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인디 컬렉션, 아시안체어샷, 신중현과 엽전들의 환생을 보다(part3)

아시안체어샷 2013년 첫 단공 6

(part2에서 이어짐) 아시안체어샷은 모든 곡을 진지하게 연주하고 노래하는 비장함 가득한 모습이 최대 장점이다. 손희남의 가세로 3인조 라인업을 구축한 이들은 한국적 이미지를 록에 접목하는 음악적 지향점을 잡고 매일 같이 연습에 몰두했다. 며칠이라도 연습을 하지 않고 쉬면 감이 떨어진다는 마음에 연습을 하지 않는 날은 밥이라도 함께 먹으며 밴드 합을 높이려 전력을 다했다. 활동 초기에 FF, 고고스2, 바다비 등 홍대 앞 라이브 클럽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중가수에게 팬덤의 존재가치는 너무도 크다. 페북을 통해 한 팬클럽 회원이 “멤버들에게 팬클럽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물어봐 달라”고 요청했다. 멤버들의 답이다. “어떻게 대해드려야 좋을지 아직은 어색하지만 친해져가는 단계라 생각합니다.”(황영원) “친하게 지내던 투 페이스 멤버들이 군에 갔을 때, 팬클럽회원 7명이 저희 천명하로 왔죠. 그런데 야속하게도 더 멋있어 보이는 영원이가 있던 피즈로 몽땅 가버리더군요(웃음). 저희 팬클럽 핵심 회원은 30명 정도인데 누나 같고 친구 같고 동생 같고 가족 같습니다. 그 분들이 있어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고 힘들 때마다 힘이 되는 소중한 분들입니다.”(박계완) “팬클럽 분들이 공연에 안 오시면 진짜로 서운하니까 더 열심히 음악을 할 생각입니다.”(손희남)

아시안체어샷 리드기타 손희남 첫 단독공연 사진모음 2013년

리드기타 손희남은 1982년 11월 28일 서울시 구로구 개봉동에서 2남 중 막내로 태어났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는 팝송을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카펜터즈, 에니멀스 같은 외국 유명가수들의 노래를 듣고 자랐다. 탁월한 기타 솜씨와 사운드 메이킹 실력은 널려 알려져 있지만 그가 탁월한 춤꾼이라는 사실은 멤버들조차 믿지 않는다. 사실 손희남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TV 음악프로에 나오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중학교 동창들이 그를 춤을 잘 춰 인기 많았던 아이로 기억하는 이유다. 춤을 추기 시작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서태지 같은 랩 댄스음악을 좋아했던 그는 중학생이 되면서 형 덕분에 브리티시 록을 듣게 된다. “중2때 형이 듣고 있는 라디오헤드 노래를 듣고 뭐 이런 음악이 있나 싶었죠. 춤 만 추다가 그 음악을 듣고 충격을 먹고 기타가 치고 싶었어요. 엄마를 졸라 수표로 50만원 받아 양말 속에 넣고 낙원상가로 가 일렉트릭 기타를 샀습니다.”(손희남)

기타 연주에 빠져들면서 밴드활동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가 은평공고에 진학한 것은 창세기라는 스쿨밴드 때문. “기타를 치다보니 중학교 때 고등학교도 못 간다고 했을 정도로 공부를 못했어요. 반에서 뒤에서 2등 했습니다.(웃음)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밴드부실에 지원하러 문을 노크를 했는데 선배가 담배를 피면서 나오더군요. 저도 중2때부터 담배를 피운지라 놀라지는 않았습니다.(웃음). 오디션으로 악보가 없는 곡을 연주하라고 해 쳐보자 너무 잘한다며 욕을 하더군요.”(손희남). 밴드부 멤버가 된 그는 가방 없이 기타만 들고 학교에 다녔다. 유명한 창세기 멤버인지라 프리패스였다. 당시 기타를 안고 잠을 잤던 그는 손가락이 시커멓게 변했을 정도로 기타를 쳐 선배 기타리스트들이 경계를 했을 정도. 창세기는 경연대회에 나가 우승도 여러 번 했다. “당시 대회에 나가면 은평공고 창세기랑 항상 붙어 저희는 늘 2등을 했는데 딱 한 번 1등 했던 기억이 납니다.”(황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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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남 초등학교 입학 직전 가족여행 때 모습, 중학교 체육대회때 운동장에서 춤추는 모습, 네스티요나 활동 당시 멤버 테테 이용진과 함께, 군시절 내무반에서 기타치는 모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고3 때 아버지가 골드스타에서 나오는 100만원하는 건반을 선물로 줬다. 시퀀스 기능이 있어 드럼과 건반, 베이스를 찍으며 놀면서 자연스럽게 창작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기억 속에 선명한 공연은 서울체고 초청무대. “덩치 큰 운동하는 아이들이 제가 드럼을 설치하는데 손으로 쳐서 살짝 쫄았습니다.(웃음) 그런데 공연을 했더니 앵콜이 나오고 여학생들이 몰려 올 정도로 난리가 났었습니다.”(손희남) 졸업한 선배의 추천으로 5인조 밴드 투 페이스에 들어가 주로 카피음악으로 대학축제 공연을 많이 했다.

수능 날에도 부모님을 속이고 지방행사에 갔지만 멤버들과 갈등이 생겨 밴드를 탈퇴한 후 2002년 군대 가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 다시 들어갔다. 손희남이 박계완을 처음 만난 것은 클럽 프리버드 공연 때. 투 페이스와 천명아 두 밴드가 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두 사람도 가깝게 지냈다. 2002년 스마일이 그려진 앨범을 제작한 이후 투 페이스 멤버들은 거의 동시에 군 입대를 했다. 손희남은 9사단 백마부대 솔개 밴드 수색대 전단지에서 밴드를 발견하고 지원을 했다. “고참들도 청소를 하는데 말년 병장이 제게 기타를 가르쳐 달라고 해 늘 빠지자 기타 치러 군대왔냐고 미움을 많이 샀습니다.”(손희남)

손희남 네스티요나 시절 2009년 클럽 프리버드 공연3

2009년손희남 네스티요나 시절 클럽 프리버드 공연

제대 후 멤버들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숙식이 가능한 연습실을 구했다. “그때 계완 형이 와서 잼 연주를 하며 놀면서 저랑 뭔가 맞는다는 생각을 했지만 같이 밴드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손희남) 2006년 리드보컬만 기획사에서 데려가 밴드는 해체되었다. “그때 참 힘들었습니다. 기획사 콧바람에 결국 밴드만 해체 된거죠.”(손희남) 2007년 밴드 네스티요나에서 기타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50대 1의 오디션 경쟁을 뚫고 들어갔다. 이때 일렉트로니카 음악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네스티요나 2집 타이틀인 1번 트랙 ‘ANOHTER SECRET’은 손희남의 창작곡이다. “레코딩에 관심이 많아 기타&프로그래밍에 참여했는데 록 연주만 하다 열 손가락으로 음을 칠 필요도 없고 새로운 사운드를 찾는 작업이 신나고 재미있었습니다.”(손희남)

2009년 네스티요나 2집은 이런 저런 이유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사장되어 밴드는 해체했다. “그때도 상처를 받아 반 년 이상 음악하지 않았는데 사운드를 만들어보고 싶어 필름공장에 취직해 맥 컴퓨터를 구입했지요.”(손희남) 이후 네스티요나 출신 테테의 음반 프로듀싱과 편곡 믹스 작업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세션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당시 알고 지냈던 음반 선배가 “수익은 반으로 하고 가요 작업을 해보자.”는 제안했다. 정작 아이돌가수와 계약 이야기가 나오자 권리를 몽땅 가져가버려 큰 상처를 입었다. 2인조 밴드 야야가 2010년 EBS 헬로루키 대상을 수상했을 때 공연을 같이 한 후, 정식 멤버로 참여해 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고사했다. “밴드 보다는 혼자서 사운드 연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했기 때문. 박계완이 밴드 결성을 제의했을 때, 선뜻 참여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아시안체어샷 리드기타 손희남 2013년 머리카락에 맺힌 땀 방울 홍대 클럽공연3
손희남은 아시안체어샷도 처음 세션 개념으로 도와주다 ‘자라섬 국제 재즈 페스티벌’에 나가면서 마음이 풀고 정식 멤버가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함께 음악을 하다 혼자 남겨졌을 때 힘들었지만 그 모든 사람들과의 작업들이 음악적인 다양한 경험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합니다. 아시안체어샷 멤버들은 함께 음악을 해보니 욕심이 없어 보였고 같이 해보자하는 진심이 느껴져 마지막이란 마음으로 합류했습니다. 아마 제 평생 마지막 밴드일겁니다.”(손희남) “저도 고교 이후 했던 밴드는 다 잘 안되었던 같아요.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즐기면서 음악을 하니 오히려 여유도 있고 더 잘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아체샷에서도 잘 안되면 밴드 포기하고 솔로만 할 생각입니다. 마지막 밴드라는 생각으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황영원)

2011년 첫 디지털 음원 ‘응어리’ 발표한 후 2012년 CJ 튠업 9기에 선발되었다. CJ 아지트 김철희 대표의 소개로 인디레이블 소속사 다다뮤직을 만난 후 한국적 이미지가 진동하는 데뷔EP를 발표했다. 멜로디가 탁월한 ‘소녀’가 이미지를 강조한 음악이라면, 파워풀한 ‘반지하제왕’은 메시지가 강렬한 곡이다. “이전에 했던 밴드가 잘 안 될 때, 우울증이 왔습니다. 좋아하던 여자에게 공연을 보여줘도 반응도 없고, ‘반지하제왕’은 그때 받았던 느낌들을 취합한 슬픈 곡입니다.”(박계원) “지금도 반 지하에 살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심정으로 노래했죠.“(황영원)

아시안체어샷 피쳐사진 2013년 9월 29일 76

아시안체어샷은 가사와 멜로디를 공동 작업으로 만든다. 멜로디 메이커 황영원이 통기타 곡을 가지고 오거나 손희남이 재미있는 사운드가 나오면 멜로디가 얹히거나 박계완의 가사에 멜로디를 붙이는 세 가지 방식이다. 그래서 곡의 저작권을 개인이 아닌 밴드 이름으로 붙인다. “보통 저작권은 작곡40, 편곡20 작사40으로 배분되는 데 밴드 운영에 하주 나쁜 배분이죠. 밴드는 같이 하는 건데 그렇게 구분하면 나머지 멤버들은 20% 밖에 권리가 없는 겁니다. 이런 건 밴드 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셋이서 뭔가 섞이니까 곡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하는 걸 많이 본지라 저는 제가 멜로디 써도 우리 노래라고 생각합니다.”(손희남)

아시안체어샷은 정규앨범 발표를 앞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스스로 만족스러울 때 발표하려 합니다.”(박계완) “밴드를 오래 했지만, 이렇게 멤버끼리 형제 같다는 생각이 든 적은 처음입니다. 이번엔 오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황영원) 아시안체어샷은 원 맨 보컬 시스템이다. 리드보컬 결정을 두고 치열한 진검 승부를 벌였듯 황영원과 더불어 박계완이 투윈 보컬로 정규앨범에 참여한다면 어떨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송골매의 구창모, 배철수처럼 대중성을 담보한 다채로운 질감의 노래를 들려줄 것 같다. 3인조 밴드 아시안체어샷은 신중현과 엽전들, 산울림, 들국화가 남긴 위대한 한국 록의 계보를 이을 적자로 자질이 충분하다. 감성적이고 폭발적인 에너지에다 세련된 연주, 한국적 감성이 넘쳐나는 이들이 한국 록음악의 계승자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아시안체어샷 피쳐사진 2013년 9월 29일 18

아시안체어샷 프로필
1995년 강릉지역 고교생 연합 5인조 밴드 천명아 결성(박계완)
2000년 6인조 혼성밴드 스캣, 4인조 펑크밴드 피즈fiz, 아이돌스타 멤버(황영원)
2001년 5인조 밴드 투 페이스 멤버(손희남)
2003년 재즈아카데미 드럼과 14기 졸업(박계완), 록밴드 피즈 멤버(손희남)
2007년 4인조 코스믹포, 4인조 비비럭키타운, 3인조 밴드 배다른 형제 멤버(박계완), 혼성밴드 네스티요나 멤버(손희남)
2009년 2인조 펑크밴드 시조새(황영원)
2011년 6월 3인조 밴드 아시안체어샷 결성
2012년 CJ 튠업 9기 선발
2013년 3월 한국 애플 iPad TV광고 출연, 5월 EBS 공감 이달의 헬로루키 선정, 최종 년 말 결선 진출, 6월 싱가폴 BAYBEATS FESTIVAL 참가

글, 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oopldh@naver.com
사진제공. 손희남
편집. 권석정 moribe@tenasia.co.kr

  • 정종화

    아시안 체어샷의 메시지 강렬한 음악이 전세계 적으로 울려 퍼지길!!!