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가네’를 말하다① 조성하, “이 땅의 모든 가장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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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조성하는 현실을 산다. KBS2 ‘왕가네 식구들’ 속 고민중으로 야생과 같은 ‘처월드’를 살고 있지만, 그가 느끼는 가장으로서의 무게감은 작품과 현실이 크게 다르지 않다. 바닥에 떨어진 밥을 주워 먹고 무거운 쌀포대를 짊어지고 산동네 곳곳을 뛰어다닐 수 있었던 건, 조성하 자신이 배우이기 이전에 실제로 한 가정의 가장이기 때문이었다.

“오늘을 사는 모든 가장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다 금세 눈시울을 붉히고 마는 그에게선 ‘공감’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진다. 배우로서, 가장으로서 그가 ‘왕가네 식구들’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의 무게가 결코 가볍게 느끼지 않는 이유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앉은 자리에서조차 여전히 ‘고민중’인 그에게 물었다. 배우로 산다는 것, 그리고 이 땅에서 가장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Q. 최근 ‘왕가네 식구들’의 반응이 뜨겁다. 특히 가족드라마에서 당신이 선보인 아버지 연기는 ‘왕가네 식구들’의 선전에 가장 큰 동력이었다.
조성하: ‘왕가네 식구들’은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만큼이나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있는 드라마다. 보시는 분들은 “요즘 세상에 저런 집이 어디 있어?”라고 하실지도 모르겠다(웃음). 다만 다른 인물들은 떠나서 고민중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나는 40대 중반의 가장으로서 표현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고민중에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다는 점이 기쁘고 한편으로는 어깨가 무겁게 느껴진다.

Q.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와 지금의 느낌이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당신이 ‘왕가네 식구들’을 선택하며 고민했던 부분들이 잘 표현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조성하: ‘왕가네 식구들’을 집필한 문영남 작가와 처음 만났을 때 그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요즘처럼 살기 어려운 세상 속에 힘들게 살아가는 많은 가장이 있다. 그분들의 아픔을 보듬고 땀의 의미를 대변하는 작품을 만들어 보자”고. 민중의 사업이 생각보다 빨리 망해서 조금 멋진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땀의 의미와 가치를 아는 나이가 됐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좀 더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Q. 그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선보였던 무게감 있는 연기에 비하면 고민중 캐릭터는 파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웃음). 왜 ‘왕가네 식구들’에 당신이 캐스팅됐다고 생각하는가.
조성하: 사실 최근에 땅바닥에 떨어진 밥 주워 먹고 고양이 울음소리 흉내 내는 것만 놓고 보면 그 굴욕감과 지질함은 상상 이상이다(웃음). 작가가 처음에 고민중 캐릭터에 관해서 이야기했던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진정성’이었다. 진지하게 배역 안으로 들어가 그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연기의 가능성을 봐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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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왕가네 식구들’은 극 속 인물들이 겪는 상황이나 감정적 문제에 대해서 다른 드라마에서 쉬이 발견되는 극적인 해결법이 없기에 보는 입장에서는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조성하: 카타르시스라는 것은 잠재돼 있다가 언젠가 봇물처럼 터져 나올 때 그 파괴력이 배가 된다. 그런 장기적인 계획 없이 마음껏 표현해버리고 감정을 드러낸다면 되레 캐릭터가 가진 삶의 무게나 메시지가 약해질 거다. 지금은 조금 답답해 보여도 그게 뻥 뚫릴 때 그 감동이 더 크게 느껴지실 거다. 그런 측면에서 작품을 장기적인 관점으로 봐주시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Q. ‘처월드’라는 소재가 기존의 드라마에서는 다뤄진 적이 없는 소재이기에 풀어내는데 어려움도 컸겠다.
조성하: 작가가 상황 자체를 잘 만들어줘서 그 안에 이해해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시월드’의 이야기는 워낙 오랫동안 다뤄져 왔기에 무엇이 문제고 해결법인지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다. 반면에 ‘처월드’는 모두가 쉬쉬하는 소재다. 남자, 집안의 자존심의 문제도 있고 ‘시월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깔고 가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표현하기가 까다롭다. 상황 속에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디테일을 꺼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Q. 연기하면서 어떤 부분에 집중했나.
조성하: ‘왜 저렇게까지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문제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고민중이 처월드에 들어간 것이 ‘남자가 시집살이를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지 않나. 남자다운 의연함을 유지하면서 ‘남자’라는 단어에 담긴 통속적인 관념을 어떻게 중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Q. 소재도 소재지만, 첫 방송부터 매번 감정을 폭발시키는 게 배우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겠다. 완급조절이 필요하지 않나.
조성하: 내가 감정을 무한정 쏟아내는 활화산이 아니기에 정말 어렵다(웃음). 앞으로는 완급조절이 되는 부분이 있을 거다. 민중이 처가로 들어가기 전까지가 하나의 큰 폭발점이었다면, 처가로 들어간 이후 가족들을 위해 인내력을 갖고 참는 시기가 감정적으로 힘을 축적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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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왕가네 식구들’을 보면서 새삼 느낀 것이지만, ‘아버지’, ‘가장’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상당한 것 같다. 일전의 기자간담회 때 당신은 “그런 무게감을 표현하는데 사명감을 느낀다”고까지 말했다.
조성하: 사실 고민중이 하는 일은 현대인들이 가장 회피하는 일일 수도 있다. 점차 땀 흘려 일하는 것의 가치가 무뎌지고 있지 않나. 발 디딜 곳 하나 없는 40대 가장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땀 흘려 일하는 모습을 통해 이 땅의 가장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

Q. 그런 측면에서 ‘아버지(노주현)의 지게’는 상징하는 바가 큰 것 같다.
조성하: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결혼을 선택하게 되지만, 결혼하는 순간부터 무한한 책임의 영역이 생긴다. 가족을 사랑하면 할수록 그 책임의 무게감은 더욱 커진다. ‘아버지의 지게’는 그런 무게감을 상징한다. 우리는 모두 보이지 않는 지게를 메고 있는 것과 같다. 지게의 얹힌 무게감을 ‘짐’이라고만 생각하면 무겁지만, 그것이 내가 사랑하는 자식과 배우자들을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누구나 기꺼이 그 무게를 견디려고 할 것이다. 아버지가 민중에게 지게를 선물한 것을 그런 중의적인 의미가 있다.

Q. 그래서인지 ‘왕가네 식구들’에서는 ‘가족’보다는 ‘식구’라는 단어에 방점이 찍혀있다.
조성하: 같이 식사한다는 의미의 ‘식구’는 ‘가족’이란 단어와는 느낌이 다르다. 고민중이 바라는 것은 큰 게 아니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에게 따뜻한 밥과 머물 수 있는 집을 제공하고 그들과 소소한 일상의 재미를 느껴가며 살아가는 것, 그뿐이다.

Q. 고민중 역을 맡으면서 그간 연기해온 ‘센 캐릭터’들이 남긴 이미지가 많이 희석된 듯하다.
조성하: 처음에는 문영남 작가와 진형욱 PD만 믿고 시작한 건데 생각보다 캐릭터 연기의 폭이 넓어서 고생 중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들과는 정말 다르니까(웃음). 전에는 내면을 감춘 상태에서 센 캐릭터로 보이게 겉모습을 부각하는 연기를 많이 했다. ‘왕가네 식구들’의 고민중 캐릭터는 그런 겉껍데기가 없는 인물이라서 좀 더 나만의 무언가를 보여드릴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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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배우로서도 이번 작품 이후에 배역 선택폭이 넓어질 것 같다.
조성하:
항상 연기하며 생각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규정짓지 말자”는 거다. 방향을 설정해놓으면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듯 그 방향으로만 가야 하지 않나. 배우로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백을 만드는 것, 그리고 연기에 유연성을 갖고 나의 최대치를 찾아가는 것. 앞으로 배우 조성하에게 남겨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Q. ‘왕가네 식구들’ 속 고민중으로, 현실에서는 40대 가장으로 오늘을 살고 있다. 이 땅의 가장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
조성하: 거창한 건 없다(웃음). 다른 모든 가족구성원을 대신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다. 오늘도 당신이 있어 우리가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글. 김광국 realjuki@tenasia.co.kr
사진. 팽현준 pangpang@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