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인칭 관찰자 시점] ‘미세스 다웃파이어’, 여전히 삶에 깃들어 있는 당신

[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 포스터.

*이 글에는 미세스 다웃파이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올해는 ‘미세스 다웃파이어(Mrs. Doubtfire)’(1993)로 정했다. 8월 11일 로빈 윌리엄스의 추모일에 볼 영화로. 스티븐 스필버그는 로빈 윌리엄스를 애도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로빈은 코미디 부분의 반짝이는 폭풍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웃음은 그를 지탱하는 번개였다”고. 로빈 윌리엄스의 웃음 폭풍에 번개 같은 웃음으로 호응하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더빙 현장. 성우 다니엘 힐러드(로빈 윌리엄스 분)는 로시니의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 중 ‘피가로의 아리아’를 멋들어지게 불러 젖힌다. 그러나 양심을 건드리는 상황과 맞닥뜨리자 단번에 일을 그만둔다. 수심에 찬 순간도 잠시, 그는 세 아이를 만나자 금세 표정이 환해진다. 다니엘은 생일을 맞이한 아들에게 동물원을 끌고 온 듯한, 차원이 다른 생일 파티를 열어준다. 그러나 이 일이 14년 간 참고 또 참았던 아내 미란다(샐리 필드 분)를 촉발하게 만든다. 미란다는 다니엘에게 간곡히 청한다. “미안해. 이혼해줘.”

결국 두 사람은 이혼하고, 양육권은 번듯한 직장이 있는 미란다에게 주어진다. 무직인 다니엘에게 아이들과 허락된 시간은 매주 토요일, 단 하루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 늘 함께였던 다니엘에게 하루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래서 그는 방송국에서 필름을 포장해서 운반하는 일을 시작한다. 다니엘은 미란다가 주당 300불의 가정부를 구하려는 것을 알고 성우였던 이력을 활용해서 전화를 건다. 영국에서 온 할머니의 푸근한 목소리로. 다니엘은 미란다가 이름을 묻자 신문 기사에 있는 ‘의심스러운 화재(Doubt fire)’로 둘러댄다.

다니엘은 분장사인 동생 프랭크의 도움으로 60세 할머니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거듭난다. 북실북실한 털은 감추고, 건강미가 넘치는 은발의 할머니로. 미란다와 아이들 앞에 미세스 다웃파이어로 등장한 다니엘은 위기일발의 순간도 능청스레 모면하면서 청결하고 아늑한 가정으로 일군다. 미세스 다웃파이어는 미란다에게 커다란 의지처가 된다. 한편 미란다에게 학창시절 남자친구였던 스튜어트(피어스 브로스넌 분)가 호감을 표하며 다가온다. 그리고 다니엘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여장을 들키고야 만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의구스레 여기는 아이들에게 해명한다. “이건 작업복 같은 거야. 너희를 만나려면 어쩔 수 없었어.”

‘미세스 다웃파이어’(감독 크리스 콜럼버스)의 주인공 다니엘은 낭만적이고, 정열적이고, 자유분방한 사내다. 허나 아내 미란다에게는 빵점 남편이다. 툭하면 실직하는 까닭에 아내를 일터로 내모는, 아내의 진지한 대화는 부러 회피하는, 아내가 홀로 울며 밤을 지새우게 하는…. 그렇지만 3남매에게는 100점 아빠다. 부모의 이혼을 감당할 수 없는 큰애와 부모의 이혼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둘째의 마음을 살갑게 헤아리고, 막내에게 동화를 읽어줄 때 이야기를 슬쩍 뛰어넘지 않고 동화의 문장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표정과 목소리로 구현하는….

대화가 필요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딱 떠오르는 한 문장이다. 미란다의 얼굴에서 미소를 사라지게 한 이도 다니엘이지만,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된 미소를 다시 머금게 한 이도 다니엘이 여장한 미세스 다웃파이어가 아니던가. 상대의 속말에 귀 기울이면 함께 아파하고 기꺼워할 수 있는 법이다.

로빈 윌리엄스의 웃음 폭풍이 휘몰아치는 작품이다. 스치는 장면인 핫도그 흉내에도 까르륵 웃음이 터질 만큼. 그런데 오래전 이 영화를 볼 때는 느끼지 못했던 로빈 윌리엄스의 얼굴이 자꾸 마음이 쓰였다. 입은 분명 웃고 있음에도, 눈빛은 슬픔으로 그득한 얼굴. 이제야 깨달았다. 그가 천연스레 빚어내는 웃음은, 눈물은 삶을 농축시킨 소산이었다는 것을.

“헤어졌다 해도 널 사랑하는 마음은 한결같단다.”

‘미세스 다웃파이어’에서 부모의 이혼을 앞둔, 어린 시청자가 보낸 사연에 다니엘이 답을 하는 대목이다. 마치 로빈 윌리엄스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향한, 온기로 어루만지는 전언처럼 들렸다. 그가 하늘의 별이 된지 벌써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문득문득 어른거린다. 그가 선사한 웃음은 여전히 나의 삶에 깃들어 있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