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인터뷰] ‘봉오동 전투’ 유해진 “찰흙 같았던 제가 이번엔 돌멩이 같을 겁니다”

[텐아시아=김지원 기자]

영화 ‘봉오동 전투’에서 마적 출신의 독립군 황해철 역으로 열연한 배우 유해진. /사진제공=쇼박스

무더위와 소나기가 오락가락 하는 날,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배우 유해진은 어깨 부분이 젖은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산책을 하고 왔는데 비가 이렇게 쏟아질 줄 몰랐네요. 하하.” 비오는 날을 좋아한다고 했다.

유해진은 더위를 한 풀 식혀주는 장대비처럼 영화 ‘봉오동 전투’를 통해 답답한 가슴을 통쾌하게 풀어준다. 이 영화는 1920년 6월,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로 유인해 대승을 거둔 독립군의 이야기다. 유해진은 ‘항일대도’를 들고 일본군의 목을 단칼에 베는 황해철 역을 맡았다. 무쇠칼만큼 단단한 저항 정신부터 팽팽한 긴장감을 단번에 누그러뜨리는 유머까지 갖춘 황해철. 유해진의 연기에 감탄이 나온다. 영화 얘기를 하려고 하자 “사는 얘기 좀 더 하다가 하자”며 ‘허허허’ 웃었다.

10. 몸이 다부져 보인다.
유해진: 예전부터 그런 얘길 들었다.(웃음) 다른 게 아니라 인상이 깡이 있어 보이는 것 같다. 신병 때도 축구하는데 서로 팀에서 나를 데려가려고 했다. 사실 난 축구를 진짜 못한다.(웃음) 경기 끝나고 엄청 혼났다. 평소에 운동을 좀 즐겨하는 편이다.

10. 캐릭터를 위해 머리를 짧게 자른 건가?
유해진: 짧은 머리 스타일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 원래 이런 머리 스타일과 까맣게 탄 피부를 좋아한다. 그래서 언제 한 번 이런 모습으로 영화를 할 수 있나 싶었는데 딱 만난 거다. 감독님과 분장 실장님은 나를 생각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짧게 깎으면 어떠냐”고 물었는데 나는 흔쾌히 괜찮다고 했다. 작품과도 어울리지 않나. 의상도 마음에 든다. 당시에는 전리품으로 얻거나 주워 입었을 거다. 멋 부리려던 게 아니라 실제로 헤진 옷을 입었을 거다. 고증 자료의 사진을 봐도 그랬다.

10. 당시 독립군의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낸 것 같다.
유해진: 독립군이 단체 사진을 찍은 듯한 느낌으로 만든 흑백 포스터를 보면 딱 그 때 사진 같지 않나. 이번에 포스터들이 마음에 든다. 일본군들이 쫓아오는 상황에서 우리 뒷모습으로 만든 포스터가 있다. 얼굴이 안 나오고 뒷모습으로만 나오는 건 지금껏 못 봤던 스타일의 포스터 같다.

영화 ‘봉오동 전투’ 포스터. /사진제공=쇼박스

10. 산을 뛰어다니며 촬영해서 힘들지 않았나?
유해진: 원래 뛰는 걸 좋아한다. 서울에 있으면 북한산에 오르고, 미세먼지가 심할 땐 어쩔 수 없이 피트니스를 간다. 지방 촬영을 가서 운동할 데가 마땅히 없을 땐 자전거를 타거나 뛴다. 한 번 나가면 8km씩 뛴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홧병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하는 이유가 뛰고 나면 속이 시원하게 풀려서다. 촬영하면서 어려웠던 건, 울퉁불퉁한 바닥을 밑이 아니라 앞을 보고 뛰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밑만 보면 카메라에 이상하게 나오지 않나. 하하.

10. 운동을 습관화한 게 언제부터인가?
유해진: 영화 ‘빙우’가 계기가 됐다. 그 때 재미를 붙인 것 같다. 당시에는 암벽등반도 했다. 지금은 일주일 내내 (산을) 타진 않고 다른 운동도 한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 기력이 자꾸 없어진다. 아휴.

10. 연기하면서 독립군을 간접체험해보니 기분이 어땠나?
유해진: 독립군들이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고 시작했지만 촬영하고 영화를 보면서 이들이 더한 것도 겪었지 않겠나 생각했다. 영화 속 (일본군의) 모습이 잔인해 보일 수 있지만 오히려 이게 더 약한 것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영화 ‘말모이’에서 우리말 사전 편찬을 위한 자료를 모아뒀던 창고가 털리는 장면이 있다. 배우들이 실제로 허탈해 하고 통곡했다. 찍은 지 시간이 경과했는데도 그 장면을 찍은 분들이 멍하게 있었다. 연기하는 우리도 이 정도의 후유증을 앓는데 실제라면 어땠을까.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10. 시나리오의 내용상 끌렸던 이유도 궁금하다.
유해진: 영화가 단단했다. 기교가 없고 무뚝뚝하고 묵직하다. 이런 단어가 생각나는 시나리오였다. 돌멩이처럼. 그러면서도 통쾌함이 있었다. 그게 원신연 감독님과도 잘 어울리는 이미지 같았다. 감독님이 작품을 한 번 하자는 얘기를 오래 전부터 했다. 나는 그냥 으레 인사려니 하곤 “그래 하자” 그러고 둘이 술 마시곤 했다. 예전부터 친구여서 미안해서 저런 얘길 하나 싶었는데 이런 작품을 같이 하려고 그랬었나 보다.

영화 ‘봉오동 전투’ 스틸. /사진제공=쇼박스

10. 오랜 만에 카리스마 넘치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스스로도 멋지다고 느꼈을 것 같다.
유해진: 카리스마는 원래 있었다.(웃음) 황해철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했어도 카리스마가 느껴졌을 거다. 투박하면서도 날선 인물이지 않나. 그러고 보니 한동안은 말랑말랑한 인물을 한 것 같다. 지금까지는 찰흙 같았다면 이번에는 돌멩이라고 할 수 있겠다.

10. 황해철의 유머가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시켜주기도 하는데, 처음부터 설정된 대사였나, 아니면 애드리브를 많이 넣었나?
유해진: 내가 만든 것도 있지만 대게 범위 안이다. 웃음을 위주로 하는 작품이라면 내가 변화를 줄 수 있는 범위가 넓은데 이 작품은 조심스러웠다. 너무 가볍게 그리진 안되, 너무 무거워서 힘들지 않게 했다. 그런 점에서 조우진 씨(마병구 역)도 잘해줬고, 지환이(아라요시 시게루 역)도 얄미운 맛을 살려줬다.

10. 일본 배우들과는 현장에서 어떤 얘길 나눴나?
유해진: 지로 역(독립군을 쫓는 월강추격대 대장)을 했던 키타무라는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 그래서 비슷한 나이대로서 느끼는 삶의 이야기, 서로 촬영 현장의 다른 점 같은 것들을 이야기했다. 그 친구는 아들이 꽤 큰 것 같았다. 아들하고 어떻게 지내는 지도 얘기하더라. 그리고 밥차를 좋아했다.(웃음)

10. 공교롭게 반일감정이 커지는 시기에 영화가 개봉했다. 출연 배우로서 이런 부분도 생각하지 않을 순 없을 것 같다.
유해진: 이 때 개봉하는 것을 목표로 기획하고 제작했던 것인데 예민한 분위기가 형성된 시기와 맞물리게 됐다. 하지만 영화는 지금의 흐름에 영향을 받기보다 영화의 힘으로 굴러가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영화의 만듦새가 좋지 않은데 분위기 때문에 영화를 본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요즘 관객들은 냉정하게 평가한다.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고 소문이 나서 많은 분들이 보고 통쾌해하고 답답함을 풀었으면 좋겠다.

유해진은 촬영장에선 자신이 꽤 예민한 편이지만 딱딱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사진제공=쇼박스

10. ‘말모이’나 ‘택시운전사’에서는 시대의 숨은 영웅을 연기한 셈이다. 매번 그 시대 인물을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비결이 있을까?
유해진: 이야기에 어떻게 흡수되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그 시대의 인물이 되는 것 같다. 그게 나한테는 제일 큰 숙제다.

10. 이번 영화는 제작비가 큰 데다 어려운 주제라 책임감도 컸을 것 같다.
유해진: 늘 어깨가 무겁다. 얼마 전 영화 ‘사자’로 박서준 씨가 ‘본격연예 한밤’과 인터뷰한 걸 봤다. 그 친구도 점차 무거워진다고,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고 하더라. 나도 마찬가지다. 든든한 감독님과 배우 준열, 우진, 지환이 있다. 하지만 예전보다 좀 더 (책임감이) 커져 부담감이 있고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다.

10. 이 같이 의미가 있는 작품을 하나씩 해나가면서 성취감도 있지 않나?
유해진: 개인적으로는 한 편 한 편 해가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열심히 하고 잘하는 분들이 막 나오지 않나. 그래프로 따지면 나는 내려가는 쪽에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읽은 영화 ‘사자’와 관련된 기사에서 안성기 선배님의 캐릭터 소화력을 극찬한 내용이 있었다. 내가 선배님 정도의 나이가 됐을 때 과연 저런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쉽지 않은 길이다.

10. 요즘 들어 고민이 많아졌나?
유해진: 늘 있었지만 요즘 더 그렇다. 왜냐면 나도 나이를 먹는다는 걸 느끼기 때문이다. 이미 앞자리 숫자가 달라졌다. 그러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더 하게 된다. (굉장히 젊게 사는 것 같은데?) 자기 자신은 알지 않나. 안에서 썩어가는 느낌.(웃음) 나만의 고민이다.

김지원 기자 bella@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