 종합촬영소 앞의 숙소에는 조식을 먹을 수 있는 카페테리아도 있었다. 그러니 우리는 자리만 펴면 되는 거다. 최고의 안주인 편의점 족발과 편육, 동글동글한 후랑크 소시지로 한 상 깔아놓으면 마음이 든든하다. 촬영이 먼저 끝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술자리를) 준비해놓으면 되는데 애들이 또 다들 내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결국 내가 막걸리를 사야 한다. 하하.

10. 분위기가 좋았을 것 같다.
손현주: 팀워크가 좋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긴장하기도 했다. 너무 친하니까. 카메라 앞에서는 달라져야 하지 않나. 그래도 베테랑이라 다들 자기 몫을 한다.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지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10. 지난번 언론시사회 때 예전에 사극을 하다 말에 밟혀 발톱이 빠진 후로 사극에 대한 약간의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했다. 이젠 좀 극복한 것 같나?
손현주: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사극을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10. 사극영화를 처음 했다는 자체가 좀 의외인데.
손현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이 처음이고, 그런 옷을 입어본 것도 처음이다. 그 여름에 촬영을 하는데 보이지도 않는 옷을 7~8벌 껴입었다. 예전에 정말 그렇게 입었을까 궁금하다. 나중에는 서로 이해하는 선에서 겉으로 안 보이는 옷은 몇 벌 뺐다.(웃음)

영화 ‘광대들: 풍문조작단’ 스틸.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10. 한명회라는 인물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수염을 길게 붙이고 귀도 뾰족한 모양으로 특수분장을 했다. 촬영 때마다 특수분장하는 일이 여간 번거롭지 않았을 텐데.
손현주: 촬영 들어가기 전에 김주호 감독, 특수분장팀과 회의를 했다. 내가 주인공이 아닌데 내 캐릭터와 관련된 회의를 제일 많이 한 것 같다.(웃음) 어떻게 하면 강인해보이고 위엄 있게 보일지 고민했다. 수염 길이도 사극 역대급으로 길 거다. 귀 분장은 3시간쯤 걸렸다. 항상 새벽 5시에 제일 먼저 스탠바이했다. 하다 보면 두 시간 쯤 후에 세조 역의 박희순이 와서 몸에 난 종기 분장을 한다. 광대패인 고창석은 맨 마지막에 나타나서 가발 하나 쓰곤 ‘분장 다 했다. 가자’고 하는데 어찌나 얄밉던지.(웃음) 나중에는 매번 뾰족 귀 분장을 하기 귀찮아서 3일을 그대로 달고 있었다. 일주일까지도 달고 있어봤다. 분장한 내 사진을 본 최원영의 아이가 ‘요정 아저씨’라고 했다더라.

10. 분장한 모습이 만족스럽게 영화에 담긴 것 같나?
손현주: 어울리더라. 4~5년 전에 4부작의 사극 단막드라마를 한 적 있다. 그 때도 보니 내가 쌍꺼풀이 없어서 사극에 딱 맞는 얼굴이더라. 그 때는 왕 역할이라고 해서 솔깃했다.

10. 이번에도 영의정으로 신분이 높았는데 다음에는 편안한 복장을 입는 평민 역할은 어떤가?
손현주: 흠… 또 신분이 낮은 건 싫다. 하하하. 무신보다는 문신이 좋겠다. 장군 역을 하면 치열하게 전투하면서 날밤을 새야 한다.(웃음) 벼슬은 영의정 이상인 걸로… 그런데 이러다 캐스팅 안 들어오는 거 아닌가.

10.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
손현주: 연상의 여인과 멜로를 해보고 싶다. 황혼의 로맨스. 이를 테면 40~50대 남자가 60대 이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이야기. 그런 사랑을 하면서 가슴 아파하는 캐릭터. 나이를 먹어도 여자는 여자고 남자는 남자다. 이런 이야기가 드라마로 될 것 같은데 시도들을 안 해본 것 같다. 연하보다 연상을 사랑하는 이야기. (연상의 여인) 호칭을 뭐라고 하면 좋겠나. 누님이라고 부르면 너무 제비 같은가?(웃음)

10. 작품을 볼 때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나?
손현주: 항상 재밌으면 된다. 선택하고서는 투정 부리지 말아야 한다. 나는 되도록 현장을 재밌게 만들려고 한다. 오늘이 괴로우면 내일도 괴롭다. 오늘이 즐거우면 내일이 기다려진다.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는 손현주. “대학로에서 연극하다 처음 방송사에 왔는데 신인인 저를 누가 상대해줬겠어요. 그 때 만나 술 한 잔 하던 조연출들이 이젠 방송사 사장도 되고 본부장도 됐죠. 그 형들과의 끈이 아직도 이어져 있는 거죠.” /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10. 어느덧 데뷔 29년차가 됐다. 연기 신조가 있다면?
손현주: 꼼꼼하게 준비하되 나 자신에게 혹독하게 하자. 그건 결국 맡은 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거다. 투정하면서 작품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힘들고 괴로운 직업인 건 맞지만 그걸 모르고 시작했겠나.

10. 연기를 시작하던 때를 기억하나?
손현주: 연극으로 시작했다. 나의 표현으로 인해 내가 다른 사람이 되는 듯한 느낌, 무대에 있는 느낌이 대단히 만족스러웠고 기뻤다. 그래서 무대를 못 떠났다. 떠날 기회는 있었다. 연극 기획 분야로 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배우의 길을 선택했다.

10. 29년을 꾸준히 연기해오면서 슬럼프가 온 적은 없었나?
손현주: 어느 날 보니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나 싶다. 요즘은 한두 작품 하면 시간이 금방 간다. 그러다 보니 많이 하고 싶어도 못 한다. 작품을 꾸준히 한 건 사실이다. 1년이라도 쉬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떤 일이라도 참여했다. 앞으로 언제까지 이 일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하다 보면 40~50년차 될 때가 오지 않겠나. 그래서 (29년이라는 시간이)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이 일을 그만두진 않을 것 같다. 지금 그만두면 뭘 하겠나. 이 즐거운 일을 좋은 동료들과 오래 하고 싶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